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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02. 2018

온리 더 브레이브, 화염 중독자

조셉 코신스키 감독. 온리 더 브레이브






마약을 끊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 다시 거대한 불과 싸우기로 했다. 화마에 인격을 부여한다. 멀리 산과 하늘을 뒤덮는 불에게 말을 걸고 있다. 어디 한번 덤벼보라고. 한때 같은 중독자였던, 아내 아만다(제니퍼 코넬리)는 불안하다. 소방관이라는 그의 직업, 더 위험하게 느껴지는 불을 향한 의지. 의도는 한없이 정의롭지만 그에겐 아이언맨 슈트가 없다. 에릭(조쉬 브롤린)은 당장이라도 죽을 듯 불과 싸우려 뛰쳐나간다. 불은 또 다른 마약이었다. 에릭은 또 다른 중독자였다. 


가시적인 피해규모로만 볼 때 불의 파괴력은 마약을 능가하고 있었다. 수천 년 동안 뻗어온 나무를 불태우고, 검고 자욱한 연기는 지옥이 도래한 듯 천공을 뒤덮었으며, 가공할 생명력으로 사람과 건물을 덮쳤다. 에릭과 그의 팀은 불을 막기 위해 불의 예상 경로에 또 다른 불을 지른다. 또 다른 불이 미리 태워버린 곳에서 거대한 화마는 길을 잃고 소멸되었다. 그렇게 에릭은 수차례 불과의 싸움에서 승리에 도취되었다. 불과 싸워 이긴 자라니. 마치 신화에 나오는 영웅과도 같았다. 아마 그렇게 에릭은 자신을 영웅화시켰을지 모른다. 이게 없었더라면 그는 불과 맞설 수 없었을 것이다. 아늑한 문명에 밀착한 정신으로는 불의 심연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는 불을 이해하고 다스리며 잠재우는 자였다. 세상이 그의 성취를 격찬했고 더 큰 도전과 위험으로 밀어 넣었다. 마약중독자에서 세상을 구한 영웅 대접이라니. 그는 우쭐대지 않았다. 삼키고 삼켜 팀을 정비하고 팀원들을 독려했다. 자신의 지위를 더 고결하게 가다듬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내의 바람대로 아이를 낳고 여생을 좀 더 심심하지만 안전하게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릭은 그럴 수 없었다. 에릭은 중독자였다. 


양아치 같은 놈이 자기도 팀에 끼워달라고 했을 때 에릭은 단칼에 꺼지라고 한다. 브렌든(마일즈 텔러)은 헐떡 거리며 의지를 증명하려 애썼고 에릭은 그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본다. 같은 팀에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이라니. 에릭은 기회를 준다. 실수하고 기존 질서와 부딪치는 브렌든의 목숨을 구하고 그가 자신처럼 또 다른 중독에 길들여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심과 애정을 쏟아붓는다. 팀은 더욱 견고해지고 더 큰 보상의 기회를 얻는다. 지역사회의 안전과 정치인의 입지에 기여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또 다른 불길이 다가온다. 에릭은 멀리서 수를 읽는다.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아만다를 위해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고,더이상 불과 맞서지 않기로 했다. 이번 불길은 걷잡을 수 없었다. 마지막 불길. 에릭은 관성처럼 불길에 뛰어들었을까. 에릭과 팀은 평소의 전략처럼 거대한 불길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구하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한다. 무모함.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면 아얘 시도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의 에릭도 팀도 없었겠지. 불길과의 거리가 평소와 달랐다. 불길의 아우라 역시 평소와 달랐다. 에릭과 팀은 뒤덮는 불길에 대비하기 위해 평소 훈련했던 대로 땅을 파고 엎드리고 방열 장비를 뒤집어쓴다. 


이곳에서 에릭의 중독 연대기는 막을 내린다. 멀리서 불길의 경로를 살피는 임무를 맡았던 브렌든 외에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들이 직접 겪었을 열기와 고통은 짐작만으로도 유족들의 전신을 무너뜨렸다. 아만다는 생애 가장 참담한 뉴스에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친다. 브렌든 역시 자신의 롤모델과 동료들을 모두 잃었다. 모두 잃었다. 세상이 사라졌다.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모를만큼.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 농담과 웃음들, 공기와 땀, 흙먼지, 어이상 팀도 에릭도 우정도 없었다. 누구를 무엇을 원망할 수 있을까. 더이상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던 불? 인명피해를 막으려 했던 에릭? 불은 의도가 없었다. 불은 지나가고 불이 지나간 자리의 모든 게 소멸되었을 뿐이다. 한때 영웅이라고 불렸던 남자와 그를 사랑했던 한 여자의 전부가 연기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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