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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r 29. 2018

로우, 빨간맛

줄리아 듀코나우 감독. 로우





제모를 하다가 지인 손가락이 잘린다. 피를 본 지인은 기절한다. 구급차를 요청하고 절단된 손가락을 보관하기 위해 얼음을 찾는다. 열악한 기숙사, 고장 난 냉동실, 잘린 손가락에서 피가 흐른다. 안절부절못한다. 피가 뚝뚝 떨어진다. 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피를 빨아 마신다. 피를 빨아 마시고 잘린 손가락의 살점을 뜯어먹는다. 마치 닭발을 다루듯. 잘린 손가락의 뼈가 드러난다. 살점은 입 속에서 혀와 섞이며 점점 더 작아지고 작아진다. 삼켜지고 소화액 속에서 사라진다. 무아지경.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사람의 빨간맛. 


늘 닥치는 대로 식인을 즐겨온 게 아니다. 천재라는 평가와 함께 입학한 수의대, 주변엔 온통 죽은 동물을 해부해서 담은 유리병과 피칠갑은 한 가운을 입은 미친 선배 새끼들 밖에 없다. 어떤 대학 생활의 시작을 기대했든 지옥의 발견과도 같은 이미지들. 첫날부터 침대가 창밖으로 던져지고 굶주린 짐승의 무리처럼 기어 다녀야 하며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 처음 본 사람과 몸을 섞어야 했다. 거부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세계. 죽은 토끼의 장기를 씹어 삼킨다. 그때부터 저스틴(가랑스 마릴리에)의 깊은 곳 어딘가에서 깨어나는 육욕이 있었다. 달라진 세계, 달라진 주변인들 그리고 달라진 본성. 미치지 않고선 1초도 견딜 수 없는 변화 속에서 뒤늦게 발견된 식인 본능은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모르고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만 제외한다면. 


알렉시아(엘라 룸프)는 저스틴의 이런 면을 발견 후 도로변으로 데려간다. 빠르게 오는 자동차 앞으로 몸을 던진다. 피하려던 자동차는 가로수에 처박힌다. 피범벅이 된 차 내부,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몸과 머리가 깨져 있다. 사람 맛을 갈구하는 자들의 위험하고도 은밀한 사냥법. 저스틴은 점점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 완전히 변하가는 자신에 낯설어한다. 벼락 같이 떠안게 된 운명을 고민하고 결정하기엔 이제 겨우 대학교 새내기였다. 숨기기엔 너무 강했다. 섹스 중 자신의 살점을 물어뜯을 정도로 욕망은 자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현재의 인간은 과거의 인간에게서 옮겨진 유산을 지닌 채 삶과 세상을 움직인다. 선택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다. 자산은 탕진할 수 있고 가족은 버릴 수 있지만 태초 장착된 본성은 어쩌지 못한다. 살인자가 살인자를 낳고 흡혈귀가 흡혈귀를 낳는다는 단정은 투박하지만 이 외에 저스틴의 행위를 설명할 방법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저스틴을 낳은 자가 저스틴의 현재를 설계했다. 평생을 억제시키려 채식을 강요받았지만 둥지를 벗어난 새끼는 바로 이빨을 드러냈다. 인간은 찰나의 쾌락에 몰두할 뿐 생식과 출산, 그 이후의 새로운 생명의 행보까지 챙기려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저스틴의 스무 살은 그 결과보고서였고 이제 누구도 다음 희생자의 출몰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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