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열대어, 살인과 광기를 재현하는 사람들

소노 시온 감독. 차가운 열대어

by 백승권

남자는 재혼했다. 새 아내는 젊고 육감적이다. 딸은 반항한다. 셋이 밥 먹는 자리는 말이 없다. 남자는 열대어 가게를 한다. 한 중년 남자가 찾아온다. 지나치다. 지나치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쾌활하다. 격이 없다. 남자는 경계하면서도 이끌려간다. 중년 남자는 남자의 가족들에게 접근하고, 자기편으로 만든다. 남자는 나약하다. 의심하면서도 말려간다.


중년 남자도 큰 열대어 가게를 한다. 그 역시 관능적이고 젊은 아내가 있다. 투자자와 미팅을 한다. 거액을 유도하고 투자자를 독살한다. 시체를 흉가로 옮긴다. 초를 켜고 도구를 준비한다. 시신의 뼈와 살을 분리한다. 태우고 버린다. 남자는 함께 있는다. 경악하고 구토한다. 중년 남자는 이 사람이 58번째라고 했다. 중년 남자와 그의 아내는 즐기듯 처리한다. 중년 남자는 남자에게 협조를 강요한다. 아내와 딸을 해하겠다며 남자를 굴복시킨다.


남자는 불안 그 자체가 된다. 순식간에 그는 살인의 공범자가 되었다. 무력하다. 증오의 대상이 된 아빠, 무능한 남편, 거기에 살인까지. 어떤 남자의 인생이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살인은 계속된다. 중년 남자는 남자를 훈계한다. 가르치고 협박한다. 그러면서 껄껄껄 웃는다. 자신의 아내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타인의 성욕의 도구로 던지는데 거리낌 없다. 중년 남자의 아내 역시 같이 웃는다. 나약하고 초라한 남자의 처지를 비웃는다.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남자가 중년 남자를 죽였을 때조차.


죽임은 의도되지 않았다. 죽임은 순식간이었다. 주변이 피범벅이 된다. 중년 남자를 죽인 남자는 아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족과 식사를 한다. 분노를 표출한다. 중년 남자의 아내는 남자를 원한다. 그녀는 남자를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를 죽인다. 남자는 중년 남자와 부정을 저지른 아내도 죽인다. 딸이 그 광경을 본다. 피투성이가 된 남자. 남자는 칼을 들고 딸에게 다가온다. 자기 목을 긋는다.


이 영화는 실화에 근거했다.


이런 영화는 모든 대사와 스토리를 글로 옮겨도 음악과 그림이 주는 충격을 대신하지 못한다. 과잉 감정과 피와 살점이 난무한다. 일본 영화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 소심한 남자는 그 중심에서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모든 사건에 엮인다. 희생과 가해, 인질과 범죄 사이에서 모든 역할을 충족시킨다. 그리고 주변을 파멸시키고 스스로도 파멸한다.


음악은 반대의 정서를 보여준다. 범죄를 게임처럼 보여준다. 살인 장면엔 서정적인 음악이 깔리고, 시체들이 깔린 상황을 비웃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건 다 뻥이야 라고 하는 건지, 이게 바로 현실이야 라고 하는 건지, 누가 죽든 말든 그걸 보고 즐기는 너희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잖아라고 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살인자가 훈계를 하고 복수가 탐닉으로 바뀌고 사춘기 딸은 자기 앞에서 자살한 아비에게 소리 지른다. 일본 영화만의 정서인가. 비슷한 영화들이 있었다. 잔혹한 방식으로 가족과 사회의 현실을 풍자하고 고발하며 비웃는 영화들.


소노 시온 영화는 과잉의 에너지로 점철된다. 그게 매력이지만 배우들의 정신상태가 궁금하다. 엽기적인 역할이 이어진다면 그들 삶의 일부는 그 캐릭터로 채워지는 것일 텐데, 성도착자와 살인광도 포함될텐데 괜찮은 걸까. 그들은 연기가 끝나면 바탕화면 바꾸듯 보통의 상태로 온전해지나. 화면과 촬영 현장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궁금하다. 영화와는 다를 그들의 보이지 않는 삶. 캐릭터와 다를 보통의 상태. 과연 그 혼란이 말끔히 지워지는 것인지. 그 이미지와 대사는 두고 오는 것인지. 궁금하다. 괜한 걱정도 든다. 살인과 광기를 재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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