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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d Silent Movie
by 백승권 Nov 07. 2018

흔한 연애, 망한 결혼

도미닉 쿡 감독. 체실 비치에서








누가 먼저 반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연애의 시작부터 결혼의 끝까지,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다. 멀리서 편집된 과정을 지켜보는 타자의 입장에서 너희의 사랑과 이별은 아름답지만 예상되었고 예상했지만 조금 달랐다. 하지만 결국 같았다. 모든 관계에 시작과 끝이 있듯, 그들도 마찬가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와 에드워드(빌리 하울)는 사랑을 했다. 이별을 했다. 현재는 없다. 그들의 감정은 회상 속에서만 이어져 있었다. 편집된 기억 속에서 감정만 간직되어 있었다. 감정과 욕망만 전부였던 시절, 선을 넘으려는 순간 모든 게 무너졌다.


결혼 첫날밤 섹스를 거부당한 신랑의 분노 앞에서 신부는 '비치'가 된다. 며칠 전 무도회장에서 눈이 맞아 번개 맞듯 영원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었을 텐데, 그토록 여리고 따스하며 포근한 과정을 지나왔으면서도 왜때문에 그 한순간 모든 에너지를 응축시켜 폭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호텔방 식탁에서 침대 위까지의 과정만 보면 에드워드는 온통 플로렌스의 육체를 탐닉하는데만 혈안이 되어있는 발정 난 짐승에 가깝다. 기대와 설렘이 서로의 기대치에서 점점 멀어지고 모든 과정의 톱니바퀴가 삐걱대고 있었다. 이해의 여지가 이것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었구나. 연애의 기간과 이해의 깊이는 비례하지 않았구나. 버튼을 눌린 건 단지 거부당해서 일까. 딱 이 정도까지만 나를 사랑했구나 라는 (오해 섞인) 절망감이었을까. 플로렌스는 도망치듯 침대를 벗어나고 에드워드는 황망한 표정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뒤쫓는다. 흐린 바닷가 캔버스 같은 체실 비치를 뒤로 한채 둘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에드워드는 절규하고 플로렌스는 애원한다. 둘은 다시는 그곳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하지 않는다. 더 이상 어느 곳에서도 대화하지 않는다. 평범한 과정, 비범한 결말이었다. 한때 서로가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라서 세상을 뒤집을 듯 사랑했는데. 이제 같은 이유로 사랑하지 않는다.


어쩌면 둘은 서로를 좋아한 진짜 이유를 끝내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니었나. 이 사람 너무 좋아. 그런데 이유를 모르겠어. 이 사람 정말 특이해. 그래서 좋아. 논리에 맞지 않지만, 할 수 없어. 이 사람 너무 좋으니까.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겠으니까. 모든 게 이유가 될 순 없겠지만 모든 게 이유가 될 수 있어. 이 사람 너무 좋아서 이 사람이 좋아하는 세상 모든 새들 이름을 외우고 이 사람이 어떤 산골짜기에 처박혀 일하든 10km 산길을 걷고 걸어서 땀과 먼지로 흠뻑 젖은 몸을 껴안을 수 있어. 서로 좋아하는 분야가 너무 다르지만 우리의 지금 간격처럼 언젠가 취향의 차이도 좁혀질 수 있겠지. 서로의 보이지 않는 면을 더 이해할 수 있겠지. 모든 감정에 설명을 적어 주석을 달 수 있겠지. 우린 첫눈에 반했고 서로의 가족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했어. 살아온 여정의 색과 무게가 각기 달랐지만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으려 인내했어. 그리고 우린 결혼에 실패했어. 첫날밤에 실패했기 때문에. 섹스를 거부당한 에드워드가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을 끝내기로 분노와 좌절감 속에 포효하며 선언했기 때문에.


모두의 삶 속엔, 자기 자신에게조차 납득시키기 힘든 부분이 분명 있다는 점을 에드워드는 간과한 걸까. 헐벗은 몸으로 그림 그리기에 심취한 에드워드의 엄마를 위해 플로렌스는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헌신을 다해 배려했는데, 에드워드는 플로렌스를 위해 무얼 감내했나. (이걸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성향이나 태도 차이로 여기는 건 너무 무지한 판단이다) 에드워드가 타인의 관심과 인정에 늘 목말라하듯, 플로렌스 역시 설명하기 힘든 한계를 지니고 있는 건데. 그게 육체의 쾌락을 '일시적으로' 저지당해야 하는 거라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건가. 기다릴 수 없는 건가. 정말 그 한 번의 섹스를 위해 에드워드가 플로렌스에게 시간을 투자한 걸까. 잠자리를 거부당하고, 앞으로도 어려울지 모른다는 말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라고 해석하는 건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사랑은 얼마나 좁은 땅덩이를 소유한 말일까. 새의 지저귐보다 짧은 수명을 지닌 말인 걸까. 대체 그동안 사랑한 건 뭐였을까. 오직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에게만 심취했던 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반응이 나올 수 있나. 모든 관계의 시간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걸까. 노년의 후회는 얼마나 씁쓸하고 비루한가. 모든 기회를 폐기한 후 흘리는 눈물이란 얼마나 상해있을까.


인간을 향한 가장 폭력적인 말들을 가장 '사랑했다는' 여자에게 쏟아부은 후 애드워드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실패 후에 어떤 해소감을 획득했을까. 묵고 썩은 감정을 가장 사랑했다는 얼굴에 배출한 후에 그는 얼마나 나아갈 수 있었나. 평생을, '나는 간절히 사랑했음에도 완전히 거절당한 사내'로 스스로 박제시킨 에드워드는 직접 뱉었던 그 악독한 비유, '돌'처럼, 마음의 일부가 굳어버린 사람으로 늙는다. 플로렌스가 회복하고 자신이 바꿀 수 없을 줄 알았던 부분을 바꾸며 가족을 이루고 꿈의 무대에 오르는 동안, 에드워드는 해변 멀리 던져지고 처박힌 '돌'처럼, 아니 그보다 더 퇴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플로렌스의 마지막 공연, 애드워드는 -약속을 지켰지만- 석고상처럼 굳은 얼굴로 찌든 눈물을 뿌렸고 플로렌스는 젖은 눈가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기꺼이 자신의 중력 안에 갇혀 멈춘 남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여자의 차이였다. 둘의 첫 번째 결혼은 망했지만 플로렌스의 삶은 망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남은 생 내내 그 날의 저주에 결박 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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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출간작가
카피라이터. 2018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연애의 허상>, <저녁이 없는 삶> 출간. sk02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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