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감독. 하녀
여자는 고기를 만진다. 그리고 여자의 머리 위에서 이름 모를 여자가 떨어져 죽는다. 여자는 -세트 같은 느낌을 의도한 듯한 대리석 천지의 -부잣집에 식모로 들어간다. 여자는 하녀가 된다. 하녀는 여주인의 속옷을 빤다. 하녀는 여주인의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한다. 하녀(전도연)는 여주인(서우)이 몸을 담그고 있던 하얀 욕조를 청소한다. 남주인(이정재)은 그런 하녀를 욕망한다. 하녀는 거부하지 않는다. 하녀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하녀는 생각이 없다. 하녀는 돈이 없다. 하녀는 내일이 없다. 여주인은 남편과 하녀의 관계를 눈치 챈다. 여주인은 하녀를 증오한다. 남주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설명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남주인은 그렇게 살아왔다. 원하는 대로 가졌고, 그 외에 더 중요한 건 없다. 남주인의 자식은 '남이'였다. 남주인은 남이 아버지였다. 하녀는 화장을 한다. 남주인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 한다. 하녀는 여주인 모녀에 의해 공격을 당한다. 하녀는 임신을 한 몸이었다. 하녀는 몰랐다. 하녀는 자신의 상황도 모르고 남들이 왜 그러는지도 몰랐다.
하녀가 그 집에서 믿고 의지하는 건 어린'남이'뿐이었다. 오직 남이만이 진실을 보고 있었다. 오직 남이만이 사실을 말했다. 오직 남이만이 자신을 거짓하지 않았고, 오직 남이만이 하녀에게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나머지는 다 인간을 가장한 박제의 무리들뿐이었다. 뒤늦게 하녀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한다. 하녀는 자신과 핏줄을 보호하려 하지만 이미 하녀는 처음부터 돈에 의해 들어오고, 돈에 의해 대답을 듣고, 돈으로 인해 희생을 치르는 역할이었다. 하녀는 내쫓기고, 하녀는 분노한다. 하녀는 결심하고 하녀는 돌아간다. 그리고 하녀는, 더 이상 흰옷을 입지 않는다.
임상수 감독의 전작, <바람 난 가족>과 <그때 그 사람들>들을 개인적으로 한국영화가 잊지 말아야 할 명작으로 꼽지만 <하녀>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손길이 자꾸만 그리워졌다. 원작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은 알지 못하나. 대략적인 시놉시스와 고 김기영 감독의 천재적인 작품이라는 평은 아주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왔었다. 전도연에 대한 기대치보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인상이 더 기대됐었다.
절정이 싹둑 제외된 느낌이다. 극의 긴장감이 가장 최고조로 치솟았어야 할 부분에서 결말이 극단적으로 찾아왔다. 시각적인 충격은 충분했지만, 납득하기 힘들었다. 관객을 당황시키는 것이 감독의 의도인가. 원작의 묘미를 되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나.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장치들과 캐릭터의 변화를 나타내는 컬러의 배치와 물과 불의 대조적인 활용. 비정상적인 가족들과 상황 안에서의 고립과 심연과 육체의 외로움에서 빚어진 하녀의 남주인에 대한 의지. 이를 재미있어하는 남주인의 이기적인 욕망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여주인의 잔인한 질투.
느닷없는 유머 코드가 단발적인 웃음을 유도했지만 결말만큼은 불친절을 넘어 아쉬움이 짙게 묻어난다. 남이의 시선을 통해서 그녀의 복수가 끝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적 파격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될 때는 캐릭터와 상황이 일정 부분 공감대를 이끌어냈을 때라고 생각한다. <하녀>는 그 과정을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