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Apr 10. 2018

더 타이탄, 멸망과 희망 사이에서

레나드 러프 감독. 더 타이탄



지구는 멸망 중. 인류의 개체수는 급감 중. 대체 행성을 찾아야 했다. 남은 인류가 뿌리내릴 곳, 후보지는 단 하나였다. 토성의 위성, 타이탄. 지구보다 네 배 큰 폭풍이 멈추지 않는 곳. 마틴 박사(톰 윌킨슨)는 급진적 주장을 내놓는다. 인류의 종을 변형시켜 적응해야 한다. 그래야 인류의 존속이 가능하다. 토양과 기후가 바뀌었으니 품종개량을 하잔 소리였다. 반박하기엔 멸종이 코앞이었고 집엔 아내(테일러 쉴링)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릭(샘 워싱턴)은 제안을 받고 기꺼이 참여한다.

이름하여 타이탄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우수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이들이 품종개량 과정에 참여한다. 끊임없이 주사를 맞고 훈련을 하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개량된 신체를 만들어 간다. 새로운 행성의 환경을 바꿀 수는 없으니 정착할 인류의 물성을 바꾸자는 프로젝트. 실험 참여자들에겐 호화로운 주택 등 안정된 거주 환경이 주어졌다. 불안도 엄습했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가담했지만 신체 변형과 함께 제어가 어려운 상황이 빈번해진다. 동료가 피를 토하며 눈앞에서 죽었을 때 남은 이들은 본색을 드러낸 공포의 맨얼굴에 어쩔 줄을 몰라한다. 박사는 멈출 수 없었다. 실험은 성공해야 했다.


박사는 진화론의 마지막 단계를 새로 쓰려했다. 지구를 벗어나 타이탄 행성에 적응할 인류. 이런 시도는 처음이 아니었다. 나치가 시도했었고 과정은 끔찍했다. 나사는 반대한다. 실험장을 제공한 군간부 또한 갈등한다. 하지만 박사의 명분은 단지 인류의 존속만이 아니었다. 그는 신인류 창조의 역사적 순간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를 위해선 어떤 희생도 상관없었다. 과학자가 신이 되려고 할 때 인간의 존엄은 실험체로 격하되었다. 결과 도출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고통은 변수가 될 수 없었다.


릭의 곁엔 늘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 남겨진 현재, 지켜야 할 미래, 릭은 희생이 두렵지 않았다. 박사는 그의 이런 의지를 적극 활용했다. 릭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위험한 진화를 거듭한다. 신체 개량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릭의 외형은 인간이 아니었다. 외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생명체, 그는 외계인의 낯선 외형과 생존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절박한 명분 아래 박사의 위험한 실험에 참여했고, 그는 그렇게 외계인이 되었다. 그가 머물 곳은 더 이상 지구가 아니었다. 


꾹 다문 입, 고요한 눈빛, 종종 드러난 폭력성. 릭이 어떤 심정으로 실험에 임하고 결과까지 다다랐는지 영화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변화하는 신체에 적응하지 못해 잠에서 깨고 거울을 볼 때마다 곁에는 늘 아이와 아내가 있었다. 폭주를 막고 이성을 말살시키지 않았던 유일한 브레이크였다. 아끼고 지키기 위해 가족을 지구에 두고 다른 행성으로 떠날 수 있다는 각오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가 자라며 아버지를 영웅으로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냐는 대사가 나오지만, 영웅이든 역적이든 당장 곁에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남편을 떠올리는 아내의 표정은 처연하다. 같은 시각 타이탄 행성엔 근육질로 뒤덮인 채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형체가 매캐한 창공을 날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염력, 실패한 아버지의 초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