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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y 02. 2018

비거 스플래쉬, 이별하러 온 남자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비거 스플래쉬








만인의 추앙을 받던 록스타는 목소리를 잠시 잃고 연인과 헤엄친다. 멈추고 싶지 않다. 한때 목소리로 세상을 가졌었지만 지금은 한 남자에게만 들려도 괜찮다. 풍광, 온기, 키스,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지 그랬다. 전 애인이 기어이 찾아내 비행기를 타고 이곳으로 오기까지.


전 애인은 악마가 아니다. 나쁜 기억도 있지만, 생애 가장 화려했던 시절에 함께했다. 하여 좋든싫든 함께 있으면 그때가 소환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진한 메이크업, 번쩍이는 의상, 넘실거리는 함성소리, 신과 다름없었던 시절. 하지만 헤어졌고 비견할 수 없는 사랑을 만났다. 그땐 그랬고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전 애인 해리(랄프 파인즈)가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다. 무례를 무릅쓰고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면서까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하나다. 바로 과거의 사랑, 모두의 잊을 수 없던 시절, 최고의 록스타, 눈부셨던 순간들의 상징 , 마리안(틸다 스윈튼)을 되찾기 위해서.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의 심기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해리의 존재는 마리안과 직결되고 자신과도 마찬가지다. 마리안의 전 애인이라니. 마리안을 존중하기에 해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마리안을 사랑하기에 해리를 사라지게 만들고 싶기도 하다. 마리안에게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존재이고, 부정할 수 없는 화려한 기억의 중심에 있기에. 폴은 타오른다. 해리가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해리의 목적은 오로지 마리안이다. 폴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구애한다. 마리안은 그럴 수 없다.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 완전히 폴에게 빠져버렸다. 폴과 마리안은 이 점에있어 완전체를 이룬다. 어떤 외부환경에도 서로를 떼어낼 수 없는 감정의 상태, 하지만 해리는 포기하지 않고 오두방정을 떤다.


해리는 혼자 오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젊음과 매력과 마력을 겸비한 여성과 함께 왔고 (애인이 아닌) 딸이라고 했다. 평생 모르다가 어느 날 알았다는 다 커버린 딸, 페넬로페(다코타 존슨). 페넬로페는 자신을 제외한 셋의 관계에 관여하지 않는다.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내뿜으며 모두를 신경 쓰게 만들만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리안과는 다른 연령과 매력의 소유자, 해리와 확신할 수 없는 (근친 의심을 사는) 혈연관계, 폴의 눈앞에 자꾸 걸릴 수밖에 없는 동선. 폴과 단둘이 있는 순간 페넬로페는 은근하고도 엄청난 화력으로 접근한다. 폴을 불편하게 자극한다. 아버지나 딸이나 폴의 시간과 감정을 방해한다. 폴은 페넬로페의 흔들기로 작정한 시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찰나의 유혹 따위로는 마리안을 향한 집착에 어떤 흠결도 낼 수 없었다. 그 사이 해리는 선을 넘는다.


해리는 마리안이 과거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왔다는 걸 직감한다. 애걸복걸해도 마리안은 미동하지 않았다. 수컷의 더러운 정복 욕구가 치밀고 충동과 폭력이 마리안을 거칠게 휘감는다. 마리안은 이런 행동의 내적 동기를 간파하고 있었다. 물리적 힘으로 제압한들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다시 한번 주지 시킨다. 육체의 상처는 낼 수 있어도 폴에게서 날 떼어낼 수 없을 거라고. 해리는 멈춘다. 더 이상의 죄악은 무의미했다. 어떤 결과도 만족할 수 없었다. 마리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들, 결국 자신에게 동시에 입혀질 상처였다. 멈춘다. 돌아선다. 넷은 같이 식사한다. 위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폴은 자신이 없는 사이 많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직감한다. 해리와 단 둘이 마주하고, (한때 친구였던) 짐승과 짐승은 물속에서 격돌한다. 패배한 본능과 분노한 본능이 뒤엉키고 이성은 어떤 제어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침략자는 수장된다. 사랑을 나누던 풀장은 사망의 구렁텅이가 된다. 과거의 환상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한 남자는 그렇게 발가벗고 헤엄치던 곳에서 끝내 헤어나오지 못한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탈 수 없었고, 페넬로페가 진짜 딸인지 끝까지 알 수 없었으며, 마리안의 사랑도 되돌리지 못한 채 모든 것과 이별하고 말았다. 자신의 모든 욕망에 노골적으로 솔직했던 자였고 결국 주체하지 못해 상대를 파멸시키려는 시도까지 자행했던 쓰레기였다. 그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헤엄치던 장소에서 모든 갈등과 호흡의 종지부를 찍는다. 남은 자들에겐 잠시 비극이었고 수습해야 할 사건이었으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방해자는 사라졌다. 폴과 마리안은 그 풀장에서 다시 사랑을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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