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빌, 라스 폰 트리에의 호의와 권리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도그빌

by 백승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이다. 그의 다른 작품 중 비평의 범주까지 다가갈 정도로 심도 있게 본 것은 없다, 기억나는 작품 몇 개만으로도 짐작하자면, 그가 영화를 실험 도구 삼아 의도한 세계관을 가공할 줄 아는 비범한 예술가 중 한 명이라는 점. 최근엔 안티크라이스트가 그러했다. 도그빌은 2003년도 상영작으로서 그보다 훨씬 이전에 화제가 된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도그빌이란 이름을 가진 구석진 시골마을이다. 영화는 연극 무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보인다. 오로지 영역을 구분해 주는 흰색 라인과 집과 공간을 나타내는 몇 개의 나무기둥만이 178분의 러닝타임 내내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으로 기능한다. 30명 남짓 농사와 소일거리로 살고 있는 이 도그빌에 그레이스(니콜 키드먼)라는 여자가 들어오면서 모든 사건과 갈등이 비롯된다.


원주민에게 처음부터 환영받는 이방인은 없다. 낯선 눈초리는 서로를 간격을 확인하는 본능적인 태도다. 심지어 그 이방인이 쫓기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다. 경찰과 갱단이 마을을 수소문하며 찾을 정도라면. 하지만 그레이스는 작가를 꿈꾸는 청년 톰(폴 베타니)의 도움으로 도그빌에서 역할을 얻는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찾아서 하며 어울리며 머물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회의도 하고 투표도 하며 그레이스의 존립 여부를 사람들은 고심했지만 꾸준한 호의로 그레이스는 마침내 받아들여진다.


일은 종일 이어진다. 맹인을 돕고, 아이를 돌보고, 밭일을 하는 등, 공동체 구성원의 하나가 되고자 하는 그레이스의 순수한 의지는 몸이 고될지 언정 꺾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도 이런 그녀를 점점 좋아하게 되지만 어색함이 사라지고 호의가 익숙해지면서 그레이스는 이방인에서 구성원으로 구성원에서 욕망과 시기의 대상으로 착취당하기 시작한다.


남자들의 암묵적인 성폭력에 시달리고 이는 무참한 오해를 불러온다. 격분한 여자들은 그레이스를 찾아가 둘러싸고 그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겨우겨우 일해가며 소액의 급료로 모아 온 피붙이 같은 인형이 눈앞에서 부서지는 고통을 겪게 된다. 유일한 성취가 사라지는 순간이었고, 이것은 차후 동일하되 잔혹한 방식으로 앙갚음하는 계기가 된다.


탈출을 계획하지만 이 또한 배반으로 인해 실패하고 대가로 목에 거대한 쇠고랑을 차며 노예처럼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이 모든 상황에서 단지 벗어나고 싶을 뿐, 마을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도움을 받아 이 고된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다. 진지한 감정을 갖고 있는 청년 톰은 그녀를 욕망하며 다가가지만 그레이스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당신도 다른 남자와 마찬가지로 날 대할 뿐이냐고 반박한다. 이 마을에서 자신을 가장 윤리적인 남자라 여기던 톰은 상처받는다. 톰은 그녀를 밀고한다.


갱단의 차가 들이닥치고 그레이스는 그들에 의해 쇠고랑을 풀고 갱 보스의 옆자리에 올라탄다. 그녀를 죽이려는 듯 보이는, 보스와의 대화. 그는 그레이스의 아버지였다. 보스는 그레이스에게 돌아올 것을 요구하며 권력을 제안하고, 그레이스는 마을 사람에 대한 동정 어린 태도를 보인다. 보스는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일침 하지만 그레이스는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이라고 변호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빛의 기울기가 바뀌고 그레이스가 마을 사람들을 보는 관점 또한 바뀐다.


보스는 말한다. 최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최선이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잘못된 최선도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레이스는 권력의 일임을 요구한다. 보스의 명령 아래 도그빌은 불태워진다. 모든 마을 사람은 기관총 앞에 사살당한다. 이 모든 광경을 그레이스는 관망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인형을 파괴했던 여자의 처단 방식까지 상세히 지시한다. 아이들을 죽일 때 어미가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살려준다는 조건을 걸으라고. 그리고 모두 죽는다. 갓난아이부터 맹인까지, 그레이스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다가 가장 결정적으로 배신한 톰 또한 그녀 손에 의해 처단된다.


영화의 결말은 마치 성경에서 묘사된 세기말의 심판 같다. 사랑과 관용으로 모두를 이롭게 했던 신의 아들을 무자비하게 죽음으로 이끈 대가로 결국 인류가 처참한 최후로 되돌려 받는 상황을 재연한 듯했다. 그레이스는 마지막까지 그들을 보호하려 했지만, 마침내 내린 결론은 그들의 존재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자신들의 삶을 사는 것이라 해도 결국 저렇게 존재하는 것은 세상을 더 악하고 오염시키는 것이라고 결론 내려 말살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인간의 타락에 신이 분노하며 대홍수로 쓸어버린 성경의 한 에피소드와 다소 맞닿아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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