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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Nov 23. 2018

헝거, 저항의 태도

스티브 맥퀸 감독. 헝거

명분은 전부다. 명분이 목숨보다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수많은 저항가들은 죽음으로 응수했다. 죽음을 위한 죽음 일리 없다. 대답으로서의 죽음이고 의지의 표출로서의 죽음이자 준거 집단의 결집으로서의 죽음이고 결국 미래의 상징적인 일부로서의 죽음이고 영원한 영향력으로서의 죽음이다. 사실 이렇게 쓰는  짐작이 감히 들어맞을  없다. 나는 모른다. 모든 대안을 뒤로한  스스로의 죽음을 향한 길고 고통스러운 길을 택한 자들의 내면을. 내가 알리가 없다. 그들이 어떻게 사라졌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명징한 이미지만 남겼는지 짚어볼 .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벤더)는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영국에 맞선다. 투옥된다. 옥 중에서 저항은 멈추지 않는다. 온몸이 결박당한 상태에서도 이런 저항이 가능하다는 걸, 보비 샌즈와 동지들은 보여준다. 감옥은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캔버스에 불과하다. 배설물로 온 벽을 칠하고 칠하고 칠한다. 샤워를 거부한다. 거부한다. 억지로 끌고 가 피투성이로 만든 후 욕조에 처박을 때까지, 그 이후에도 같은 방식의 저항은 계속된다. 이들은 지배세력과 공권력에 맞선 이유로 투옥되었고 그 과정과 내면은 피와 멍, 폭력과 눈물뿐이었다. 맞는 자는 고통스러웠고 때리는 자 역시 괴로웠다. 가해자는 꼭두각시였고 맞는 자들에겐 희망이 없었다. 감옥 안에서 때린 자들은 감옥 밖에서 살해당하기도 했다. 때리는 자들은 언제 죽을지 두려워했고 맞는 자들은 언제 죽어도 상관없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당장의 현실이지만, 당장의 현실과 두려움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게 보비 샌즈와 무리들에게는 있었다. 빛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감옥 밖의 천국을 꿈꿨다. 자신들은 겪지 못하더라도 자신과 같은 곳에 있던 이들이 누려야 할 이상적 가치. 결단이 필요했다.


보비 샌즈의 '죽음을 각오한 단식 투쟁' 결정은 (그저) 생물학적 죽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럴 리 없다. 자살을 위해 집단 자살을 계획하는 것은 보비 샌즈가 투쟁해온 여정과도 정 반대였다. 차라리 가장 살고 싶고, 그 절절하게 살아있는 상태로 자국과 자국민의 독립을 보는 것이 그가 원했던 진짜 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는 죽음을 결정하고 그 길로 가는 과정에 어떤 고난이 기다리는지 몰랐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각오였고, 의지의 표명이었으며 이로써 결정권자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다. 위험한 도박이었고 실패할 확률이 압도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성공하더라도 이를 실감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부모가 있었고 자식도 있었다. 죽지 않고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많았다. 그 이유는 가볍지 않았다. 방해물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지극히 누려야 할 가치였다. 나라의 독립과 인간 개인으로서의 행복은 저울질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비 샌즈는 두 입장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었고 가장 좁고 위태로운 길로 간다. 돌아오지 못할 길, 과정을 알 수 없지만 끝은 분명한 길. 죽기로 작정한 것이 아닌 모두의 입장을 대표할 최소수자로서, 가장 격렬한 경계에 기꺼이 선 자로서 그는 세계에 호소하기 위해 자신을 소멸시키기로 한다. 모든 섭취를 거부하기로 한다. 생명을 끝내기로 한다. 그가 죽은 후엔 또 다른 보비 샌즈가 그 이후엔 또 다른 보비 샌즈가 긴 줄로 기다리고 있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헝거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감옥 내부에서 격렬한 집단 저항과 폭력적 진압은 점점 보비 샌즈 한 명으로 초점을 좁힌다. 보비 샌즈는 죽음을 각오한 단식 투쟁의 맨 앞에 선 자로서 자신의 상징성을 잘 알고 있었다. 정치적 입지가 아닌 돌이킬 수 없는, 도화선의 첫 불꽃으로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멋지게 죽어가지 않는다. 그럴 수 없었다. 육체가 꺼져가는 과정은 결정과 분리되어 따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의지의 중력에서 생물학적 소멸의 중력으로 죽음이 이동하고 있었다. 강렬한 분노의 눈빛과 날 선 기운으로 가득했던 긴 몸이 소리 없이 흐려져간다. 피부 한 겹 근육 한 겹 한 겹이 분말이 되어 날아가듯, 그의 거죽은 사라져 간다. 뼈의 길이와 굵기, 장기의 위치와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설 수 없었고 말할 수 없었으며 상이 흐려지고 좌변기 속으로 핏물이 가득 배설되었다. 66일 동안 그가 죽어가고 육체가 꺼져갈수록 선명해지는 건 그가 남긴 주장과 의지였다. 그는 죽었고 다음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태도를 바꾸며 산다. 보비 샌즈는 절실한 공익을 위해 저항했고 죽기로 결단했다. 죽음의 과정을 통해 저항했고 과정의 모든 고통과 함께했다. 이런 저항을 목격한 건 '헝거'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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