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호아킨 피닉스의 마스터는 누구인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마스터

by 백승권






그는 더 이상 아니 글래디에이터부터 형, 리버 피닉스의 후광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호아킨 피닉스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압도한 영화.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겠지만 호아킨 피닉스는 단 한 장면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짙고 피로하며 어두운 사내를 연기한다. 그 인물이 된다. 프레디(호아킨 피닉스)가 된다.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프레디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전쟁을 겪고 전쟁이 끝난 후, 군인에서 군인이 아닌 사람으로 돌아온 프레디의 시선이 변화인지 심화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가 매우 극단적이고 때로 신경질 적이며 어둡고 음침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인물이라는 점. 그것이 몸에 해로운 물질을 섞어 술을 만드는 것이더라도 그 맛은 많은 사람들을 경탄에 빠뜨릴 정도라는 것. 자신의 술을 좋아해 주는 사람과 나누어 마실 줄도 안다는 점.


그의 몸은 방황하고 그의 표정은 자신을 타인들과 완전히 격리시키며 어디론가 한없이 쫓기고 도망하고 구겨져 있다. 늘 술에 절어 휘청거리고 사진을 찍는 일도 하지만 금세 광기에 사로잡혀 욕설과 무례를 범하고 어린 여자와 충동적인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갑자기 떠나며 돌아올 거란 기약 없는 약속을 한다.


술에 취해 우연히 오른 배. 그곳에 만난 한 사내, 도드(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도드는 만나자마자 프레디의 심연을 읽는다. 그의 불안을 캐치하고 그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프레디는 어쩔 줄 모르고 그의 밑에서 일하고 전생을 볼 수 있다며 사이비 교주처럼 사람들을 이끌고 메시지를 전파하는 도드의 오른팔이 된다.


도드. 겉에서만 보면 사교성 좋은 작가이자 집단의 리더. 하지만 그의 가족 누구도 표정은 밝지 않고 난치병을 전생을 들여다 봄으로써 완화시켜준다는 그의 주장은 그의 메시지는 그의 말과 웃음들은 열광적 추종자들을 양산해내고 그들은 흡사 사이비 종교에 빠진 많은 바보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권위에 사로잡혀 속는 사람들. 의심하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도드는 늘 그들의 중심에 서 있고 그들의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분위기를 이끈다.


도드에 있어 프레디는 좋은 실험군, 그리고 강렬한 충격을 주는 맛의 술을 만들어 주는 사람. 애초 불안한 영혼과 의욕 없는 분노로 휩싸여있던 프레디는 도드에게 점점 의지하고 그를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빠져든다. 도드를 반대하는 인물들을 폭력으로 제압한다.


그리고 점점 드러나는 도드의 허상. 하지만 여전히 신뢰를 잃지 않는 추종자들. 그중에 프레디가 있었고 프레디의 행동이 점점 거칠어지자 그는 교화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질문이 끝나지 않을 때까지 참아야 하며 같은 공간을 수백수천 번 오가며 눈과 손에 닿는 사물을 다른 차원으로 인지하는 연습을 되풀이한다. 마치 정신분석학자들이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고 기록하듯 도드는 프레디를 실험하고 도드의 가족들은 그에 동조한다. 술을 끊고 생각을 가라앉히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오토바이의 속력을 멈추지 않는다.


떠남.


여전히 프레디는 불안했다. 그의 앙상한 얼굴의 골격과 퀭하고 어두운 눈이 히죽거리는 입술과 공격을 담은 말투가 휘청이는 몸과 자제하지 못하는 분노가 그 끊임없음이 프레디의 생을 지탱하고 있었다. 마치 이런 상태를 벗어나면 바로 바스러져 사라질 것처럼.


도드는 인생의 긴 시간, 프레디의 마스터를 자처하며 그를 치유하고 다스리며 지배하려 들었지만 프레디는 바뀌지 않았다. 그런 도움의 행위들 자체가 하나의 해프닝이었던 것처럼. 도움을 주려는 이들조차 이미 위선에 찌든 사기꾼 집단에 불과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도드가 프레디를 진심으로, 형제로 대한 적이 있었을까? 헤어지는 순간조차 프레디는 단지 도드의 먹잇감 아니었을까? 선의가 존재하는가. 프레디를 더욱 병들게 한 것은 아닐까.


영화는 선명한 메시지를 남기지 않는다. 전장에서도 여자의 나신을 모래로 만들며 기행을 일삼던 프레디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안식과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떠돌며 불안의 나날들 속에서 내내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게 마치 자신의 전 부인 것마냥. 그는 처음부터 바뀌길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진 그대로 행복하면 그만일 뿐. 사랑에 빠지고 맛있는 술을 만들면 그만일 뿐.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한가. 이것을 믿고 따르고 주장하며 실행하는 이와 집단은 그 반대에서 오는 반작용에 어떤 대책을 지니고 있을까. 믿고 싶은 것을 믿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속이고 싶은 사람들은 속이고 불안에 떠는 이들은 계속 그 자리에서 속고 있다. 주인은 누구인가. 나의 주인, 내가 주인인가, 주인이 나인가. 타인의 삶인가, 나의 삶인가. 조연인가 주연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자신의 생을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인상을 남긴다. 불행이든 행복이든 타인에겐 어떤 권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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