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신건 프리처, 사람 잡는 목사

마크 포스터 감독. 머신건 프리처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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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통해 감동을 줄 수 있다. 기도를 통해 모두의 바람을 전한다. 헌금을 통해 가난한 이를 돕는다. 세례를 통해 새로운 믿음을 생성한다. 무료급식소를 통해 굶주린 이를 먹이거나 신방을 통해 그늘 진 이들을 돌보거나 예배를 통해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다. 저술활동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기도 한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목사의 역할이란 대게 이런 것들이다.

신학을 전공 후 대학원과 해외연수 등을 통해 일정한 자격을 취득한 후, 신의 대리인이 되고자 하는 깊은 신앙심과 비전, 의지와 사랑을 안고 목사가 된 후 자신이 소속한 교회 안에서 저러한 일들을 하며 목적을 이룬다. 좀 더 세세하거나 다양할 수 있겠지만, 30여 년 가까이 지켜보니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모든 종교의 근본적인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흔히 기독교를 따르는 교회의 수장으로 불리는 목사들의 목적 역시 무지한 주의 자녀들을 일깨워 주의 품 안으로 이끄는 것일 게다. 이를 위해 자신의 생을 던져 매일 매주 새벽예배와 기도와 찬송을 쉬지 않겠지만,

하지만


신과 그 자녀들을 아무리 사랑하는 목사라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서울의 목사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병원비를 책임질 수 있을까. 미국의 목사가 북한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해 식량원조를 단행할 수 있을까. 아니 좀 더 가까운 일로 우리 이웃들에게 벌어지는 범죄를 막아줄 수 있나. 실질적이고도 물리적인 고통의 원인이 되는 폭력과 납치, 강도와 살인을 막아줄 수 있나.

신의 임무를 자처한 목사의 비전은 세상에서 가장 드높을지 몰라도 이들이 개인과 단체의 힘을 빌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그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 드는 비용과 시간은 결코 쉽게 책임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웃을 해하는 무리들이 총과 칼로 무장했을 때 누가 쉽게 약한 자들의 맨 앞에 서서 이를 막아줄 수 있을까? 그 '악한' 무리들이 신을 비웃고 성경을 모르며 신의 말씀에 귀를 막는 이들일 때 목사는 과연 신의 이름으로 그들의 총과 칼에 대항해 상해를 입힐 수 있을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까?

여기 한 명의 목사가 있다.

누가 봐도 할리 데이비슨이나 타고 다니며 캠프파이어를 좋아하는 라이더처럼 보인다. 그는 마약중독자였고, 죄수였으며, 폭력을 남용했고, 칼로 사람을 죽일 뻔한 적이 있었다. '술집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뤘고, 아이를 가졌지만 그의 성품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그의 아내를 통해 신을 가까이 한 뒤 변화한다. 모범적인 가장이 되고 헌신적인 남편이 되며 따뜻한 아빠가 된다. 매춘부, 마약중독자 등 그늘 진 이들을 위한 교회를 짓고 그곳의 목사가 되어 모든 것을 안정적으로 바뀌어 나간다.

그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살려 아프리카 북동부의 수단에서 집을 짓는 일을 하던 중, 그곳의 사람들이 처한 참상과 마주한다. 독재자로 인한 내전으로 인해 밤중에도 군인들이 찾아와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신이 없음을 목격한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아원을 짓고 교회를 세우지만 그의 의지가 실행으로 옮겨질수록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적들의 공격 또한 거세어진다.

그는 더 이상 집을 짓는 톱과 망치로는 그들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총을 들고 적을 겨눈다. 적의 차를 부수고 아이들을 해하기 위해 달려드는 상대에게 총알을 갈긴다. 그는 그곳에서 매번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 옳은 일에 대한 명분이 분명하면서도 자신의 한계가 얼마나 명확한지, 모든 힘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이 속출하는 상황 속에서 절망하지만, 자신마저 포기하면 그곳에 남는 건 피와 울음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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