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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30. 2017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불꽃놀이를 끝내며

변성현 감독.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프롤로그. ‪마틴 앤 존‬
‪호텔 아프리카를 그린 박희정 작가의 만화 중 마틴 앤 존이란 작품이 있다. 불한당 엔딩을 보며 떠올랐다. 영화의 모든 지점들 중 가장 새로워 보였다. 슬픔을 표현하는 새롭고도 근사한 방식이었다.‬

‪1. 혁신적인 또라이‬
‪재호(설경구)를 '마킹'하려고 현수(임시완)가 '입학'했을 때 둘의 스킨십은 '예쁜' 멍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을 안 믿고 상황을 믿던 재호의 생존 가이드는 거기서부터 이미 무너진다. 합리적인 이유로 믿게 되는 게 아닌 곁에 두고 싶어서 믿게 된다. 현수도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공감대 형성을 위해 꺼낸 엄마(남기애) 이야긴 패착이었다. 재호에겐 현수의 연인은 오직 자신이어야 했고 경쟁자는 필요 없었다. 재호는 경쟁자를 없앤다. ‬

‪2. 형 저 경찰이에요.‬
‪현수가 세상에 버려진 기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재호는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민다. 끝까지 함께하자고 맹세한다. 현수는 고백한다. 형 저 경찰이에요. 출소 후 둘은 같이 일한다. 샴쌍둥이가 된다. 버려진 놈들끼리 같이 무너지기로 한다. 재호의 평생 친구 병갑(김희원)은 이 풍경을 근거리에서 지켜보며 애만 끓인다. 재호에게 버림받고 펑펑 눈물 흘린다.

3. ‪근데 나는 형 믿어요‬
‪현수가 전 직장 상사의 뒤통수를 친 날과 재호가 현 직장 상사(이경영)의 목을 딴 날은 같았다. 전 직장 상사 인숙(전혜진)은 현수에게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니 엄마 니 애인이 죽인 거다. 현수의 동공이 흔들린다.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울분을 말리는 재호에게 맞을 때 흔들리던 동공이었다. 자신을 끝까지 이용하고 이제야 알린 인숙도, '믿는 형' 재호도 용서의 대상이 아니었다. 현수는 재호의 손으로 병갑을 죽이게 하고 자신의 손으로 인숙을 제거한다.‬ 병갑은 최후까지 정신 차리라며 친구를 만류하지만 재호는 멈추지 않는다. 돌이키기엔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4. 착해서 그래‬
‪재호는 이제 머리와 몸이 모두 알게 된다. 현수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원래의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리 왔다는 걸. 자신이 현수에게만큼은 사람을 믿었지 상황을 믿지 않았다는 걸. '착한 애' 현수를 이렇게 만든 죄를 기꺼이 받게 될 거라는 걸. 현수는 온몸의 뼈와 근육이 부서진 재호에게 다가간다. 그의 입과 코를 막고 꺼져가는 마지막 불꽃을 응시한다. 그토록 사랑했던 불꽃. 늘 자신이 죽인 이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재호는 그때만큼은 자신의 눈동자를 현수에게 건넨다. 부릅뜬 재호의 눈동자가 끝까지 현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숨을 잃어가는 재호의 몸이 들썩인다.‬

‪에필로그. 나 같은 실수하지 마라‬
‪마틴 앤 존 1권 마지막. 마틴은 존을 죽인다. 죽어가는 자는 죽어가며 자신을 죽인 자의 처지를 걱정한다. 현수를 향한 재호의 유언은 자신 같은 선택을 하지 말라는 거였다.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말. 현수는 다 잃고 버려진 재호처럼 살게 될 것이다. 자신을 죽이지 못한 자들을 죽여가며 재호가 왜 그랬는지 내내 궁금해할 것이다.‬ 정녕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고 잃어버린 시간들을 복기할 것이다. 그의 숨통을 끝까지 틀어막았던 자신의 결정을 원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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