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관 감독. 범죄소년
엄마 여자 소년 아들
소년(서영주)은 순진하게 생겼다. 얼굴에 세월이 남긴 감정의 굴곡이 덜 자리 잡힐 나이. 피부는 시커멓고 마른 편, 말투도 머뭇거리기 일쑤지만 종종 씨발 같은 욕설을 내뱉거나 거짓말할 때 배시시 같은 가식적 표정도 곧잘 짓는다. 여기까진 그 나이 때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남의 빈집을 터는 건 문제가 다르다. 빈집을 털다가 심장이 약한 주인에게 걸려 밀치고 달아나는 건 문제가 다르다. 경찰 앞에서 소년의 표정은 여전히 순수하지만 그는 이제 문제아다.
소년원에 1년가량 있게 된다. 그 전에도'전과'가 없었던 게 아니어서 선처가 불가능했다. 재판정에서 타이르듯 하지만 분명히 선을 긋는 판사(서영화)는 아픈 할아버지를 돌봐야 한다며 봐달라는 소년에게 말한다. 넌 네 할아버지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고. 이후 쇠약해진 몸에 거동이 불편하던 소년의 할아버지는 빈집에서 홀로 숨을 거둔다. 소년원을 수료하는 날, 다른 아이들의 부모가 자기 자식을 찾아갈 때까지, 소년을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제아가 되기 이전에 그는 이미 자신을 낳아준 엄마의 생사조차 몰랐다.
체구가 작고 앳되어 보이는 여자가 소년원 건물로 뛰어간다. 소년의 엄마란다. 어색함.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중학교 중퇴한 소년과 어려 보이는 엄마라는 여자. 소년은 거처가 없고 여자는 소년을 자신이 얹혀사는 곳에 데리고 간다. 하지만 그곳은 여자 후배의 집. 불편하다. 갈등이 안 일어날 수 없다. 집을 나와야 한다는 사실과 마주친 날, 여자는 광분한다. 아들이 생긴 건 좋지만 자기 인생 하나도 못 추스르다가 이젠 둘의 먹고 잘 곳을 책임져야 하는 운명에 마주한다. 자신은 나약하고 자신은 힘이 없고 자신은 가진 게 없다. 여자는 엉망진창으로 만든 미용실 바닥에 누워 괴성을 지른다. 그리고 다시 터덜터덜 걸으며 묵을 곳을 구한다. 돈 벌 곳을 궁리한다.
바다가 보고 싶단 아들과 강변을 걸으며 여자는 소년에게 탄생의 기원을 털어놓는다. 열일곱 살 적. 산에 놀러 갔고 남자 일행과 만났다. 이름과 학교와 전화번호를 받았고 며칠 같이 놀며 잠도 잤다. 같이 잔 남자가 소년의 아버지였고, 남자가 말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수소문했지만 그날 이후 찾을 길 없었고, 여자는 학교를 나왔다. 여자는 아이를 두고 집을 나왔다. 이후 아이를 찾지 않았다. 찾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자기 인생에 갑자기 엄마가 등장한 건 좋지만 소년은 엄마의 인생도 자신처럼 평탄치 않다는 것을 본다. 찜질방에서 돈을 훔치는 엄마를 본다. 미용실 사장인 후배에게 무시당하는 엄마를 본다 화날 땐 씨발이라고 욕도 하는 엄마를 본다. 그런 엄마가 안되기도 하지만 그런 엄마가 생겨서 너무 좋기도 하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때가 아니다. 소년원에 들어가기 전 만나던 소녀가 있었다.
자길 좋아한다고 했다. 잤다. 친구한테 소식을 들으니 소년이 소년원에 들어간 이후, 소녀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단다. 소년의 아이를 임신했고, 집에서 쫓겨나고, 아이는 입양 보내고, 소녀는 쉼터로 들어가고... 어렵게 소녀와 다시 만난 소년은 자기가 책임지면 될 거 아니냐고 윽박지른다. 미친놈. 그걸 믿을 사람은 없다. 동정할 순 있겠지. 지금 소년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엄마에게 털어놓는다. 후배에게 거짓 웃음과 싹싹 비는 손바닥으로 받은 푼돈으로 애 잠바 하나 사주는 엄마. 엄마는, 경악한다. 미친 듯이 화를 낸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아들은 소리 지르며 나간다. 소녀를 엄마처럼 살게 하지 않을 거라며. 여자는 아들에게 상처 입은 소녀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실감한다. 자신의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 되풀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타인의 의도에 아랑곳없이 각자의 삶은 꾸역꾸역 진행된다.
영화 파수꾼이 떠올랐다. 문제아 캐릭터로만 인식되던 고등학생 남자애들의 관계를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헤집어놓은 작품이었다. 영화 범죄소년은 마치 파수꾼의 프리퀄 같았다. 설정은 다르지만 소년이 겪는 생의 파고는 연결점이 많았다. 그 세대를 지나오면 다 잊어버리게 되는 것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 관심 두지 않았고 이름 모를 친구의 이야기로만 언뜻 들었던 이야기들. 주인공 소년 장지구 역을 맡은 서영주도 발군이지만 초반 이후 영화의 모든 흐름은 엄마 효승역의 이정현이 장악한다. 영화 내내 이정현은 화장기 없는 얼굴로, 이른 나이에 애를 낳고 풍파를 다 겪은, 하지만 여전히 철없고 현명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여자, 에 빙의한다. 가까운 이들에게 거짓말을 일삼으며 자신의 삶을 조금씩 연장하는, 당연히 욕먹을 짓이지만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역할에 투신한다. 무서웠다. 여동생 생각이 나서. 아주 조금만 잘못 방향을 잡았어도 이정현의 역할은 여동생의 모습일 수 있었다.(다행히 여동생은 방황기를 지났으나 저 나이 때 미혼모가 되지 않았고, 지금은 여성 브랜드 최연소 지점장이 되어 과거 비교적 나은 지원과 관심을 받았던 오빠인 나보다 잘 먹고 잘 산다.) 슬펐고 딱했다. 열일곱에 낳은 아들과 해후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살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는 젊은 여자리니.
음악, 조명, 공간, 말투와 표정들. 과장되지 않은 대사들. 새로운 소재가 아닌데 다시 들을 때마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섬세하고 매끄러운 영상미로 그린 영화였다. 초반 판사가 아이들을 다루는 모습에서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사정은 알지만 죄를 묻지 않을 수 없었던 판사처럼 인물과 사건 하나하나 안된 건 알지만 포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영화는 보이고 있었다. 겹겹이 쌓인 고난을 단순히 스펙터클로 처리하기보다는 소소한 완충장치 등을 통해 겨우 숨 쉴만한 영역을 구축해놓고 있었다. 한방에 KO 시키려 하지 않으려는 링 위의 상대처럼. 마지막 장면, 술집에서 일하게 된 여자는 새 집을 구하고 싶어 한다. 물론 당장이 아니라는 소리에 부동산주인은 그때 오라며 냉대한다. 웃는 여자의 표정. 다시 소년원에 들어간 소년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녀는 더 이상 세상에 혼자 던져진 여자가 아닌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