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불쌍해서 사랑했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 라라랜드

by 백승권




성공을 꿈꾸는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이 사랑에 빠지고 각자의 사회적 성공을 거둔 후 이별한다. 라라랜드는 신파다. 이야기가 발명되고 남녀 간의 소재가 된 후 수천 년에 걸쳐 반복 전파된 이야기. 공감 가는 사연을 지닌 주인공들이 각자의 여정 중간에 주저앉아 비슷한 처지의 서로와 마주하고 격렬한 스파크를 일으킨다. 애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애써 이해하려는 시도는 없다. 불필요하다. 서로가 보려는 것에 충실하고 그것을 아끼고 사랑해준다. 며칠 전만 해도 존재 유무조차 관심 없었던 이들이 가로등 밑에서 춤을 춘다. 하늘과 땅과 우주의 별까지 몽땅 그들의 포옹과 키스를 도와주는 것처럼 보인다. 외로움의 해소란 얼마나 중요할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건 내가 아니라는 위안은 얼마나 포근할까. 사랑의 필요조건이 실패와 절망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결핍을 어떻게든 채우려는 모습들이 처연하다.


이별은 수순이다. 감정은 변한다. 상황이 변하니까. 영원한 것은 없다. 가난이 영원하다면 그것 또한 이별의 사유가 된다. 해고당한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스타일을 바꾸고 밴드에 합류한다. 그 후 유명해진다. 앨범 제작과 투어에 모든 시간을 다 쓴다.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작가와 연기에 몰두하던 미아(엠마 스톤)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각자의 목적을 공유했고 거기에 더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은 분명 세바스찬이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남자의 사정은 분명 나아지고 있었고 여자는 제자리였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희망을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미아는 세바스찬이 그리웠고 세바스찬은 시간이 없었다. 파국이 다가오고 있었고 감격적인 서프라이즈 디너를 나누다가 폭발한다.


미아는 세바스찬의 원래 꿈을 거론한다. 가까이에서 바를 차리고 성공하는 꿈. 장소와 건물을 차리는 일엔 돈이 필요했고 세바스찬은 꿈은 진행 중이었다. 미아는 그를 곁에 두고 싶었다. 그의 꿈을 가로막는 게 아닌 꿈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처럼, 옆에서 매일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해주길 바라는 듯 보였다. 하지만 세바스찬이 연주 스타일을 바꾸고 투어를 떠나게 한 직접적 동기는 미아였다. 미아와 (그녀의 엄마에게) 근사한 남자가 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절대적이었다. 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지만 세바스찬은 억울했다. 감정이 증폭되고 있었고 비아냥이 튀어나온다.


미아는 얼어붙는다.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당혹스러운 표정과 침묵보다 강한 긍정은 없었다. 남은 이야기도 있지만 둘은 거기까지 였다. 진실 앞에서 환상은 무너진다. 연민에서 시작된 사랑은 연민이 사라진 후 함께 증발한다. 연민의 소멸을 견딜만한 동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누구보다 각자가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동시에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돈을 벌기 위해 투어를 떠나야 했고, 투어를 떠나느라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이 난제를 해결할 묘안이 둘에겐 없었고 이별의 명분을 찾는 게 더 쉬워 보였다. 오래되어 낡고 바스러진 감정을 이어 붙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미아의 성공은 어둠 속의 빛이었다. 둘은 마침내 긴 어둠의 사랑을 지나 이별의 빛에 도달할 수 있었다.


라라랜드의 미덕은 구질구질한 이별의 늪 속으로 관계와 감정이 끔찍하게 수장되는 (현실적)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깔끔하게 스킵하고 진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 수많은 관객 앞에서 은은한 피아노 연주 후 오가는 애처로운 눈빛 속에서 과거를 덮는다. 우리가 한때 예쁘게 사랑했다는 스티커를 서로의 뺨에 부착한다. 그리고 더 아름다운 엔딩에 다다를 수도 있었다는 시나리오 역시 보여준다. 인스타그램 같은 이미지로 우리가 어떻게 헤어졌든 지금은 이렇게 괜찮다고 과시한다. 불쌍해서 사랑했고 성공해서 이별했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


매거진의 이전글토니 에드만, 몹시 불편한 유머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