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즈윅 감독. 러브&드럭스
일본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서 신체장애를 가진 애인을 둔 남자는 끝내 도망친다. 그리고 자신을 원망하는 듯 울음을 터뜨린다. 안타까워하는 리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현실적이다. 마음이 아프다 등등. 분명한 건 그는 도망쳤다는 거다. 현실적인 선택이든, 서로를 위한 합의된 배려든 그는 몸이 불편한 애인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시간의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비겁한 놈. 친절하든 잘 생겼든 둘 다 아니든 비난은 피할 길 없다. 앤 해서웨이와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러브&드럭스>를 보며 내내 <조제…>의 결말처럼 될 거라 예상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남자(제이크 질렌할)와 파킨슨병(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발생하며 안정 떨림, 경직, 운동 느림 및 자세 불안정성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신경계의 만성 진행성 퇴행성 질환_서울대학교 병원 자료 참고) 걸린 여자(앤 해서웨이)가 사랑에 빠진다. 가볍게 만나 잠자리만 나누는 관계로 만났지만 그 이상으로 감정은 긴밀해진다. 남자는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여자의 병은 점점 증세를 드러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후 전개는 예상 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연애영화가 그렇듯 눈물겹게 극복하거나, 담담히 헤어지거나.
남자는 여자를 태우고 미국 전역을 돌며 치료법을 구한다. 계속되는 검사.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두 사람. 여자는 결국 헤어짐을 선언하고, 남자는 화를 낸다. 남자의 화는, 자신이 정한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만한 결과로 답하지 않은 현재에 대한 분노이자, 이런 난감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예상했으면서도 사랑에 빠지기로 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이자, 이런 상황이 된 것에 조금이나마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대방(여자)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실망감이었다. 거침없이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무력감. 우연히 재활모임센터에서 만난 파킨슨병에 걸린 남자의 말도 떠올랐을 것이다. “어서 떠나서 새 여자를 알아보게.”
사랑하는 사람이 대책 없이 아픈 것만큼, 당혹스러울 때가 없다. 연애가 환한 웃음과 속 깊은 대화와 따뜻한 키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판타지와 리얼월드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걱정과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의 상태가 호전된다면, 과학자들은 진작 특수안경을 개발했겠지.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연인의 흉부에 직접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마사지해 줄 정도가 아니라면, 인간의 병이란 전문적인 치료법과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당사자가 고통을 견디는 시간도 되겠지만, 전에 사랑한다고, 영원히 우린 함께야 라고 했던 연인이 곁에서 인내를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험의 시간. 몸만 좋아한 건지, 정말 ‘사랑’이라는 것을 했는 지를 확인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내 여자 친구는 모유를 한 모금도 못 먹고 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허약체질이었고, 쉽게 피로를 호소했으며, 추위와 더위에 몹시 취약했고, 감기와 몸살 증세를 거의 달고 살았다. 소화불량과 복통도 자주 왔고, 어지럼증과 수족냉증도 있었으며, 호흡기가 약해 폐렴에도 일 년 넘게 시달렸었다. 스무 살 초반엔 길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져 황급히 택시를 잡아야 했고, 작년엔 장거리 이동 후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거의 사경을 헤맬 뻔하여 약사의 조언을 통해 청심환으로 응급처치를 한 적도 있었다. 웃음만큼 눈물도 많았고,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능력만큼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법에도 능숙했지만, 그녀는 자주 아팠고 난 늘 불안했다. 지금도.
<러브&드럭스>에서 여자가 점점 쇠약해져 갈수록, 남자는 점점 원하던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같이 있지 않은 시간 동안, 여자는 홀로 아팠고, 남자는 바깥을 돌며 부와 명성을 누렸다. 이 간극. 영화는 이로써 이별의 이유는 충분하다고 결론 내릴 것 같았다. 도시남녀의 연애 행각이란 게 다 그렇지 뭐. 아무리 지지고 볶고 물고 빨아도 각자에게 속한 현실 앞에서 만인을 설득할만한 이유로 해피엔딩에 다다르기란 우린 지금까지 너무 쿨한 스토리를 보고 듣고 또 겪어오지 않았냐며 어깨를 으쓱거릴 것만 같았다. 작위적 이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바람이었다. 데미안 라이스의 음악과 함께, 나탈리 포트만의 슬로 모션으로 마지막 장면을 장식했던 <클로저>처럼.
도종환 시인의 시 중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대목이 떠오른다. 살며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빈도와 시기가 다를 뿐. 모두가 아프고 누구는 견디고 누구는 계속 아파한다. 아프다고 삶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며 지금까지의 시간이 무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택은 각자 다르다. 사연은 수긍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타인의 평 따위 안중에도 없는 파렴치한 것도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 테다. 갑작스러운 일은 늘 너무 갑작스럽게만 일어나고, 우린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그때까지 응축된 감정과 생각을 모아 이성적이라고 믿는 가장 자기 다운 선택을 하기 마련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아프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거울처럼 마주하는 것은 상대를 생각하는 가장 솔직한 자신이다. 줄 수 있는 것들과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의 예상되는 일들. 복잡과 혼잡을 정리하는 사이 자신이 상대에게 어떤 사람이고, 상대는 또 내게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