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에어리언 창세기

리들리 스콧 감독. 프로메테우스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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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으로서 사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연구하는 사람과 미래를 만드는 사람. 전자는 조상들의 흔적을 찾는 데 골몰하고 후자는 다양한 생산활동을 통해 훗날 전자들이 찾게 될'흔적들'을 만든다. 그 흔적들이 쌓여 미래를 형성하고 시간이 지나면 흔적들은 다시 과거가 된다. 물론 만드는 순간 과거가 되고 그러므로 모든 미래는 과거다 라는 오쇼 라즈니시 같은 접근은 다소 미뤄두자. 골몰하는 분야를 과거와 미래로 나누는 단순 이분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전자에 대한 정리를 하고 싶어서다. 이들이 몸담은 수많은 분야와 부르는 수많은 이름이 있지만, 통칭하여 과학자. 과거와 시초와 근원을, 처음의 끝을 지독하고 치밀하게 연구하는 사람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프로메테우스는 근원을 찾는 인간의 호기심을 다룬 영화다. 그리고 이런 호기심의 확장을 경고하는 기존 SF영화의 공익적 메시지로 끝나는 결말이 아닌 아닌 절반의 답이라도 알려주는 영화다.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후 미래, 인류 탄생의 기원을 궁금해하던'회장님'의 의뢰로 인해 우주대탐사팀을 실은 우주선 프로메테우스 호는 항해를 시작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2년의 동면에서 깨어나고 찾고 있던 목적지라 여겨진 행성에 착륙한다. 거대한 지형 물들, 미스터리 서클처럼 흰 선으로 그어진 거대한 그림들. 인류기원의 단서를 찾아내어 동참하게 된 박사 커플과 일행들은 탐사를 시작한다. 동굴을 헤매던 중 인간과 닮은 신체구조를 지닌 거대한 시체를 발견하고, 머리를 들고 우주선으로 복귀한다. 일행 중엔 최근에 가장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마이클 패스벤더과 똑같이 생긴 싸이보그가 있었고, 그로 인해 일행은 인류의 기원에 좀 더 근접하지만 통제불능의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가져온 머리의 헬멧을 벗기니 현존하는 인류의 생김새와 흡사한 얼굴이 있었다. 분석해보니 DNA 구조도 일치한다. 얘들이 그토록 찾던 인간의 조상들이란 소리. 성경에 나온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허구로 부정되는 순간이다. 이대로 지구에 돌아가면 진화론과 창조론을 뒤집는 것은 물론, 노벨상을 넘어 동상이라도 세워줄지도 모를 일. 하지만 그곳은 남의 영토, 가져온 것 역시 남의 신체,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이야기엔 거래의 법칙이 존재한다. 일행은 하나 둘 목숨을 잃어간다. 과거에 발견한 일치하는 코드를 지닌 벽화가 인류의 피조물들이 보낸 ‘초대장’인 줄 알았는데, 공격은 은밀하고 거세며 흉측하다. 거대한 오징어 다리가 달려들어 팔을 부러뜨리고, 입 안으로 돌격해 식도를 점령해버린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예정된 의도인지 금지된 장난이었는지 연인을 잃은 박사(누미 라파스)의 몸에서 그들(괴생명체)의 흔적이 자란다. 죽음을 무릅쓰고 배를 갈라 꺼내어 탈출하지만 이미 우주선 바깥 상황도 아수라장, 인류의 우주 조상들은 자신들의 피조물인 인간파괴를 목적으로 생물학적인 ‘대량살상 무기’를 준비 중이었고 도리어 인간이 착륙하기 전 그것들에 의해 역공당한 상황이었으며 행성은 인류 조상의 본거지가 아닌 군사기지 같은 영역이었다. 얽힌 관계, 공격과 방어의 대상은 모호하고 아무도 믿지 못하며 일행이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 남은 건 생존뿐. 영원히 살기 원했던 이는 단숨에 죽고, 죽어라 발버둥 치던 이는 살아남는 아수라장. 피조물을 집어삼킨 미지의 생명체는 집어삼킨 피조물의 몸통을 숙주 삼아 끈적이는 점액을 뒤덮은 채 튀어나와 아가리를 찢으며 제 모습을 갖춘다. 숙주. 점액. 길게 찢어진 아가리. 익숙하다. HR기거가 창조한 기괴한 생명체, 시고니 위버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괴롭히던, 에어리언의 탄생 순간이다.


미래와 우주, 외계 생명체가 주 소재로 다루는 SF 장르의 갈등의 시초는 우연을 표피 삼은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영화 말미, 막 죽다 살아난 몸으로 인류 파괴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또 다른 모험과 위험을 감행하려는 쇼 박사에게 사이보그 데이비드는 묻는다. 대체 이유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며. 이것은 애초 탐사의 발단이었던 인류의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과 연결된다. 목숨을 걸고 우주 저 건너편까지 와서 찾을 만큼 중요한 것인가? 인간의 호기심이 존재의 뿌리에 닿아있을 때 진실에 대한 접근은 늘 무언의 압력에 의해 차단되어 있었고 일부는 그것을 기어이 넘으려 해가며 거대한 화를 자초했다. 문명의 발전이 현재의 미진한 부분에 대한 개선을 추구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가능했다면, 프로메테우스의 핵심소재인 인간 근원에 대한 물음은 신의 행적을 좇는 성지순례 수준을 넘어선(또는 이러한 불확실한 믿음을 완전히 부정하는) 감각할 수 있는 분명한 생명력과 운동성을 갖춘 존재의 증거를 찾는, 시도 자체로서의 도발이었다.


첫 장면을 복기해본다. 하얗고 탄탄한 신체의 인간 조상은 검고 꿈틀거리는 액체를 마신 후 물속에 투신하며 분해된다. 장소는 마치 지구의 심장과도 같은 거대한 물줄기를 내뿜는 곳. 영화에서 한 방울을 마신 인간의 비극적인 최후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들의 인류멸망 시나리오는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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