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렌 아데 감독. 토니 에드만
개가 죽었다. 가족과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가족인 딸은 곁에 없는데 개는 늘 있었으니까. 교감했으니까 말을 들어주고 반응했으니까. 아빠(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딸(산드라 휠러)에게 간다. 일하느라 바쁘다. 딸은 아빠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아빠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앞가림도 못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찾아온 아빠는 부담스럽다. 누추한 겉모습이 조금 그렇기도 하고. 아빠는 뭔가 좀 이상하다. 그냥 세대차이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아이들 연극을 지도하던 아빠다.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장치를 알고 있다. 뻐드렁니를 가지고 다니면서 앞에 끼운다던지, 회사 옥상에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방귀소리를 낸다던지, 몰래 옷장에 숨어 있다가 탈의하려는데 나온다던지, 같이 참석한 비즈니스 네트워크 파티에서 주변에게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신분을 세탁한다던지, 자신에게 가짜 딸이 있다고 한다던지, 비즈니스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VIP와 아무 말 대잔치를 한다던지, 느닷없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던지, VIP와 같이 있는데 말도 없이 공항에 나타나 선글라스를 끼고 옆에 따라붙는다던지, 수갑을 채우더니 열쇠를 잃어버렸다던지, 홈파티에 갑자기 천장에 닿을만한 높이의 털북숭이 괴물 탈을 쓰고 온다던지, 자신을 외교관이라고 속이고 처음 만나 사람의 가정에 방문한다던지, 숨찬다. 지금 딸의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근데 진절머리 쳐질 정도로 곁에 두면 불편하고 미치겠는데, 저런 모습을 보고 있다니 눈물이 난다. 엄마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너무 자연스럽게 둘 사이에서 엄마의 존재는 없다. 아빠의 애써 공백을 채우려는 시도들. 아빠의 기행들과 몹시 불편한 유머감각은 딸에게 안중에도 없다. 딸은 당장 눈앞에 닥친 계약건을 성사시키는 게 인생 전체를 건 목표처럼 보인다. 아빠는 그런 딸 곁에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멀리서 보면 웃음이 터지지만 딸 입장에서 보면 정말 돌아버릴 노릇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빠라고 연민이 뒤섞인다. 마치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강아지가 주변을 맴돌고 낑낑 대며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빠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딸을 위해서인지 재미를 더하기 위한 설정인지 몰라도 자신을 언젠가부터 '토니 에드만'이라고 소개했다.
외로우니까.
이대로 둔다면 자신도 숨이 꺼질 거 같아서 딸 이네스의 아빠 빈 프리트는 토니 에드만이 되어야 했다. 딸을 위해서가 아닌 보다 자신을 위해서처럼 보였다. 아끼던 개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에 모든 것이 흔들렸고 겨우 서 있기 위해서라도 토니 에드만이 되어 딸과 같이 있고 싶었다. 딸의 노골적인 거부감과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이해하면서도 빈 프리트는 그렇게 자신의 외로움을 치유해야 했다. 기계를 차고 다니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노쇠한 몸으로 그는 딸에게 자신이 이렇게 살아왔노라고 초근접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굴었다. 그렇다고 딸의 인생과 아빠의 인생에 유의미한 교집합은 생기지 않았지만. 딸은 성큼성큼 돌아서는 털북숭이 괴물 탈 아빠에게 달려가 파묻히듯 안긴다. 자신도 마치 모두 내려놓은 듯 급작스러운 올누드 홈파티를 진행 중이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있었고 그게 아빠였다. 아빠는 완전히 연소될 듯한 딸의 곁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호흡을 불어넣고 있었다. 엉뚱한 방식으로 시선을 돌린 후에야 그런 삶의 방식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이따금 어울리지 않게 인생에 의미를 묻곤 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아빠는 곁에 있었고, 딸은 점점 그와 먼 곳으로 자기 자리를 찾으려 하고 있었다. 사연이 뭐든 막을 수 없다. 끝내 아빠와 딸은 단어와 기억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난, 도로시와 내가 그런 사이가 되도록 한숨만 쉬며 보고 있지 만은 않을 것이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