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 황해
돈 벌러 한국 간 아내는 소식이 없다. 토끼 같은 딸자식은 노쇠한 할미 밑에서 끼니를 때우고, 자신은 택시기사를 하며 벌어들인 모든 돈을 빚과 마작에 들이붓는다. 목덜미를 물어뜯어 상대의 숨통을 끊는 투견장의 개새끼들만도 못한 군상들이 모인 대륙의 한구석. 희미한 미소조차 없이 시종일관 구겨져 있는 구남(하정우)의 표정은 그가 처한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시간을 모두 담고 있다 그를 눈여겨본 개장수 마 선생의 살인청부. 한국으로 건너가 사람 하나 죽여 엄지를 가져오면 빚진 금액을 탕감해 주겠단다. 구남은 제의를 받아들인다. 일을 하루빨리 처리하고 아내를 찾아 같이 돌아오는 것이 계획이었지만 일은 더럽게 얽히고 만다. 구남은 도주하지만 그 과정에 수많은 희생자들이 속출하고, 도시는 아비규환이 된다.
구남의 도주 과정은 그가 단순히 바다 하나를 건넌 것이 아닌, 인생에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오고 말았음을 보여준다.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산을 넘고, 피부조직을 걸레로 만들어버린 총상의 괴로움에 오열을 터뜨리는 구남의 모습에서 난 그의 운명을 동정했다. 그때까지 그가 죽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그는 모두가 쫓는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조선인도 중국인도 아닌 조선족의 운명. 누가 그의 말을 믿어줄까. 살기 위해 바다를 건넌 순간 모두가 적이 되어있었다.
구남에게 청부살인을 제시한 면정학(김윤석)은 브로커였다. 그를 거치지 않고선 조선족의 밀입국 어선은 황해를 건널 수 없었다. 면정학은 조선족 범죄세력의 중심에 있었고, 그에게 살인은 비즈니스였다. 구남의 상황은 칼을 쥐어주기에 적절했다. 의뢰받은 청부살인은 부메랑이 되어 결국 면정학의 온몸에 피칠갑을 하게까지 이른다. 호텔방의 모든 벽면을 핏물로 적신 면정학은 그의 수하들이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샤워를 하고 흰 가운을 걸친다. 토막 낸 시신을 개들의 먹이로 주라고 지시한 면정학은 도끼를 들고 황해를 건넌다.
수하를 통해 면정학에게 살인을 지시한 김 사장(조성하)은 아내와 딸아이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장이었다. 주변의 시선을 안심하게 만드는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 뒤에서 그는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고, 폭력조직을 거느리며 탐욕의 군주로 군림한다. 모든 악의 시작점이었던 그를 향해 김구남과 면정학이 서슬 퍼런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김 사장은 초조해한다.
뜯고 뜯기는 투견장과 얽히고설킨 수컷들의 피 냄새 흥건한 장면들 등 단정 지을 순 없지만 156분 동안 <황해>를 뒤덮는 전체적인 정서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초기작 <아모레스 페로스>를 닮아있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도와 스토리는 국적을 달리하지만 어느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 또한 그렇다. 이후 <21그램>, <바벨> 등을 통해 거장의 반열에 들어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행보를 나홍진 감독도 밟아나갈 수 있을까? <황해>를 보고 믿고 싶어 졌다. 이토록 긴 호흡으로 시선과 감정을 흔들림 없이 붙들어 놓는 연출력은 박찬욱과도 봉준호와도 조금 다른 면의 재능이었다. 실제 연쇄살인 사건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온 듯했던 <추격자>보다 훨씬 더 좋은 인상을 받았다. 국내 감독 중 네임벨류만으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리스트에 박찬욱과 류승완 외에 또 하나의 이름을 더하게 되었다
"<황해>와 함께하는 이번 크리스마스는 레드가 될 것입니다.” 무대인사에서 첫 운을 뗐던 김윤석의 말대로 <황해>는 칼부림으로 전해지는 폭력의 정서로 후반부를 뒤덮는다.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김 사장이 보낸 수하들을 처단하는 면정학의 도끼만행부터,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단초를 추적하는 구남의 고문 장면, 이후 면정학의 세력들과 구남의 추격신, 면정학과 김 사장 세력들 간의 혈투 등, 한국영화 사상 가장 격렬하고 잔혹한 집단폭력신을 보여준다.
하정우가 구남의 표정만으로 전반을 지배한다면 김윤석은 <타짜>에서 분했던 아귀 역할의 아우라를 넘어 향상된 전투력과 극악한 폭력성,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대사를 통해 후반부 내내 얼굴에서 피를 씻어내지 못한다. 그는 어떤 생과 사의 경계를 가르는 주위의 칼부림 속에서도 인간적 동요나 당황스러움 없이 모든 살육을 기계적으로 해치운다. 모든 움직임과 손놀림은 익숙하고 눈빛은 한 가지 목적만을 향해있다.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결코 광기는 식지 않는다. 아귀가 그러했듯 이번 <황해>에서도 면정학으로 분한 김윤석의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국내 영화의 폭력적인 캐릭터의 새로운 계보를 써냈다.
조선족을 이토록 적극적인 소재로 가져온 영화는 없었다. 작고 약한 조선의 백성으로 태어나 생존을 위해 국경 밖으로 내몰리고, 결국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어떤 사전엔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 정의해 놓았지만 그들의 국적은 대부분 중국이다. 돈벌이와 취업을 위해 조선족의 불법체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황해>의 시선은 기득권층을 향해 있다. 자기들끼리 부닥쳐 파손되고, 오발로 자기편을 쏘고, 날뛰는 개에 허우적대며 끌려 다니는 영화 속 경찰들. 돈과 개인적 욕망을 위해서라면 어떤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폭력조직을 수족으로 두고 있는 사회 지배계층에 대한 씁쓸한 소회를 <황해>는 전하고 있다. 그들로 인해 돌아오지 못할 바다를 건너게 된 사람들을 통해, 죽음 외에 갈 곳 없는 그들의 운명을 이렇게 만든 건 과연 누구냐고 검푸른 파도를 통해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