23 아이덴티티, 내 안의 우리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23 아이덴티티

by 백승권




내면은 개념이다. 육체는 실물이지만, 내면, 마음, 정신은 지식과 정보를 통해 학습을 거쳐 거기에 있다고 여긴다. 합의에 가깝다. 본 적은 없지만 있다는 믿음. 하나의 육체에 하나의 정신이 담긴 한 명의 개인은 이상적이다. 모범에 가깝지 실제와 다르다. 타인이 지닌 정신의 개수를 유추할 수 없으니, 나를 예로 들 수밖에 없다. 외피를 조정하는 의식을 지닌 자아. 자신의 정체를 의식하고 있는 어떤 존재. 자아는 컨트롤타워가 되어 육체를 조종한다. 육체는 엄청난 충격에 의한 반사적 움직임이 아닌 이상 자아의 지배 아래 방향을 정하고 움직인다. 자아는 한 명이 아니다. 육체는 하나일지언정, 자아는 번복하거나 정체를 바꾸기도 한다. 그 구분이 뚜렷할 경우 서로를 타자라고 인식할 정도다. 내면의 분열. 방이 늘어난다. 그 방에서 각자의 자아들이 서식하고 있다.


자아는 시간을 겪고 학습을 거치며 배양된다. 생성 동기나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일정 순간이 되면 존재감이 드러난다. 각자의 자아는 자신을 인지하고 환경과 타자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가족용, 친구용, 연인용, 직장용, SNS용 등등 뚜렷하게 구분될수록 역할이 늘어난다. 눈에 띄지 않는 이런 다중 자아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하나의 육체를 지니고 서로 다른 입장을 표출하는 사람들. 서로 다른 타자들에게 최선을 보이기 위해 애쓴다. 서로 합의에 이루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도 흔하다. 쉽게는 결정을 못하거나 어렵게는 진짜 자신의 원본이 누군지 혼돈과 상실감을 겪는다. 관리하기 쉽지 않다. 리더 또는 관리자 역할을 제대로 부여하지 않는 이상.


데니스/패트리샤/헤드윅/비스트/케빈/배리/오웰/제이드...


23개의 자아라면 어떨까. 각자의 이름과 성별, 스타일과 직업, 성격과 옷차림, 기호가 다르다면. 하나의 육체가 수용할 수 있는 자아의 수를 가늠하는 건 더 이상 무의미하다. 서로 다른 수십 개의 자아를 지닌 사람의 형태를 지닌 생명체는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외부 타자와 갈등이 촉발될 경우 혼돈의 수치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23명과 대화하는 23명. 이 관계의 도식이 외부의 타인에게 적용되는 것은 단순히 23개의 자아를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흔히 타인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화된다. 그는 어떤 사람. 이렇게. 23명(제이스 맥어보이)의 자아 속에서 23명과 대화하며 변수를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공포와 위협이 된다. 하나의 마을 안에 기거하는 이들이 그러하듯, 선은 절대적이지 않고 악은 늘 일정한 비율로 변수를 조장한다. 23명 중 의견과 움직임을 이끄는 무리가 있고 이들의 강압적 주도에 의해 테러를 일으키는 것은 어쩌면 가족 범죄단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괴물의 탄생. 특정한 위치의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은 괴물의 형태를 지닌 메시아를 창조했다. 자아실현과 존립을 위해.


괴물은 두려움의 총합이다. 기대의 총합이며, 어떠면 물리적 폭력성의 총합일 수도 있다. 24번째 자아의 탄생은 남은 23개의 서열을 뒤로 밀리게 한다. 육체의 크기를 부풀리고 공격성을 증폭시킨다. 단죄할만한 이성은 보이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자신과 같은 내면을 지닌 대상은 감지한다. 또 하나의 자신, 또 하나의 복제본. 슬프고 끔찍한 과거를 가졌다는 이유로 괴물은 대상을 자신과 다르지 않은 무리로 인정한다. 인간의 과거가 괴물의 정체성과 동일시된다.


어쩌면 소녀(안야 테일러 조이)도 괴물이 될 수 있었다. 좋은 기억을 끄집어내며 억눌렀을 뿐. 경험의 개수가 곧 자아의 개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가 자신의 자아를 하나로 단정할 수 있을까. 인간의 경험은 하나로 묶기엔 너무 다채로운데. 경험의 질감이 아닌 새로운 경험이 미치는 파동이 언제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가에 따라 새로운 자아의 형성과 변형이 진행되는 것은 아닐까.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의 경험이 소환되어 영향력을 발휘할 때마다 그때의 경험에 맞는 자아도 같이 표면화되는 것은 아닐까. 이따금 설명하기 힘든 자신과 마주할 때가 있다. 그 빈도는 매우 간헐적이어서 주위에서 알아차리지(그러한 면을 알고 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닌) 못할 때도 있다.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내가 있다. 둘은 종종 부딪치고 어느 한쪽만이 표면화된다. 얼굴을 둘로 나눌 순 없으니까. 어느 한쪽만이 언어와 움직임이 되어 드러난다. 그에 맞게 옷차림도 달라지곤 한다. 극단을 자제하지만 알고 있다. 내 안에 괴물이 늘 웅크리고 있다는 걸.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
매거진의 이전글해빙, 신도시 부적응자의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