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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03. 2018

염력, 실패한 아버지의 초상

연상호 감독. 염력






빚에 쫓겨 아내와 어린 딸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가족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딸은 자신과 눈을 마주쳤음에도 그냥 나간 아비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남은 모녀는 다 쓰러져 가는 시장통에서 치킨 장사를 했고 나름 알려져서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았다. 어느 밤 유리문을 무너뜨리며 덮치는 포클레인과 인부로 위장한 용역 깡패들. 석헌(류승룡)의 아내이자 루미(심은경)의 엄마(김영선)인 여자가 바닥에 머리를 찧고 숨을 거둔다. 건설회사는 다 쫓아낸 후 다 밀어버려야 새 건물을 지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남은 시장 상인들은 그들의 협박과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 돈을 벌며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끼여 버티려고 몸부림치던 여자가 죽었다. 석헌은 그제야 돌아온다. 버렸던 가족, 홀로 남은 딸, 루미에게로.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 삼촌(클리프 로버트슨)의 명대사를 석헌은 몰랐나 보다. 약수를 삼키며 찾아온 초능력은 석헌에게 정작 필요한 큰 힘(권력)으로 발휘되지 못했다.(그래서 책임질 대상조차 없었다.) 울던 루미를 그치게 하지도 부자가 되지도 못했으며 건설사 임원(정유미)의 벤츠를 찌그려 뜨렸을 뿐이다.(초능력으로 그녀를 죽였다면 보다 현실을 복제한 상황의 심각성이 부각되지 않았을까) 철거 용역들을 막기 위해 벽을 쌓은 건 임시방편의 단절처럼 보였다. 초능력이 발휘되는 영화에서조차 현실은 구제되지 못했다. 건설사 임원은 새 차를 다시 뽑을 테고, 용역들은 다른 재개발 지역으로 가서 사람들을 때리고 그들의 건물을 부술 것이다.


피로에 찌든 얼굴과 남루한 옷차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조차 배척당할만한 비겁한 모습 사이에서 초능력은 환각처럼 잠시 다른 꿈을 꾸게 했다. 그리고 돌아와 맥주잔을 날랐을 뿐이다. 힘의 사용법을 석헌은 몰랐다. 끝까지 남루했고 그의 딸 루미는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채 계속 치킨 장사를 하는 노동자로써 생계를 이어야 했다. 부자가 깡패를 고용하고 깡패가 수하들을 시켜 다수의 생존권을 빼앗는 동안, 극적으로 주어졌던 초능력은 어떤 구조도 흔들지 못한 채 잠깐의 분노만 띄우다 추락한다. 아내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복수도 할 수 없었고, 딸의 처지는 바뀌지 않았다. 자신의 눈을 봤으면서도 버렸던 아비에 대한 불안이 사라질까. 루미는 초연했다. 현실을 받아들인 자의 태도. 석헌은 (노력했지만) 부적응자였고 어미는 피해자이자 희생자였으며 자신은 그저 생존을 위해 버티는 하층민이었다. 초능력조차 어쩌지 못하는.


포클레인과 쇠파이프가 지배하는 가혹한 현실이 석헌의 지난 선택에 어떤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을까. 살다가 힘들면 가족을 버릴 수도 있고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고 사는 내내 남편은커녕 아비 노릇도 제대로 할 수가 없더라, 아이고 힘들다, 살다 보니 그게 인생이더라... 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면 그만인가. 영화 염력이 보여준 성취라면 (현실을 초월한 능력을 지니고도) 끝내 누구의 삶도 본질적으로 개선하지 못한 성인 남자에 대한 한없이 초라하고도 끈질긴 조명이다. 아버지 세대에 대한 비관을 이렇게 너절할 정도로 보여준 건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1999)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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