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토 글쓰기 모임 <쓴다고 달라지지 않겠지만> 첫 번째 시간을 마치며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렀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고 모두 대처할 수 없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도 단 하나만 시도할 수 있었으니까). 그중 허기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아니 허기는 중요했지만 최우선은 아니었다. 우선 결계를 치고 싶었다. 처음 모일 모두의 눈을 멀게 하고 싶었다. 날 처음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오해해줬으면. 최소한 이만큼, 이 스타벅스 알록달록 마카롱만큼 정도는 뭐...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딱 겨우 이만큼 정도의 선물은 준비할 수 있는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줬으면. 하는 같잖고 하찮기 그지없는 의도가 있었다. 비몽사몽의 여파 아니냐고 추측할 수 있겠지만 며칠 전부터 생각해둔 점이었다. 그래서 마카롱은 결정적 역할을 했느냐. 아니, 그럴 리가. 삶이 이렇게 예측 가능했다면 난 다른 방법을 간구했을 거다. 마카롱은 그냥 마카롱이었다. 이따금 부스럭거리는 포장지 뜯는 소리를 내는.
며칠 전부터 수면 패턴이 바뀌었다. 커피는 늘 들이붓고 있으니까, 요인으로 꼽기는 그렇고. 긴장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날아온 제안. 글쓰기 모임의 리더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제가요? 아니 그보다 제 회사 멜 주소는 어떻게 아시고... 어쩌고 저쩌고... 네 재미있겠네요. 하겠습니다. 그런데 최소 정원이 8명. 미달이면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네? 네...(설마). 커리큘럼 전달. 상실의 글쓰기. 타이틀 수정. 나머지 내용은 그대로. 나와 가족과 지인과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가장 껄끄러운 접근. 몇 주 후 멤버 모집 시작. 메일이 날아왔다. 지금까지 지원하신 분은 1명입니다. 아(망했구나). 며칠 후 메일이 날아왔다. 지금까지 지원하신 분은 3명입니다. 아(진짜 망했구나). 하하... 포기. 그렇게 추석 연휴가 지나고 전화가 왔다. 하시죠. 네? 네. 근데 왜... 최소 정원이 찼음. 아... 이런 소년소녀 만화 같은 일이. 그렇게 수면 패턴이 바뀌었다. 어떡하지.
급격한 심리적 위축 증세를 보이며 눈에 불이 켜져 이불을 태우는 일은 없었지만, 적어도 팔이 닿지 않은 니트 속 옷핀처럼, 신경 쓰였다. 그래, 잘할 수 있어! 이런 정신무장이 필요한 상황이 (전혀) 아니라. 뭐가 뭔지 한톨의 선명한 그림이라도 그려지면 좋을 텐데. 사이트와 리뷰를 뒤진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강의나 프레젠테이션 같은 비교적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의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피어오르는 모든 의문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하나의 주제. 완전히 다른 곳에서 온 타인들의 집합. 잘 모르는 동네. 리더님, 영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저는 이만 분신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여기에 쓰다가 죽으러 왔거든요!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삶은 늘 극히 낮은 확률의 일들이 터지며 이어져 왔으니까. 물론 아무도 죽지 않았다. 경찰서에 갈 일이 생기지 않아 다행히 이 글을 쓴다. 잠을 며칠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스타벅스에 들렀고 택시를 탔다. 하나 둘 두리번거리며 문을 여는 사람들. 시작되었다.
실수가 예정된 말들이 부유하는 시공간이었다. 안갯속에서 서로의 소리를 겨우 만지며 시간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뻘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몸과 그 몸을 벗어나지 못한 단어와 문장이 겨우 서로의 손과 발을 부여잡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기억나는 말들이 모두 나온 후 기억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려다 잠시 고개를 저었다. 너무 사명감에 사로잡히신 거 같아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여기서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너무 많은 정의를 내리며 꽁꽁 묶어 놓았고 모두가 보는 가운데 (나를) 물속에 빠뜨린 채 어서 모두가 환호할 정도로 스펙터클하게 빠져나오라고 숨통을 틀어막으며 압박하는 중이었다. 내가 내 머리와 어깨 위에서 짓누르고 있었고 모두가 그 환영을 보고 있었지만 나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잠을 덜 자서 그런 거 같아요. 말과 말들이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을 퍼지고 있었다. 시작은 반이 아니었고 영원과도 같았다. 자기소개를 마치고 진짜 글을 쓰는 시간이 되었을 때, 합의된 침묵에 빠졌을 때, 그때조차도 헤매고 있었다. 모두가 조금은 지금 이 상태의 나와 비슷하겠지. 붙잡을 위안은 이 하나였다. 모두의 첫 글을 각자 읽었다. 겨우 정제된 글들이 소리가 되어 퍼져나갔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매번 달라지지만 <쓴다고 달라지지 않겠지만>을 관통하는 목적은 하나였다. (글쓰기를 통한) 가까운 어둠과의 완전한 직시. 앤드류 솔로몬이 말한 '한낮의 괴물'과 글로 맞서고 섞이고 인정하고 다시 싸우고 계속 싸울 의지를 다지는 것. 글쓰기 행위가 일상의 독소가 담긴 낭만적인 배설물로 쏟아져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생존 도구로 기능하길 원했다. 누구보다 내가 그랬으니, 내가 이들에게 표명할 수 있는 전언은 이뿐이었다. 망막을 덮던 어둠을 써내려 가면 결국 남은 건 내게 조금의 빛이라도 묻어있었다는 점을 깨닫는 일이라고. 첫 시간은 그랬다. 그 빛의 첫 문장을 쓰는 일, 어둠을 향해 서서히 접근하는 일. 집에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아득했다. 다음 주제를 공유했다. 가족, 겨우 나를 통과했다면 이제 인생 최대 어둠의 조직과 맞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