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에너미, 내가 좋아하는 건... 그리고 당신

마이클 만 감독. 퍼블릭 에너미

by 백승권



이 남자 눈물겹다.


엘리트 같은 표정으로 교도소를 습격해서가 아니다. 신사다운 과정으로 배신자를 단죄해서도 아니다. 은행은 털되 대중의 호주머니는 안 털어서가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멋진 대사를 난사해서도 아니다. 가장 슬픈 순간에 가장 슬픈 표정을 지어서도 아니다. 한쪽 눈을 찡그린 채 가장 멋진 각도로 총격전을 벌여서도 아니다. 사내답게 웃고, 조금 무례하고, 심하게 폭력적 이어서도 아니다. 죽어가는 동료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도 아니다. 총상이 드러난 어깨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 같아서도 아니다. 다음 범죄를 꿈꾸는 순간에도-그것이 달러의 유혹이 아닌-또 다른 야망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어서도 아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볼 때, 맹수의 독기 어린 눈은 두근거림으로 바뀐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야기할 때, 마초의 거친 입술은 진지함으로 바뀐다.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낼 때, 세상을 부수던 어깨는 가녀린 떨림으로 바뀐다.


공권력의 날 선 총구가 주위를 에워싸던 그 순간에 도보란 듯 한낮에 은행을 털었던 희대의 공공의 적, 존 딜린저. 마이클 만과 조니 뎁은 그를 대중의 영웅을 넘어선, 한 여자만을 위한 완벽한 남자로 만들어버렸다. 명령하고, 윽박지르고, 일방적이었지만 그 어떤 단어도 자신만을 위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진중하고, 단호했으며, 사려 깊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다 건 자만의 호기이자 당당함이었다.


여자가 불안해할 때, 여유 있는 웃음으로 쿠바보다 더 먼 파라다이스를 이야기하고, 생사가 오가는 궁지에 몰린 순간에도, 결국 그녀의 선택은 그 하나뿐이라는 완전한 확신을 안겨주었다. 마지막 순간, 총에 맞아 쓰러져서도, 차가운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져서도, 초라한 구경거리로 생을 마감하게 된 모든 사실들 때문에 그를 가엾이 여기는 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총구가 자신을 향해 불을 내뿜던 그 순간에도 그(조니 뎁)는, 그녀(마리옹 꼬띠아르)와 처음 만나던 때와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그의 그녀도, 그의 그녀도 단 하나였는데. 그래서,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을 -홀로 남은-그녀는 더욱 눈물겨웠는지. 너무 짧았지만 시간으로 재단할 수 없었던 그 계절 가장 뜨거웠던 동행, 둘이 마주 보던 장면이 며칠째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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