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감독. 은교
사랑이란 소재를 표현하는 데 있어 금기와 파격을 시도한 영화들은 대부분 슬픔과 파국으로 끝났다. 아기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옛 애인을 만나러 간 부인(전도연)의 가슴을 수십 번 난도질한 후 화장실에 주저앉아 울던 남편(최민식)을 그린 정지우 감독의 99년 작 해피엔드가 그랬다. 양조위/탕웨이가 주연한 이안 감독의 영화 색계도 결국 위험한 사랑에 흔들린 여자의 결정적 변심으로 동료들이 모조리 처형당하고 만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역시 마찬가지다. 뱀파이어(김옥빈)와 신부(송강호)의 짧은 연애는 주변인 모두를 죽이고 자신들도 모래사장 위에서 불타 없어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 '은교'에서의 사랑은 처음부터 불구였다. 짝사랑. 50살 차이쯤 되는 나이차는 둘째 문제였다. 더러운 스캔들이든, 손녀 같은 소녀에게 어떻게 저런 감정을 품을 수 있냐는 등의 비난은 우습다. 몸을 섞었다면 범죄로 치부되었겠지만 노쇠한 육체의 이적요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짝사랑을 강간으로 끝내려고 했다면 은교는 좀 더 뇌쇄적으로 보여야 영화적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은교(김고은)는 소녀였다. 어른 눈치 안 보고 웃고 말하고 행동하는 그런 꾸밈없이 밝고 맑은 면이 도드라져 보이는 보통의 고등학생 소녀. 이적요(박해일)는 은교를 품지 않았다. 품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여자가 아닌 사랑으로 먼저 여겼기 때문이리라. 단순히 수컷의 정복 대상으로서의 은교가 아닌 존중과 보호의 대상. 70 노인 이적요는 10대 소녀 은교를 분명 사랑했다.
하지만 짝사랑이어서 그 사랑엔 불행이 예견되어 있었다. 이건 이적요의 남제자 서지우(김무열)에게도 예견되는 불행이었다. 서지우는 1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다른(결코 스승과 같은 별이 될 수 없는)' 별이었다. 그의 능력은 그의 욕망의 높이와 같지 않았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스승의 그늘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불운한 운명의 사내였다. 그는 스승 이적요을 존경했고 그의 수족으로 지냈지만 이적요의 능력은 서지우에게 전이되지 못했다. 서지우는 이적요의 능력을 사랑했지만, 결코 이적요는 서지우에게 제2의 이적요 같은 능력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단시간 만에 이적요의 시선과 애정을 독차지한 은교의 등장은 서지우에게 충격과 공포였다. 서지우는 질투했지만 이적요는 멈추지 않았다. 서지우가 먼저 이적요(의 능력)를 가지고 싶었지만 이적요는 순식간에 은교의 것이 되고 말았다. 영화는 서지우의 분노를 납득할 만큼 보여주진 못하지만 그의 억울함은 짐작으로도 충분했다. 은교의 자리는 처음부터 서지우의 자리였다. 은교가 받아야 할 대우는 서지우가 먼저 받아야 할 대우였다.
서지우의 (짝) 사랑이 은교에 의해 봉쇄당하자 서지우는 둘을 훼방 놓는다. 바보 같은 짓. 3자로 인해 흔들릴 사랑이었다면 나이차로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서지우의 질투로 인해 은교를 향한 이적요의 짝사랑은 더욱 활력을 얻는다. 이적요의 말투와 행동은 노인의 그것 같이 느리고 신중하지만 열망만은 피 끓는 청년과 다르지 않았다. 쭈글쭈글한 피부와 흰 머리칼로 뒤덮여 있으면서도 이적요는 소년과 청년의 영혼으로 은교를 품었다. 이적요는 점점 젊어지고 있었고 은교와의 거리 역시 가슴에 닿은 얼굴만큼이나 가까워져 있었다. 서지우가 없었다면 둘은 연인은 아니더라도 인생의 멋진 동반자, 배신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지우는 은교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은교에 대한 뜨거움을 글로 옮겨 놓은 이적요의 원고를 훔친다. 그것은 복수였고, 오해의 시작점이었으며 은교의 시선을 돌리게 한 계기였다. 은교는 사랑과 관심에 고픈 외로운 어린아이였고, 자신을 묘사한 글을 읽은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써줬다고 믿은 이를 향해 움직인다. 이적요는 그렇게 둘에게 동시에 배신당한다. 자신을 짝사랑했던 남자와,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자에게.
잠에서 깬 이적요가 본 건 남자와 여자의 격렬한 나신이었다. 그것은 이적요가 꿈꾸던 장면이었지만 그 꿈에서 남자는 이적요였고 보고 있는 현실에서 남자는 이적요가 아니었다. 서지우와 은교가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장면을, 이적요는 놀라움과 배신, 질투와 살의가 뒤섞인 표정으로 관음觀淫한다. 자신이 지니지 못한 육체와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육체가 오랜 세월 자신을 온전히 성장하게 해 준 성지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처녀와 수컷의 충돌이었고 오해와 복수의 충돌이었으며 사랑받고 싶은 욕망과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충돌이었다. 이후 결코 누구도 회복하지 못할.
돈과 명성으로 은교의 마음을 살 수 있었다면 이적요는 시인의 지위를 기꺼이 내려놓았으리라.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이적요는 말이 아닌 글로 당신의 진심과 진실을 원고지 안에 고백했고, 세상에 공개되어 모두가 들었을지언정 사랑하는 사람에겐 온전히 닿지 못하였다. 나이로 인간의 역할을 규정하는 세상에서 노인 이적요의 소녀 은교를 향한 사랑은 자유롭지 못했다. 소설과 영화가 결코 넘게 해주지 못한 것처럼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 이적요가 인간 은교를 사랑하는 게 더러운 건가? 누구나 죽을 줄 알면서도 삶을 이어간다. 아플 줄 알면서도 사랑을 한다. 끝을 예감하면서도 시작을 저지른다. 그건 자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적요는 죽는 순간까지 은교를 잊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노인이 아닌 남자로 다시 살게 해 준 '영원한 사랑' 은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