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란, 홍지유 감독. 두 개의 문
첫 장면, 거대한 불길을 품고 있는 망루에 하염없이 쏟아붓고 있는 물줄기를 보여준다. 비명이 들린다. 망루는 금세 화염에 휩싸인다. 전소된다. 망루 바깥 구석에 몰린 두 손을 치켜든 철거민은 비명과 오열에 어쩔 줄 몰라한다. 5명의 철거민이 죽었다. 진압을 위해 남일당 건물 아래층부터 올라오던 경찰특공대 중1명이 목숨을 잃는다. 망루 근처엔 경찰특공대가 진압을 위해 설치한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가 있었다. 건너편 건물에 있던 카메라(다큐의 주요 장면을 촬영한)가 광경을 담고 있었다. 주변의 수많은 눈과 귀가 목격하고 있었다. 투입되었던 경찰특공대의 수많은 캠코더에도 당시 상황의 급박함이 기록되어 있었다. 해석이 아닌 사실로 증거 할 수 있었던 장면들. 하지만 진실은 가려졌고, 사법부는 특수공무방해 치사 혐의로 농성에 참여한 철거민들에게만 처벌 판결을 내린다. 유족들은 울부짖는다. 사건은 종결된다. 당시만 해도 충격과 공포를 안겼던 끔찍한 불길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희미해진다. 2009년 1월 20일의 일이었다.
용산 참사. 개인적으로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진압 중 우발적으로 벌어진 화재로 인한 철거민들의 희생으로만 알고 있었다. 당시 안타깝게 여겼지만 금세 잊히고 있었다. 뉴스를 보던 안 보던 여론의 방식이 의도했던 수순이었고, 이에 순응하던 개인의 기억 또한 단순하고 무지할 따름이었다. 이웃과 국민이 아닌, 나와 다른 처지에 놓인 타인의 불행한 사건으로 치부했다. 교훈이라면 난 재개발 투쟁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 정도였다. 생존의 위기에 처해 공권력에 대항하는 케이스는 내가(또는 평범한 삶을 지향하는 누구라도) 꿈꾸는 미래가 아니었고, 상상하기 싫은 비극이었으며 결국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누군가의 지옥이었다. 내가 아닌, (낯설고도 두려웠던) 타인의 지옥.
[두 개의 문]은 이런 용산참사의 기억과 기록을 구체적으로 소환한다. 현장에 있던 철거민들은 죽거나 징역형을 판결받았다. 시신들은 유가족 동의 없이 바로 부검되어 신체에 남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당시 동원된 경찰특공대의 체증 영상과 진술이 담긴 기록의'결정적인'일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재판이 성립될 수 없는 상황, 변호인은 남은 기록과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균형의 균열. 현장의 끔찍한 순간들을 직접 체감한 이들은 4,5년 형에 처해지고, 경찰특공대원들은 단서가 될만한 부분의 기록을 지우고(추정) 입을 다문다. 다큐 [두 개의 문]은 타자의 입장을 통해 투영되는 현실의 지옥을 체감하게 한다. 현장을 겪은 이들의 입을 모두 덮어버린 상황에서, 명령이 시작된 곳과 특공대원들의 증언, 공개된 영상을 토대로 당시 현장의 극악함을 재구성한다.
불과 몇 시간 만의 강제진압. 철거민 측과 경찰특공대 양측의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고 체계적인 진압을 위한 작전 플랜을 짜기엔-아무리 위기의 순간에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는 특공대의 업무적 특성을 감안하다더라도-시간도 정보도 턱없이 부족했다. 컨테이너 박스도 제대로 운용되지 않았고, 심지어 망루에 다량의 인화성 물질(시너)이 있다는, 상부에서 알고 있는 기초적인(하지만 치명적인) 정보도 전달되지 않았다. 경찰특공대의 체증 영상에 담긴 처절했던 진입 순간들은 다큐의 목적이 단순히 철거민의 희생에만 초점을 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경찰특공대 또한 희생자였다. 그들에겐 스스로 판단하기보단 목적이 확실히 정해진 임무를 완수하는 게 더 중요했고, 이를 위해 남다른 훈련과 수많은 경험을 쌓았다. 이런 이들에게조차 용산 남일당 건물 진압은 진술 그대로'지옥'이었다. 화염을 피하기엔 방어 장비는 열악했고, 그들은 어둠 속에서 수시간을 미친 듯이 부수고 돌격했다. 그리고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입었다. 망루를 삼킨 거대한 화염 속에서 한 특공대원은 접근을 만류하는 철거민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이미 명운이 결정된 상황에서 인간의 본능은 또 다른 젊은 희생을 지켜볼 수는 없었으리라. 그리고 철거민은 그렇게 산화했다.
희생자 중엔 경찰특공대원도 있었다. 공식적으로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중에 이뤄진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무게가 철거민 5명보다 큰 것인가, 라는 물음에 누가 끄덕일 수 있을까. 철거민이 5명이나 죽었다. 테러 진압이 아닌 시위 진압과정 중의 일이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화염병을 든,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그리고 국민이었다. 균형은 무너진다. 특공대원 1명의 죽음엔 5년에 달하는 무거운 징역을 내리며 철거민의 책임을 묻지만 철거민의 죽음을 책임지는 이들은 없었다. 공문을 뿌려 연쇄살인사건을 키워 용산참사를 덮으라는 청와대의 지시 문건만 뻔뻔하게 만천하에 드러났을 뿐.
공권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견제장치인가. 소수의 기득권을 견제하기 위해 공권력이 공격력으로 존재하는 이상, 제2의 용산, 제2의 쌍용사태는 계속될 것이다. 감정을 증폭시키다 못해, 격한 감탄사조차 뱉기 어려웠던 장면들을 두 개의 문은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하게 전달한다. 쌍용자동차 사태도 이런 벼린 다큐멘터리를 통해 만나보고 싶다. 남은 임기, 더 많은 이들이 비극을 마주하게 될까 봐 두려워진다. 다큐에서 인터뷰하던 어느 기자는 말한다. 얼마나 우리 국민이 쉽게 묵인하고 받아들였으면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다시 덮이는 과정이 반복될 수 있겠냐고. 그게 더 무서운 일이라고. 약자와 소수와 타인이'나와 우리'와 구분되는 단어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감하지 못했다. [두 개의 문]은 이러한 망상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누구도 또다시 희생될 수 있고, 그땐 타인이 아닌 바로 나와 당신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용산참사 [ 龍山慘事 ]
2009년 1월 19일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용산 4구역 재개발의 보상대책에 반발해 온 철거민과 전국 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30여 명이 적정 보상비를 요구하며 2009년 1월 19일 새벽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대참사다. 검찰은 사건 발생 3주 만에 철거민의 화염병 사용이 화재의 원인이었고, 경찰의 점거농성 해산작전은 정당한 공무집행에 해당한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해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은 묻지 않고 철거민 대책위원장 등과 용역업체 직원 7명을 기소한 바 있다.
<용산참사 일지>
ㆍ2009년 1월 20일 : 경찰 철거민 강제진압 과정에서 화재 발생, 철거민 5명ㆍ경찰 1명 사망
ㆍ2009년 1월 28일 : 병원에 있던 철거민 대책위원회 이충연 위원장 구속
ㆍ2009년 2월 9일 : 겸찰 사건 수사결과 발표. 경찰은 무혐의로 결론. 철거민 20명ㆍ용역업체 직원 7명 등 27명 기소
ㆍ2009년 2월 11일 : 청와대, 연쇄살인사건으로 용산참사 여론 무마하라는 홍보지침 이메일 발송 드러남
ㆍ2009년 3월 26일 : 용산사건 국민참여재판 신청 기각
ㆍ2009년 4월 22일 : 용산사건 검찰 수사기록 요청에 검찰 불응. 재판부도 수사기록 압수신청 기각
ㆍ2009년 6월 1일 : 변호인단, 수사기록 압수신청 거부한 재판부에 대해 기피신청 냈으나 기각
ㆍ2009년 10월 3일 : 정운찬 총리 용산참사 현장 방문
ㆍ2009년 10월 28일 : 서울 중앙지법, 망루 생존 철거민 전원 유죄 판결
ㆍ2009년 12월 30일 : 협상 타결
출처_네이버 지식사전 [용산참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8282&mobile&categoryId=476
[두 개의 문] 제작노트(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detail.nhn?code=87975#making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