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Nov 23. 2018

셰임, 섹스 중독자

스티브 맥퀸 감독. 셰임








브랜든(마이클 패스벤더)은 아름다운 남자다. 특히 그의 매력은 이성에게 강하게 어필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눈빛을 훔치고 상대를 주도한다. 멀어진 거리를 기꺼이 밀착되게 만든다. 의도하지 않아 보여도 결과를 그렇게 만든다. 브랜든 또한 자신의 이런 면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원하면 원하는 여자와 원할 때 잘 수 있다는 걸. 거절할 수 없는 데이트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는 고층빌딩의 전망이 좋은 사무실에서 일한다. 그의 성욕은 빌딩의 높이와 비례한다. 그의 회사 컴퓨터에는 헤아릴 수 없는 종류와 양의 섹스 동영상이 들어 있다. 그는 집에 있는 내내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가서 섹스 동영상을 보거나 라이브 영상 채팅을 한다. 마스터베이션은 호흡과도 같다. 회사 화장실에서도 샤워 중에도 세면대 앞에서도 그의 마스터베이션은 멈추지 않는다. 그가 디오니소스였다면 도심을 걸어 다니면서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런 자신의 행위가 떳떳하지 않기에 등 뒤의 문을 닫는다.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가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인사했을 때, 그 (성기를 움켜쥐었을) 장면을 들켰을 때, 브랜든은 경악하고 몸을 더 움츠리고 얼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 찡그리며 죽을 듯한 수치심에 휩싸여 괴로워한다. 벌거벗은 몸으로 뒤쫓아가 씨씨를 쥐어짜듯 윽박지르며 겁박한다. 씨씨가 자살까지 감행할 정도로 무참한 우울증을 호소했을 때 듣지 않던 브랜든은 치부를 들키게 되자 세상 하나뿐인 가족에게 찰나의 살의를 보인다. 열려 있는 노트북의 벌거벗은 여자가 말을 걸었을 때 씨씨는 오빠의 섹스 중독을 감지한다. 브랜든은 무너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눈여겨보다가 데이트 신청한 마리안(니콜 비헤리)은 같은 회사 직원이었다. 진지한 관계라도 시작할 것처럼 대낮에 황급히 이끌고 간 근사한 호텔방에서 육체의 쾌락을 즐기려던 브랜든은 결정적인 순간 눈에 초점을 잃는다.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브랜든은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에서 도망쳐 수치심과 절망감에 몸부림친다. 마리안은 "괜찮아요"라고 했지만 브랜든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리안은 떠나고 브랜든은 돈을 주고 부른 여자와 유리 외벽에서 거친 행위를 통해 무력감을 마저 해소하려 한다. 모두에게 노출되었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해소될 리 없는 상실감.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씨씨의 절박한 호소를 다시 무시하고 브랜든은 이름 모를 여자들과 시간을 잊은 채 섹스에 몰두한다. 브랜든의 해골처럼 일그러진 표정 속에는 자신의 세계를 욕정 안에 가둔 채 타인과의 긴밀한 애정으로 확장시키는데 완전히 실패했다고 여긴 자의 후회와 슬픔이 가득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지만 온통 자신에게만 모든 욕정을 퍼붓는 남자. 그 사이 외면당한 씨씨는 스스로를 칼로 긋고 죽어가고 있었다. 브랜든이 죽인 건 자신뿐이 아니었다. 책임져야 할 건 자신뿐이 아니었다.


어릴 적 아일랜드에서 건너와 어떤 정신적 성장 단계를 거쳤는지 자세히 묘사되지 않았지만 브랜든은 결혼 제도를 부정하고 인간관계를 허무와 한계로 단정 짓고 있었다. 동생 씨씨는 자신과 유일하게 연결된 사람이자 의지의 대상이었지만 표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타인에게 역시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브랜든이 내내 스스로를 고립시키려 노력했다면 씨씨는 외로움을 호소하며 구원을 갈망했다. 남매 관계, 여전히 낯선 나라의 낯선 도시. 둘은 서로의 일부이자 거울이었고 브랜든이 육체의 타락에 젖어 마스터베이션을 시도했다면 씨씨는 피폐된 정신으로 수없이 죽음을 실행하고 있었다. 브랜든의 아름다운 외모, 씨씨의 매혹적인 목소리, 끔찍한 내면으로 유지되는 동경의 대상들.  



매거진의 이전글 암수살인, 살인자의 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