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지옥의 역사, 악의 진실

드니 빌뇌브 감독. 그을린 사랑

by 백승권



엄마가 죽어간다. 변호사를 통해 유서를 남긴다. 미션을 달성해야 편지를 공개한단다. 설명을 듣고 있는 남매. 황당하다. 자기들 말고 다른 자식이 있다고 했다. 처음 듣는 소리. 평생 자신들과 지냈다 여겼는데 숨겨진 자식이라니. 분노한다. 국내 드라마에 익숙해졌다면 출생의 비밀 정도야 하나의 관전 포인트로 웃어넘기겠지만. 심각하다. 진정하고 찾아 나선다. 엄마 이전에 여자였던 그녀의 자취를. 비극의 연대기를.


중동. 그녀의 동네는 보수적 기독교 문화권이었다. 섬기는 신이 다르면 전쟁까지 불사했다. 종교가 피아를 나누고 정치로 연결되던 곳. 그녀는 ‘다른’ 세력의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여자였다. 가족에게 들키는 즉시 둘 다 죽음 목숨이었다. 둘은 ‘적발’되고 남자는 여자의 눈 앞에서 총살 당한다. 여자의 몸속엔 아이가 있었다. 울부짖던 여자는 아이를 출산하고, 아이는 또 다른 희생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첫 생명, 첫아이, 아비는 죽고 아이는 버려지고, 어미가 된 여인은 홀로 남는다.


여인은 아이를 찾는다. 어떤 대가도 치를 듯, 두려움 없다. 험난한 과정 중에 여자는 세력의 지도자급을 죽이고 감옥에 투옥된다. 마른 몸, 의지에 찬 눈,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여자는 15년을 견딘다. 그녀의 의지를 꺾기 위해 온갖 고문이 자행되고 그중엔 강간도 있었다. 여자는 원치 않았던 임신을 한다. 아이를 죽이려 배를 때린다. 아이는 태어난다. 경비원, 간호사 등 당시 어미와 같이 지낸 이들을 수소문 끝에 찾아내 이야길 듣던 남매는 입을 다문다. 거친 손발 짓으로 물살을 가른다. 바꿀 수 없는 생명의 시작. 감당하기 힘든 역사. 드러난 진실. 남매는 서로의 어깨를 안는다. 여자는 유언장을 쓰며 남매가 받을 충격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간곡히 그들에게 소망한다. 분노의 역사를 여기서 멈추자고. 너희 모두를 사랑한다고.


삶의 진실에서 잠시 거리를 두기 위해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편집된 가사에서 편집된 감정을 경험하며 마취 같은 위로를 얻는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이런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개인의 감정이 바뀐다고 상황이 바뀔 일은 많지 않다. 다수가 인정하는 (그래서 개인의 의견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지위가 결여된 이상,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덮는다고 가려지지 않음을 역사는 증명해왔다. 그래서 싸운다. 상처받고 견디지 못하면 사라진다. 감당하는 이들에겐 자손과 기록을 남길 권리가 주어진다. 근거리에선 비극, 원거리에선 희극이라는 말도 있지만 예외인 (모두 비극인) 운명도 있다. 단순히 웃고 넘길 수 없는 진실을 감내해야만 했던 이들. 여자가 그랬고, 여자의 일생을 더듬던 남매가 그랬으며, 그들이 찾던 한 사람이 그랬다. 역사가 뒤흔든 시간 속에서 그들은 이어져 있었다. 역사는 지옥이었고, 진실은 악이었으며, 여자는 여기서 멈추자고 했다.


폐쇄적인 순혈주의는 얼마나 우스운가. 피는 섞여왔고 섞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섞일 것이다. 생명은 그렇게 섞인 피 속에서 잉태되고 태어나며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 비극은 산재되어 있고, 삶은 배운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우리는 매번 새로운 악들을 경험하며 상처받고 찢길 것이다. 불타는 화염을 막을 수 없다. 아이가 죽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전쟁도 막을 수 없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은 많지 않다. 인간은 그래 왔다. 자신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다수가 희생되었고 소수가 살아남았으며 소수는 다시 다수로 번성했다. 정의의 기준은 다양했고, 각자의 생존을 위해 싸웠다.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중 타인과 자신을 용서한 극소수가 남아 선을 전파하겠지. 너무 작고 나약해 자취조차 감지하기 힘들지만, 이것이 인류를 존속시켰다. 겨우. 2010 베니스영화제 베니스데이즈 최우수작품상. 드니 빌뇌부 감독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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