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하네케 감독. 아무르
사랑은 감정이다. 감정은 변하기 마련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시간을 정지시킨다. 다만 둘만의 기억 속에 담긴 시간만을. 물리적인 시간이 생물학적인 노화를 불러오는 것조차 막을 수는 없다. 병에 걸리고 걸음이 느려지고 기억이 둔해지는 것조차 막을 수 없다. 조금 나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 겉으로만 보기엔 한 사람은 간병인 한 사람은 환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둘은 한 사람과 마찬가지다. 타인이 타인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금세 지치고 힘든 기색을 보일 수 있기보다는 익숙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한계는 있다.
둘의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있고 똑같이 늙고 있으며 힘겨움도 병의 악화도 같이 찾아온다.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자신에게조차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놓아버리고 싶고 그만두고 싶고 매일 해야만 하는 귀찮은 일들을 멈추고 그만 생의 불꽃을 꺼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쉽나. 이 사람이 나인데. 내가 이 사람이고. 내가 돌보는 것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 자체인데. 모진 말들은 나를 향한 것, 모진 행동도 나를 향한 것. 점점 점점 더욱더 내가 되어 간다. 고통도 꺼져가는 몸과 마음도. 임계점을 넘어서면 초연해지고 모든 준비에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외부인의 방문은 귀찮은 것. 걱정한다며 찾아온 자식 또 병세를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차라리 오지 말아다오. 네가 간병을 해보는 것이 아니라면. 주변의 많은 것들이 점점 조용해져 간다. 조용한 일상이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 고요하게 모든 것을 놓아야 할 때가 찾아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고요하게. 자신을 보내준다.
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었다. 다리를 움직이고 침대보를 갈아주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옛날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먹여주고 환기를 시켜주고 달래 주고 씻겨주고 그러다 어느 순간 때가 왔다. 때가 온 걸까, 내가 나를 놓아버린 걸까.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꽃을 사 온다. 가지런히 손질해 할머니의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사랑에 대한 가장 비참하고 아름다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가장 비참하고 아름다운 현실에 대한 영상.
영화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가정하에 지켜보겠지. 각오한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시간의 위대함이라면 고난마저 기적처럼 보여준다는 것일 테다. 영화에서 보였던 모든 움직임들이 현실의 중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종종 생각하곤 했었다. 행복하게 죽겠다. 그때가 왔을 때, 누구의 아무런 방해도 없는 고요한 곳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장-루이 트린티냥(조르주)과 엠마누엘 리바(안느)가 연인을 연기하고 미카엘 하나케 감독이 그들을 그린 영화.
사랑 그 자체인 영화. 아무르 Am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