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Mar 28. 2018

올 더 머니, 추악한 자본의 상징

리들리 스콧 감독. 올 더 머니



세계에서 가장 부자, 아니 세계 역사상 가장 부자 폴 게티의 손자가 납치된다. 의지가 있었다면 범인들의 삼대를 멸족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에게 손자(찰리 플러머)란 자신의 자산, 그것도 핏줄이라는 고유 자산. 원래 자기 것을 자기 돈과 바꾸는 건 그가 '일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렇게 1원의 손실도 허용하지 않는 방식을 고수하며 제국을 축조했다. 손자의 신체 일부가 잘려 봉투에 담겨 날아와도 소용없다. 미동하지 않는다. 가진 자본의 약간의 이자만 내놔도 범인들이 요구하는 액수를 충당할 수 있었으나 그런 손실을 용납할 수 없다. 타인과 다른 관점으로 생명의 가치를 매긴다. 벽에 걸린 수천 점의 그림 중 하나만 처분해도 손자를 구할 수 있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사고방식이 없다. 많이 봐주고 봐줘서 세금공제가 되지 않는 금액 이상을 지출할 수 없다. 세상이 집중한 사건, 세상을 움직이는 자본의 중심에 선 인물, 세상의 모든 카메라 플래시가 그들 주변에서 터진다. 차를 가로막고 눈을 멀게 할 만큼.


같은 시간 게일 해리스(미셸 윌리엄스)는 미쳐 죽을 지경이다. 아들이 납치되었는데 남편이란 새끼는 마약중독으로 천지 구분 못하는 등신이고, 세계 제일 재벌이라는 할아비는 1원도 줄 수 없다고 요지부동이다. 사정사정 발악하니까 소액을 줄 수는 있으나 양육권을 포기하라고 난리고 할아비가 보냈다는 협상가(마크 월버그)는 총 한 자루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거만 떨다가 아들 귀 한쪽이 잘려 날아오는 지경이 되기까지 아무것도 못한다. 세상 모든 카메라 플래시와 난처한 질문들이 가는 곳곳마다 온몸을 난자할 듯 따라온다. 돈이 없다. 돈이 없다. 명품 옷과 고급 승용차를 끌만한 돈이 아니다. 범인들이 요구하는 수백억이 없다. 줄이고 줄이지만 그래도 수십억. 시아버지가 싸인 하나만 하면 아들은 애초에 멀쩡히 돌아왔을 텐데.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곳에서 아들의 생사가 확실하지 않은데 자본가들과 변호사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시작이자 끝이었다. 돈,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고, 그 돈에 세상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게일은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일 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들과 바꿀 돈이 없어서.


폴 게티는 로마를 동경했다. 천문학적 금액을 들여 그들이 누리던 공간과 건물을 똑같이 재현한다. 로마 제국을 다스린 자들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고 싶어 한다. 허상과 환상, 폴 게티는 자본으로 초월하려 했다. 유일한 무기, 유일한 갑옷, 유일한 지위, 자신을 상징하는 유일한 존재. 자본과 자본으로 이룬 것들로 둘러싸여 폴 게티는 영원한 영예를 꿈꾼다. 스스로의 두상을 조각한다. 영원히 기억되려 한다. 최소한 스스로에게 그렇게 각인되려 한다. 모두가 석유가 묻힌 땅으로 다가가는 방법을 망설이고 있을 때 대형 선박을 만들어 개척했던 인물, 세상이 그의 성취와 자본에 고갤 숙이고 있었다. 가는 곳곳마다 경호가 이뤄지고 왕국과도 같은 공간 속에서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서슴지 않으며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 합법적인 경로로 구할 수 없다면 장물이라도 기꺼이 지불한다. 환상의 제국의 중심이었고 손자는 이 영원한 망상의 상속자였다. 그가 납치 당해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폴 게티의 회로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다. 늘 해오던 거래가 아니었다. 룰이 달랐다. 그래서 동의할 수 없었다. 거부할 수 있었고 거부했다.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는 평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는 동시대와 동일한 중력 안에 거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안고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 자 같았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숨이 스르르 꺼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시켰고 독보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다. 남은 자들에겐 재물이, 죽은 자에겐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았다. 그를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와 마음을 바꾸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하고 말았다. 의도였을까. 아니 그는 평생에 걸쳐 이런 결과를 준비해 온 자 같았다. 아랑곳없는 태도로 모두를 파멸에 이끌지라도 이를 후회하지 않는 자.(고대 로마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황제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혈연까지 외면하는 추악한 자본의 상징으로 남겨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너무 한낮의 연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