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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27. 2017

쇼콜라, 맞는 흑인 웃는 백인

로쉬디 젬 감독. 쇼콜라



쇼콜라(오마 사이)가 가진 거라곤 커다란 몸뚱이뿐이었다.포효하며 괴물처럼 굴면 사람들이 좋아하며 돈을 줬다. 재기를 노리는 피에로 푸티트(제임스 티에레)는 쇼콜라에게서 기회를 본다. 팀을 만들자. 내가 때리고 너는 맞자. 극적이고 과장된 움직임으로 시선을 끌자. 반응이 올 거다. 나는 백인 너는 흑인이니까. 나는 백인 너는 흑인이니까.


쇼가 시작된다. 낯선 표정의 백인 중심 관객들. 침묵이 깨지며 입이 찢어진다.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줄을 선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서커스장이 터져 나간다. 하루아침에 쇼는 두 광대는 슈퍼 스타가 된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파리 입성. 쇼콜라와 푸티트는 우스꽝스러운 상황 안에서 때리는 백인 피에로와 맞는 흑인 피에로를 연기하며 쇼의 주류가 된다가는 곳곳마다 인파가 몰리고 플래시가 터지며 돈과 여자가 따라온다. 원시적인 괴성을 지르며 사람들을 웃기던 쇼콜라에게는 인생의 전환이었고 푸티트에게는 명성의 회복이자 더 큰 무대로서의 진출이기도 했다.


쇼콜라는 인기에 취한다. 술과 향락에 취하고 도박에 취한다. 노예나 다름없던 취급을 받던 흑인이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부상했고 화려한 옷을 입고 비싼 차를 타고 거리를 누빈다. 일부 백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푸티트는 우려 하지만 쇼콜라는 무시한다.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푸티트가 2배나 더 출연료를 받는다며 되려 분노한다. 쇼를 제안한 것도 모든 각본을 짜는 것도 자기가 아니냐며 답하지만 쇼콜라에겐 들리지 않는다. 둘은 갈라서고 쇼는 끝난다.


쇼콜라는 도박빚에 쫓기고 있었고 꿈꾸던 연기에 도전한다. 흑인 최초의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연. 혼신을 다했지만 백인들은 작품을 훼손했다면 분노한다. 쇼는 망하고 명성은 무너졌으며 쇼콜라는 더 이상 정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삶은 나락으로 치닫고 병으로 신음한다.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졌고 누리지 못했던 것을 누렸으며 꿈꾸지 못했던 것을 꿈꿨었다. 쇼콜라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고 푸티트를 향한 열등감을 해소하지 못했으며 후회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은 후였다. 우정이 빛나던 시절은 지나갔고 인기도 돈도 사람들도 모두 떠났다. 역사의 기록이 되었지만 개인의 삶은 망가진 후였다.


임종이 가까워지며 다시 마주한 쇼콜라와 푸티트는 복잡한 표정으로 눈물 흘린다. 흑인과 백인이 아닌 힘들고 화려했던 날들을 함께했던 친구로서 과거의 모진 말들과 결정들을 사과한다. 주변에 남은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둘의 진짜 무대는 거기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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