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대학살에 대하여

조근현 감독. 26년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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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과거 오랜 기간 군인이 통치하고 있었다. 박정희와 전두환. 어떤 이들은 경제성장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독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난(81년 생) 그 시절을 피부로 겪지 않았다. 영향력이 적은 지역에 있었고 아주 어렸다. 학교에선 그들이 한 일들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선생님도 다른 어른들도 그들에 대해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덕분에 난 다른 책들과 뉴스들, 최근 팟캐스트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들로 인해 하나 둘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개인사 하나하나까지 낱낱이 알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 여기며 그들의 만행에 이해의 여지를 마련해 줄 수는 없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살인은 중죄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한다. 재판정에 세워야 하고 죄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이는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위로이자 국가라는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이게 무시되면 시스템이 붕괴된다. 살인을 저질러도 죄를 묻지 않고 방치한다면 누가 법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컨트롤할까. 길거리엔 시체가 즐비하고 매일 뒷골목은 피로 범벅되며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비명과 칼부림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무기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며 대규모 살인도 주저 없이 자행될 것이다. 좀비와 인간을 구분 짓는 기준은 사라지고 고통과 슬픔은 무표정보다 더 흔한 일상의 풍경이 될 것이다. 무력에 의해 지배될 것이고 약자들은 더욱 악랄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자가 이걸 명령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워 닥치는 대로 죽이라고.


영화 26년은 그들에게 부모와 형제를 잃은 이들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5.18 민주항쟁 자체를 다룬 화려한 휴가와 다르다면 지금도 버젓이 살아 지지세력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 대통령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풀의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뉴스나 다큐가 아닌 어떤 영화도 이를 시도한 적 없었다. 아니 시도할 수 조차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예술은 정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주어야 할 언론이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시청자를 우롱하고 있는 시국이다. 대한민국에서 영화는 결코 정치라는 소재를 갖고 놀만한 자유를 쟁취하지 못했다. 대기업이 알아서 눈치를 보며 투자나 상영관을 제한하고 여기에 발맞춰 배우들도 역시 선뜻 나서지 못한다. CF는 물론 직업적 수명을 단축시킬 위험을 감수할 용기는 누구에게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26년이 5.18 광주 이후 3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이유다.


영화를 만들게 된 의도와 이를 가능하게 한 의지, 거기에 담긴 억울함과 분노의 메시지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모든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이끌어가는 방식이나 캐릭터 배분 등에 대해 일일이 따지지 않더라도 영화적 재미에 대한 부분은 조금 아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후반까지 응축된 에너지를 단숨에 터뜨리며 엔딩까지 이어지는 방식은 그날의 역사와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일말의 카타르시스를 전달한다. 그(장광)에게 총구가 겨눠질 때, 그에게 발길질이 가해질 때, 곽진배(진구)가 피범벅 된 몸으로 울부짖으며 그의 목을 부여잡고 깨진 창 저격의 위치로 내밀 때 스크린 앞의 대부분의 이들은 방아쇠가 당겨지며 권력자의 최후를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나도 원했다. 내가 감독이라면, 영화적 판타지를 지휘할 위치에 있었다면 조금 더 강렬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 이해한다. 창작자의 고민은 깊었을 것이다.


영화를 같이 본 지인은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광주에서 한 시간 거리, 정서가 미치기에 멀지 않은 거리였다. 당시 인권운동을 했던 선생님이 비공식 루트로 공수했다며 5.18 영상을 보여줬다고 했다. 지인은 그때 본 광주의 지옥을 기억하고 있었다. 군인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에게 총을 쏴 죽였다고 했다. 임산부를 죽이고 배를 갈라 태아까지 죽였다고 했다. 도심에 탱크가 들어섰다고 했다. 군인들도 어렸고 군인들이 죽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시체가 쌓였다고 했다. 대학살은 독일이 유대인에게 저지른 것만이 아니었다. 보스니아, 르완다, 캄보디아 내전에서만 저질러진 것이 아니었다. 문재인과 박근혜가 대선 후보로 나선 이곳 대한민국에서 저질러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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