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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y 02. 2018

킬링 디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킬링 디어






수술 중 환자가 죽는다. 의사(콜린 파렐)의 평화로운 일상은 계속된다. 유려하고 호화로운 저택, 어여쁜 두 아이들, 지성과 다정함, 육체적 매혹을 모두 표출하는 아내(니콜 키드먼)까지, 견고하고 완벽하다. 의사는 종종 한 소년에게 마음을 쏟는다.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누고 부담스러운 선물까지 건넨다. 소년(배리 케오간)은 죽은 환자의 아들이었다. 소년은 의사에게 대안 아버지를 향한 의지를 넘어 밀착에 가까울 정도로 접근한다. 의사의 모든 장소에 소년이 있었다. 의사는 거리를 두려 하지만 소년은 더욱더 좁혀 들어온다. 의사의 모든 일상에 소년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의사의 일상은 변한다. 의사가 (담당 환자의 죽음으로 인해) 소년의 일상을 그렇게 만들었듯이. 


아이(서니 설직)가 쓰러진다. 의사의 아들이었다. 가능한 전문가와 의료 서비스, 정밀 검사를 동원하지만 원인이 없다. 소년은 의사에게 말한다. 당신을 제외한 당신 집안 모두가 죽을 거라고. 걷지 못하고 눈에 피를 흘리고 다 같은 신세가 될 거라고. 당신이 우리에게 아버지를 앗아갔듯,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정의'라고. 소년을 겁박해봤자 소용없었다. 의사는, 의사의 가족은, 의사의 삶은 무너지고 있었다. 농담처럼 이야기했던 누군가의 죽음이 나와 나의 우리의 비극이 되어 가고 있었다. 구원도 기적도 없었다. 의사는 어떤 상황도 치료할 수 없었다.


소년은 악마의 외모가 아니었다. 소년은 마치 주술사와도 같았다. 당신에겐 이런 일이 닥칠 것이고 누구도 어떤 수단 방법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경고하고 예언하고 실현을 함께 주시한다. 소년의 목을 조른다고 해서 하반신이 마비된 아이들이 다시 걸을 일은 없었다. 의사와 의사의 아내는 무력했다. 원인을 짐작한다고 해도 해결책은 없었다. 아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저쪽으로 먼저 기울어진 목숨의 저울은 이쪽의 목숨도 요구하고 있었다. 평행선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더 많은 피눈물과 하반신 마비와 죽음이 닥칠 예정이라 했다. 의사는 아비와 남편으로서 자기 목숨을 내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무의미했다. 모두가 당면한 상황에 대한 긴밀한 대책을 간구하고 있었다. 


러시안룰렛의 원시적인 버전이 이럴까. 궁지에 몰린 가족의 집단자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일까. 의사는 총을 들고 빙그르르 돈다. 모두의 눈이 가려져 있고 누군가의 목숨도 당장 사라질 수도 있었다. 총구에서 불을 뿜고 집의 일부가 박살 나기 시작한다. 언제 끝날까. 누군가의 몸에 구멍이 뚫리면? 누군가 죽어서 남은 자들을 살릴 수 있을까. 누군가 죽는다면 남은 자들은 감당할 수 있을까. 감당한들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고 더 먼저 죽은 이 역시 돌아오지 않을 텐데. 환자의 죽음에 대해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뉘우쳤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아무도 모른다. 지금 누군가는 이미 죽었고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었다. 한 세계가 이미 파멸했고 이를 촉발시켰던 다른 세계를 파멸시키고 있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휩쓸려 들어가는 순간 어떤 힘도 작용할 수 없었다. 


한 세계의 어른 남자가 죽었고 이는 다른 세계의 가장 어린 남자아이의 죽음을 요구한다. 어른 남자가 죽은 세계의 고통과 슬픔은 보이지 않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어린 남자아이가 죽어가는 세계의 고통과 슬픔뿐이다. 희생양. 어른이 저지른 죽음의 고통과 슬픔을 아이의 죽음의 고통과 슬픔을 통해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었다. 이런 계산법은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정량화시켜 합의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너무 난해하다. 또한 잔혹하기 그지없다. 나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너의 죽음뿐. 현세의 인류가 과연 후손들을 염려하기는 할까. 현세의 인류에게는 늘 대안이 있다. 미래가 위협받는 다면 다른 미래를 구상하면 그만일 뿐이다. 완전한 자멸을 막기 위해 불가항력의 희생을 치러야 했다고 울고 끌어안으며 서로를 위안할 것이다. 모든 침묵과 그림자 속엔 피와 눈물이 그득 고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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