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리 감독. 블랙클랜스맨
심각한 주제를 웃기게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다. 매우 어렵다. 마치, 코미디 프로를 보며 폭탄 뇌관 해체하기와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웃기면 웃기다고 문제고 심각하면 또 너무 맨날 심각하다고 문제다. 심각한 문제, 맞다. 픽션이 아니다. 수많은 흑인들이 실제 백인들에 의해 성기가 잘리고 나무에 목매달리고 죽을 때까지 구타당하고 끊임없이 강간당하고 불태워졌다. 과장일 수 없고 찾아보면 볼수록 끔찍한 사례는 너무도 많다. 여전히 동네 어딘가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흑인 소년이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다. 링컨은 엄청난 결단을 내리며 역사의 흐름을 바꿨지만 모두가 그 흐름에 동의하며 따라간 건 아니다. 어떤 백인들에게 흑인은 여전히 노예의 자손이고 자신들은 선택받은 족속이다. 순혈 백인을 제외한 민족은 소수이자 배척 당해 마땅할 부류에 불과하며 파이를 빼앗아먹는 악의 족속이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손자에게 전하며 깊은 증오와 혐오의 정서가 계승된다. 덮어놓고 증오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나. 떼로 몰려 때리고 죽이는 건 얼마나 즐거운가. 그들에게 흑인이란 미래의 어둠이자 국가의 적이었고 자신들은 현재의 주인이자 국가 자체였다. 블랙클랜스맨은 이런 집단의 중심에 있는 KKK단(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에 잠입한 흑인 형사의 1978년 실화를 다룬다. 하얀 가면만 쓰고 불타는 십자가 위로 당당히 올라간다.
흑백 대립으로만 관점을 설정하면 어떤 것도 똑바로 보이지 않는다. 흑인 혐오를 폭력과 살인으로 옮기는 KKK단은 인종을 넘어 전 사회적으로 문제인 범죄 집단이었다. 그들은 흑인을 비롯한, 아니 백인을 제외한 모든 인종의 존재를 거부하고 혐오했으며 공격했다. 이런 행동은 즉각적인 저항으로 이어지고 미국을 반토막 낸다. 기득권을 쥐었다 여긴 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었고, 공격 대상을 설정하려 테러를 계획하고 있었다. 조직화가 이루어져 있었고 강력한 리더가 있었으며 실제로 뜯어보면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집단의 이익 추구를 위해 단단하게 결집시켜주는 이념이 있었다. 집단 내 남녀차별이 동시에 이뤄지는 가운데 소수의 백인들은 세력을 확장하려 했고 국가를 위한 일이라며 명분을 내세웠다. 거의 모든 대화가 인종 비하로 시작되어 끝났고, 혐오 정서가 강한 멤버일수록 인정받았다. 그 내부로 흑인 경찰 론(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동료들이 잠입한다.
강력한 공격, 강력한 저항, 두려움은 집단을 만들고, 집단엔 리더가 필요했다. 리더는 상징이었고 상대편의 리더를 없애는 일은 중요한 미션 중 하나였다. 위험은 모든 곳에 있었고 희생양은 늘 약자였다. 내부의 약자를 이용해 상대편의 강자를 죽이는 게 전략이라면 전략이었다. 살아남은 비겁한 자들이 다음 계획을 세웠으며 그 후손들이 지금의 미국 길거리에서 횃불을 들고 있었다. 스포츠카를 탄 무명의 악마가 실제로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고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사망했다. 계획된 증오가 실행되고 있었다. 흑인과 소수민족은 언제 살해당할지 모르는 공포에 휩싸여 길거리에 나서야 했다. 증오를 용서로, 폭력에 비폭력으로 맞서는 일은 희생자를 줄이는 데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아 보였다. 사랑과 평화를 내세우는 일은 멋있지만, 현실의 죽은 흑인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영화는 경계를 지웠다. 실화와 현재의 간극은 투명했다. 그때와 지금은 어떤 격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과 말살을 원하는 자들이 테러를 계획하고 있었다. 질서는 중요했지만 위에선 입을 다문다. 백인 기득권은 백인 우월주의에 관대하다. 그들은 표를 잃지 않길 원할 뿐이다. 미국은 증오와 혐오를 내세우는 자들이 뽑은 트럼프를 리더로 내세우고 있다. 보고되지 않은 차별과 폭력이 이 시간에도 무참히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영화는 해결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게 만든다. 블랙클랜스맨은 흑백갈등의 40년 전과 오늘을 보여준다. 현재를 직시하고 혐오를 경계하도록 자극한다. 스파이크 리 감독이라는 위대한 운동가와 함께.
*본 글 제목은 영화 대사에서 가져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