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 신세계
곽백수 작가의 웹툰 트라우마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경쟁회사의 기밀을 빼기 위해 이직, 엄청 열심히 일했더니 그 회사 사장이 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것 같지만, 실제로 살다 보면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된다. 물리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더 많은 일들을 하다 보면 애초의 목적은 희미해진다. 무간도가 그랬다. 조직에 잠입한 비밀경찰 진영인(양조위). 오랜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머리통을 깼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를 손에 묻혔을까. 정의구현 사회에 대한 염원과 자기희생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바닥에서 그런 낭만적인 생각으로 버틴다는 것은 믿고 싶은 부분이지 가능한 부분은 아닐 테다. 아무리 많은 수당을 주더라도 과거의 자신을 지우고 역할극으로 살아간다는 피로감과 압박감은 겪지 않는 이상 가늠하기 힘든 부분이다. 아, 직장이라는 카오스 안에서 겪는 자아와 역할의 충돌을 상상해보면 어느 정도 간접 경험은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에서 책상이 사라질 뿐이지 도끼로 목이 잘리진 않는다.
골드문 그룹 회장이 죽는다. 사고사로 위장된 살인. 빈 회장직을 두고 실질적 서열 2위인 정청(황정민) 세력과 3위로 밀려 있던 이중구(박성웅) 세력의 격돌은 불 보듯 뻔한 일. 정체를 숨긴 채, 정청과 의리를 쌓으며 오랜 세월 함께하던 비밀경찰 이자성(이정재)에게 강 과장(최민식)은 새로운 오더를 내린다. 기업형 거대 범죄조직을 와해시키는데 이런 타이밍은 쉽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경찰 발밑에 두고 정경유착은 물론 기자들까지 장악하던 세력들을 일거에 뒤흔들 수 있는 시도랄까. 강 과장은 심어둔 이자성을 통해 판을 움직인다. 정청과 이중구를 이간질시키고 새로운 게임판을 준비한다. 이자성은 땀이 식지 않는다. 그의 곁엔 어느새 아내와 아이까지 있었으니까.
이중구가 수갑을 차고 정청은 강 과장의 컴퓨터를 턴다. 조직 안의 경찰 끄나풀을 색출한다. 이자성 앞에서 그들은 피범벅이 되어 죽는다. 정청이 특별히 아끼는 이자성이었다. 화교 출신에 여수에서 자랐다는 성장배경까지, 그들은 늦게 만난 형제처럼 쉽게 떼어낼 수 없는 하나의 정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자성이 자신을 혼란에 빠뜨린 강 과장에게 울분을 토하는 사이 이중구 세력이 움직인다. 강 과장이 짜 놓은 판. 정청 세력을 토벌한다. 사시미와 칼부림과 비명이 주차장과 엘리베이터를 가득 메운다. 특히 정청(황정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엘리베이터 사시미 격투 장면은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수많은 국내 영화들이 보여줬던 범죄조직의 격투 장면 중에서도 황정민의 존재감은 어떤 것과도 섞이지 않는다. 그는 늘 황정민이었지만 완전한 캐릭터로 관객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국회의원 금배지를 단 듯한 범죄조직. 그들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비정한 세상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새로운 등장인물이 3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서열의 판에 균열을 일으키고, 완전히 노출된 이자성은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간파한다. 자신을 끝내 제끼지 않았던 정청의 유언처럼 자신이 온전한 한쪽에 서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리고 다수에게 지옥이 쏟아진다. 죽이려는 자 죽임 당하고, 죽음의 판을 짠 자 역으로 칼을 맞으며, 판에서 놀아나며 죽음을 각오한 자 역시 담배 한 모금 이후 처참한 폭력과 마주한다. 어떤 죽음도 비장하거나 아름답거나 희생적이지 않았다. 자기가 쳐놓은 덫에 걸려서 아등바등 대다가 생을 마감했을 뿐. 남은 자 역시, 그저 남아있을 뿐 더 이상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남은 생 내내 묻게 될 것이다. 난 대체 누구냐고.
인간은 끊임없이 자문한다.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누구고 어디서 왔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 이게 맞는 건지 타인에 의해 인정받고 싶어 한다. 타인의 기억에서 사라지면 존재의 불안을 품는다. 살아있는 이유에 대한 동기를 상실한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견디기 힘들어한다. 기억되지 않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소속이 분명해야 하고 지인을 두며 지나간 시간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게 없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모든 삶의 필요조건. 이자성은 이게 없었다.
인생은 연극이었고 조직은 무대였으며 자신은 배우였다. 관객이 이를 알아채는 순간 그는 자신이 죽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게 죽어야 했다. 그런 불안으로 억지웃음을 지며 정청의 곁에 있었다. 가짜 인생 속에서 그는 어느 누구도 심지어 자신에 대한 믿음도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뿐 그를 대신하거나 진심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사회가 그렇지, 다들 자기 살기 바쁘다. 가족에겐 말하지 못하고 경찰은 들어주지 않으며 조직은 의심한다. 그는 혼자였다. 진실은 무거웠고 감추기 위해선 누군갈 죽여야 했다. 이정재는 이자성의 고독과 갈등을 스타일로 소화한다. 대사로 채울 수 없었던 심연의 혼돈을 급변하는 판세 안에서 표정과 스타일로 중심을 잡는다. 적어도 그에게서 무간도의 양조위와 대부의 알 파치노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캐릭터 자체와 극적 상황을 넘어선 태도와 스타일이었다.
정청(황정민)은 처음부터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우두머리에게 사랑받았고 단숨에 조직의 No.2로 올라선다. 그의 과시적 태도, 걸진 욕설, 일상의 폭력성과 과장된 패션은 분명 같은 서열의 이중구(박성웅)와는 극명한 대립점에 있는 부분이었다. 초조함도 묻어났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강자(로 보이고 싶은 자)의 두려움을 감추기 어려웠던 것처럼, 그는 오버했다. 농을 던지고 조인트를 깠다. 하지만 자기 사람을 아꼈다. 술을 따라줄 땐 앉으라 하고, 이자성에겐 자꾸 선물을 사주고 싶어 했다. 이자성이 됐다고 됐다고 만류하고 짜증을 내도 그는 자신의 오랜 동료 이자성을 아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그를 걱정했다. 따뜻함. 이런 정청을 황정민이 연기했다. 배신자의 머리를 부서뜨리며 잔혹성을 드러낼 때에도 숨이 꺼져가며 친구를 걱정할 때에도 황정민은 정청이라는, 어느 실존할 것 같은 인물 그 자체였다. 서로 다른 목표를 지닌 인물들 중 누가 신세계에 도달했을까? 적어도 연기의 신세계를 보여준 단 한 사람을 꼽자면 단연 황정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