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린 비글로우 감독. 제로 다크 서티
2001년 뉴욕 쌍둥이 빌딩이 알 카에다의 테러로 무너져 3천여 명 사망.
2011년 알카에다의 우두머리이자 911 테러의 가장 중요한 배후 빈 라덴 사살.
제로 다크 서티는 이 두 개의 문장 사이에 있었던 10년을 보여준다.
911 테러 이후 얼마나 많은 관련 영화들이 나왔을까. 911 테러는 미국과 미국인의 세계관을 바꿔버렸다. 국가의 심장부가 폭발하고 자국민과 지인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위협이 실존한다는 것을 무참하게 실감했다. 공공의 적을 규정하고 '충격과 공포'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공공의 적, 그것이 비록 세계 경찰을 자처하고 경제적 폭군 행세를 일삼는 자국의 만행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세계 무역센터 빌딩이 주저앉는 장면이 세계만방으로 생중계되었을 때 이미 미국은 이성을 잃었다. 책임질 대상이 필요했고 주변 세력은 철저하게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었다. 용의자 리스트가 바로 나오고 빈 라덴이란 인물이 거론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여러 다큐와 조금의 검색을 통해서도 그가 미국과 얼마나 긴밀한 관계의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911 테러의 주동자로 빈 라덴을 지목했고 그를 죽이기 위해 세계적 비난과 법까지 무시해가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적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10년에 걸친 길고 지난한 여정, 수많은 희생들과 끊임없이 이어졌던 테러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이번 영화 제로 다크 서티는 2011년 5월 실제 사살된(되었다고 알려진) 빈 라덴을 추적한 과정을 그린 911 테러에 대한 최종보고서이다.
긴 시간,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 추적 작전. CIA 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테인)가 투입된다. 그녀의 배경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이 작전을 마무리 짓기 위한 최고의 실력과 의지를 갖추고 있다는 것뿐. 고문과 회유로도 주요 용의자들의 행방은 찾을 길 묘연하고, 미 정부는 현재 국내에서 벌어질 테러도 막지 못할 판에 시간상 과거의 테러범을 쫓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 의구심을 품는다.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마야는 흔들리지 않는다. 배후에 하나만 잡으면 모든 것은 풀릴 수 있다는 것을.
1년, 2년, 5년... 수십수백 명을 취조하지만 작전은 여전히 제자리. 어느 날 빈 라덴 최측근에게서 제보가 들어오고 담당했던 마야의 동료는 만세를 부른다. 빈 라덴의 의사였다는 그는 핵심 정보를 갖고 있다며 거액을 요구하고 접선하기로 약속한다. 기다림. 기다림. 기다림. 마야는 다른 곳에서 소식을 듣고 있었고 동료들이 있는 기지(블랙 사이트)로 긴 먼지를 날리며 차는 다가온다. 반갑게 맞이하는 마야의 동료를 비롯한 요원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마야는 충격에 빠지고 빈 라덴을 포획하는 것이 아닌 죽이기로 결심한다.
빈 라덴 주변 핵심인물의 동선을 포착한다. 그가 들락거리는 요새화 된 장소를 알아낸다. 위성으로 주변 지형을 파악하고 건물 내의 사람들 수를 가늠한다. 여자인지 아이들인지, 보이지 않는 이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확신한다. 그곳에 빈 라덴이, 30%, 60%, 아니 100% 있다고. 상부에 보고하지만 "계집"의 말은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서너 달이 지난다. 마야는 분노하지만 상부에서는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국에 군사를 잠입시켜 총격전을 벌어지는 일에 대해 부담스러워한다. 더군다나 대통령 오바마의 승인까지 받아야 하는 중요 작전이다. 다들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려고만 하지 아무도 그런 (정치적 입지를 흔들리게 하는) 위험을 결정하는 작전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애국심은 판타지. 월급이 끊기는 위험은 CIA도 두렵기 마찬가지였다. 끝내 결정, 대기 중이던 정예부대가 출동한다. 자신들이 잡으러 가는 대상이 그 ‘유명한’ 빈 라덴이 맞는지 긴가민가하다. 마야가 말한다. 날 위해 죽여달라고.
적외선 탐지기와 중화기로 무장한 대원들을 가득 실은 채 두 대의 스텔스 헬기는 어둠을 가른다. 빈 라덴 암살작전. 그가 숨어있다고 추정되는 장소로 다가가지만 착륙은 여의치 않고 더군다나 한대는 곤두박질친다. 폭탄으로 문을 부수고 비명 지르는 여인들과 우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총을 든 적들을 하나씩 시체로 만들기 시작한다. 오사마 빈 라덴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그로 추정되는 남자의 몸에 총알을 박는다. 사진을 찍는다. 그가 맞을까. 장소를 떠야 한다. 하드디스크, 서류 등 그들의 임무는 사살 외에 그 안의 모든 자료를 담아 챙겨 오는 것이다. 시체 가방에 사살한 빈 라덴의 시신을 담고 지퍼를 올린다. 어안이 벙벙하다. 내가 빈 라덴을 쐈어. 시신이 기지로 옮겨진다. 마야의 확인이 필요하다. 그가, 맞다.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는 마야의 표정을 통해 말한다. 우리가 마침내 911 테러의 주범이자 전 미국과 미국인의 적, 빈 라덴을 죽였다고.
지금껏 테러와 추적을 다룬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마이클 만이 제작하고 제이미 폭스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킹덤과 데미안 루이스(밴드 오브 브라더스 주인공)와 클레어 데인즈(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가 주연한 미드 홈랜드다. 킹덤은 1차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사고 수습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구급차로 위장 다시 한번 2차 폭탄테러를 일으킨 만행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분노를 고스란히 담았었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테러조직의 수장과 대테러팀의 제이미 폭스가 다른 장소에서 똑같이 내뱉는 대사로 표현된다. "다 죽여버리면 돼." 얼마 전 2 시즌을 마친 홈랜드는 테러에 대처하는 미국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작전 중 포로가 된 이후 이슬람의 교리를 받아들인 미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개 속에서 다크 제로 서티와 비슷한 대사가 등장한다. 이 전쟁에서 기간은 의미 없다고. 수백 년이 걸려도 우린 이 '성전'을 기꺼이 치러낼 거라고. 미국이 싸우는 대상이 어떤 철학을 지니는지 깊고 낮은 음성으로 전달하다가 예측하기 힘든 거대한 후폭풍을 선사한다.
제로 다크 서티는 결국 미국이 이겼다고 말한다. 수많은 시간과 희생을 치르고 결국 그를 죽였다고 보고한다. 독립기념일이나 911 추모일에 맞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균형 잡힌 의문보다는 확실한 대상을 정하고 그를 죽여야 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결국 그 결과를 성취했다고 보여준다. 담담하게, 어떤 격정이나 흥분도 크게 보여주지 않고 카메라의 시선도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기록처럼 보여주려 하지 의견임을 내비치지 않는다. 작전 중 민간인 여자를 죽인 것도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보면서 머리를 스치던 것은 하나의 대결구도였다. 증오와 증오의 전쟁이었구나. 누가 먼저 상대를 파괴하느냐의 싸움이 아닌 스스로 먼저 무너지지 않느냐의 전쟁이기도 했다. 긴 시간의 피로는 고문하는 자를 인간에서 악마로 변모시키고, 테러범을 쫓는 자를 테러에 의해 희생되는 자로 만들기도 했다. 그 압박을 누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가 전쟁을 치르는 자들의 당대 요건이기도 했다. 수년 전 여러 사람이 죽었고, 얼마 전 한 사람을 죽였다. 이게 끝일까. 영화는 거기에 답하지 않는다. 마야는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