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민 감독. 광해, 왕이 된 남자
이병헌의 눈빛과 목소리를 가진 조선의 왕이라면?
이라는 궁금증 밖에 없었다. 류승룡은 늘 평균 이상을 보여줄 듯했고, 김인권은 등장하는 줄도 몰랐다. 한효주는 알았지만 (인상적인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고, 감독(마파도의 추창민 감독)이 누군지도 몰랐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는 이처럼 멀리 있었다. 유달리 길고 힘겨웠던 평일, 겨우 다다른 주말 중 2시간여를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만 은연중에 있었다. 덧붙이면 영화 초반에는 조금 까칠하게 굴었다. 박한 평가를 받은 나라의 리더를 영화라는 거대한 파급력의 미디어를 통해 재'포장'함으로써 일부 대선주자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부정적 여론을 긍정적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까지 했으니까. 광해(이병헌)가 수십 명의 신하가 있는 가운데 매화틀에 똥을 싸고 궁녀들이 밑을 닦아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여겨지는 2012 대선시즌을 지나는 가운데 (심지어 화려한 캐스팅으로 무장한) 조선의 왕을 다룬 영화라니.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 등의 TV 사극을 떠올렸다. 백성들이 원하는 왕의 캐릭터가 있었고, 높은 관심과 시청률을 거머쥔 작품들이었다. 영화 광해가 스크린 크기 말고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정적 예감은 기우였다. 편견이었고 억측이었다. 내가 틀렸다. 그것도 (첫 문단에서 말했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노무현이 떠올랐다.
그를 생각하니 뭉클해졌다. 천민이었던 하선(이병헌)이 조선의 왕 광해가 되었을 때, 그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광해가 된 천민 하선은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가장 따뜻한 대화와 믿음을 전해주고, 백성들에게 백성이 누리고 찾아야 할 기본권과 혜택을 돌려주려 했으며, 이를 막는 관리라 불리는 악인들을 경계하고 빠르게 문책했다. 이는 본래의 왕 광해가 가졌던 초심과 태도들이었고, 이후 정치가가 된 왕 광해가 잃어버린 것들이기도 했다. (개인적 관점과 판단으로) 가장 비정치적이자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던 대통령 노무현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었다. 나와, 나와 같은 생각의 우리가 보았던 그가, 혹시 하선이 보여준 광해의 모습처럼, 우리가 기다리던 왕에 대한 이미지의 총합은 아니었을까. 환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떤 대통령도 그와 닮지 않았으니까. 그 누구도.
하선이 분한 광해가 피를 토하는 사월이(심은경)를 안고 궁궐을 미친 듯이 뛸 때, 역모를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모진 고초을 겪던 이에게 진상과 진심을 물었을 때, 목에 칼을 겨누던 도 부장(김인권)의 자결을 막고, 네가 아닌 자신(왕)을 위해서만 그렇게 해달라며 칼을 돌려주었을 때, 쫓기다가 한때 신하였던 이의 목숨이 걱정되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었다. 약자의 보호자였고, 누명을 벗겨주는 의인이었으며, 위기를 기회로 쓸 줄 아는 현자였고, 은혜와 도리를 아는 사내였다. 인간. 왕이 아닌 인간이었다. 인간적 인간. 드라마와 영화가 아니면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인간적 이미지의 인간. 그런 인간이 왕일 수 있다니. 광해 주변의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던 관객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저런 인간이 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왕이라면, 지금의 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많이 좋아질 수 있을까. 저런 왕이라면. 저런, 한때 광해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하선 같은 왕이라면. 처음부터 왕이 아니었음을 알았으면서도 끝내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곁에서 오래오래 왕으로 남아주길 바랐던 그런 하선 같은 왕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기꺼이 섬겨 왕의 품격을 지탱해주고, 그를 돌보았을 텐데.
내가 그의 신하였더라도 목숨을 바치고 싶겠다.
생각이 들 정도로, (과거의 체온을 잃고 기생에 빠져 화를 입은 진짜 왕 광해보다) 하선이 그린 왕은 힘없는 나라의 가난한 백성들과 국운을 걱정하는 충신들이 진정 바라고 기다리는 왕의 초상이었다. 하지만 가짜도 진짜도 가짜를 돕던 이들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게 한철 연극이었음을. 끝날 수밖에 없고, 대역은 무대 밑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게 이상과 다른 현실이고 희망과 다른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는 것을 막으려면 또 다른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그래서 피투성이가 된 채 하선에게 마지막 절을 올리는 지부장을 보며 어깨가 떨렸나 보다. 짧은 한때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 이에게 목숨을 바치는 모습을 보니, 그때만큼은 왕과 신하가 아닌 인간을 향한 인간의 애정과 고마움을 절감할 수 있었다. 과묵한 남자의 영화적 의사소통이란, 저렇게 뜨거울 수 있다는 점을.
이병헌의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을 길게 보여줬던 장면을 떠올려본다.
그 안에 담긴 수백 가지 시간과 이야기, 의미들을 끄집어내기 전, 먼저 그 표정이 향해있는 곳을 주시해본다. 왕의 곁에서 왕을 걱정하며 나라를 걱정했던 또 한 명의 남자를 소개해본다. 허균(류승룡). 영화에서 등장한 그 어떤 이보다(심지어 광해보다 더)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바랐던 남자. 다음 5년의 거대한 변화를 앞둔 우리에겐 지금 이런 현실적 영웅이 필요하다. 가장 이상적 현실을 이루기 위해 가장 현실적 연극을 연출할 줄 아는 인간. 광해(하선)가 역사적으로 영화적으로 허상과 바람에 가까웠다면, 허균은 현실과 가장 낮은 담을 쌓은 실존 했으면 하는 인물이었다. 판타지를 실현해줄 만한 킹메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