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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Nov 12. 2018

암수살인, 살인자의 미래

김태균 감독. 암수살인





형사 김형민에 대하여



살인범 강태오(주지훈)의 추가 범행(살인)에 집착하는 형사 김형민(김윤석)의 의중을 헤아려본다. 뺑소니 사고로 아내가 죽었다. 뺑소니 사고였으니 아내를 죽인 자는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형사 김형민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알 수 없는 자에게 죽은 아내를 그리며 살아가게 된다. 이런 배경이 아마 형사 김형민의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성과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형사, (월급으로 샀을 리 없는) 제네시스 세단을 끌고 가족들과 광활한 골프 필드를 여유로이 누비는 삶. 김형민은 단지 생존하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미치는 이로운 가치에 대해 골몰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실종자를 영영 기다려야 하는 피해자 가족들. 실종자 여럿을 죽였다고 강력하게 의심되는 살인범 강태오의 자백. 형민은 살인자의 미래를 위해 사활을 건다.


살인자의 미래. 살인자가 무죄를 선고받거나 또는 형을 다 복역하고 교도소 밖으로 걸어 나오는 미래. 둘 중 어떤 미래든 용납할 수 없긴 마찬가지다. 피맛을 본 살인자는 반드시 다시 살인을 저지른다고 형사 강형민은 믿고 있다. 강태오가 현재 범행의 살인죄만 인정받아 15년 형기를 다 채우고 나왔을 때는 형사 강형민은 정년 퇴임한 상황. 누구도 스스로의 의지로 강태오의 추가 살인을 막을 수 없다. 강형민은 직감한다. 강태오는 다시 살인을 저지를 것이고 다시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며 다시 (시체라도 기다리는) 유족이 발생할 거라고. 강태오는 그런 미래를 견딜 수 없었다. 현재의 고통은 자신이 감당하면 그만이었고 그 고통이 살인의 미래를 막을 수 있다면, 비난이든 좌천이든 상관없었다. 강형민은 자신이 지닌 자원을 모조리 활용한다.


살인자의 사정도 있었다. (살인이 아니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극악한 상황에서의) 첫 살인이 있었기에 두 번째 살인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는 첫 살인이 신고되어 범인이 잡혔더라면 두 번째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결론에 이른다. 두 번째 사망자도 유족도 없었을 거라고. 형사 김형민은 아마 자신의 아내를 죽인 뺑소니범이 잡히지 않아서 또 다른 2차 3차 뺑소니 희생자가 발생한 건 아닐까 라고 여긴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의 아내가 혹시 처음에 잡히지 않은 뺑소니범의 2차 3차 범행의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여겼을지도 모른다. 이런 막연한 좌절감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찾고 찾아 꾸역꾸역 밀고 나가는 게 형사 김형민이 자신의 삶에 대한 최대치의 존중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에게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해소시켜주는 것, 실종인지 사망인지 모를 막연한 슬픔을 (범인이 확실히 존재하고 그를 법정에 세워 죄를 묻는) 구체적이고도 뚜렷한 슬픔으로 고쳐주는 것. 김형민은 수사 중 자신의 미래처럼 보이는 송경수(주진모)를 만난다. 미래의 명징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형민은 그 길을 간다. 어떤 직업인은 개인으로서의 안위보다 타자를 향한 의무감으로 남은 삶을 산다. 불공평한 삶 속에서 옳다고 믿는 (공익적) 신념을 위해 기꺼이 불공평한 대우를 감내하는 사람들. 기억되지 않는 피해자를 파헤치는 기억되지 않는 수사관들. 세상의 남은 구성원들은 이런 김형민 캐릭터 같은 극소수의 인물들에게 적잖은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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