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도키, 뉴욕, 끝나지 않는 연극

찰리 카프먼 감독. 시네도키, 뉴욕

by 백승권
movie_image (1).jpg









이토록 연극적인 영화를 경험한 적 없다.

아니 연극의 영화, 영화의 연극 같다. 인셉션이 마치 이 작품에서 거대한 모티브를 가져온 듯한 생각마저 든다. 연극과 현실이 교차한다. 현실은 연극이 되고 현실의 연극은 다시 현실에 개입한다. 현실의 인물들이 연극의 배우들에게 자기 역할에 대한 연기를 지시하고, 그러다 현실을 그대로 옮긴 연극의 인물들이 연극이 아닌 현실의 인물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평단의 호평을 받은 연극 연출가 케이든(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자신의 인생을 연극화시키기로 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일부를 세트로 만들고 그 도시에 거주하는 실제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한다. 자신의 현실을 연극으로 옮겨 연출하고 연출가 케이든을 맡은 배우는 연출가 케이든을 연기하며 현실에서도 케이든과 교류한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은 끝날 줄 모르고 그전부터 이미 케이든의 몸은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들고 있었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에 지친 케이든 아내 아델(캐서린 키너)은 현대미술의 대가로서 유명세를 얻고 딸과 함께 케이든을 떠나고 만다.


케이든은 점점 현실감각을 놓치고 딸을 그리워하지만 딸은 어느새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케이든이 보기에) 타락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고 케이든은 이를 원망하며 딸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지만 딸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약과 기계에 보조하며 생을 연명하는 케이든의 연극은 10년이 지나도 연습이 끝날 줄 모르고 스텝들은 지쳐간다. 그사이 케이든은 연극의 단역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고 묘한 관계를 이어나가다 헤어지고 또 다른 조연급 여배우와 결혼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연인과 두 번째 결혼생활은 연극으로 그대로 옮겨지며 연습을 이어간다.


케이든은 늘 같은 멘트가 녹음되어있는 전 부인의 자동응답기로 전화를 하고, 그녀의 숙소로 몰래 찾아가 청소를 하며 그녀를 향한 그리움과 공허를 달랜다. 중년의 케이든은 세월 속에서 백발에 가까워지지만 케이든의 생이 끝나지 않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연극의 연습 또한 수십 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는다. 배우는 바뀌고 무대가 수정되며 제목은 정해지지 않는다. 죽어가는 딸 앞에서 케이든은 (딸이 원하는) 거짓말을 하고 딸은 그 거짓말을 믿고 절망하며 케이든은 딸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한 여자와 훗날 세월의 힘에 증오마저 무색해져 버린 듯 초연한 표정으로 재회한다.


기승전결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전개. 연극 무대의 안과 밖 또한 잘 구분되지 않는 설정. 등장인물 또한 누가 현실이고 누가 극 중 인물인지 혼란스러운 상황. 더 이상 연극의 완성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케이든을 비롯한 연극에 참여한 모든 인물들이 연극 안에서 인물을 연기하고 그 긴 연습의 과정은 그들의 인생의 거대한 비중을 차지하며 연극은 인생이 되고 인생은 연극이 된다. 인간관계 또한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화내고 다시 만나고 갈등하고 고민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고민하고 뒤엉키고 후회하고 뉘우치고 뒤돌아보고 끝나지 않은 연극처럼, 현실과 연극의 구분을 두지 않는 인물들처럼 영화는 마치 각자의 인생 전체를 한편의 복잡하고도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하나의 길고 긴 우화이자 소동극처럼 표현한다.


영화 시네도키 뉴욕은 말한다. 죽지 않는 이상 배역은 사라지지 않고, 꼭 자기 자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대역이 자신을 연기할 수 있으며 그 대역이 현실로 침범해 현실의 주변인들을 갈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은 쉽지 않으며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병들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죽음들로 생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자신과 타인의 역할에 집중하며 그 비중은 단역에 주연으로 또는 주연에 조연으로 얼마든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고. 한 명이 인물과 세계를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개인 자신 뿐이며 남이 써준 대사라고 해도 자신이 오랫동안 읽는다면 그것은 끝내 자신의 삶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을. 틀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연습하고, 그들에게 이 생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야 하며 때로는 다수가 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자기 인생의 재현이라면 그것은 얼마든지 반복해서 전달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영화는 연극연출가 케이든을 중심으로 그의 관점에 보는 생의 관점을 그가 통제하는 거대한 연극의 준비과정과 그의 느리고 침전된 삶을 통해 보여준다.


이런 영화는 처음이다. 뒤늦게 알고 보니 찰리 카우프만의 작품.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보다 2년 앞서 제작된 것으로 봤을 때 과연 이 영화를 모르고 인셉션 시나리오를 완성했을까 싶을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카포티에서 보여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열연을 다시 상기하게 할 만큼, 눈을 뗄 수 없었던 영화. 그는 연극과 가정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시종일관 불안에 떠는 케이든의 생애를 연기하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벤자민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의 호연을 뛰어넘는다. 자기 자신 외에는 상대방에서 쉽게 노출하지 않는 인간의 숨겨진 대화들과 소소하고 다소 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감정의 교류를 시종일관 드러낸다. 종종 속마음을 들킨 듯한 인상을 주는 홍상수 영화의 인물들과도 비교할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블루 발렌타인, 연애의 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