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티 보이즈, 호스트와 텐프로

윤종빈 감독. 비스티 보이즈

by 백승권

별이 뜨면 그들도 눈을 뜬다. 단골 미용실에서 머릴 만지고, 얼굴을 가꾼다. ‘가오 안 떨어지는’ 브랜드의 옷을 걸치고 늦지 않게 그곳에 도착한다. 얼음과 양주로 세팅된 테이블, 손님들이 기다린다. 오늘 밤, 그들을 만나러 온 그녀들이 기다리고 있다. 대여섯 조를 짜 룸에 입장한다.‘초이스’되지 못하면 다음 조가 등장한다. 계속‘캔슬’되다가 몇 명이 지목되면 각자의 손님들 곁으로 자리를 잡는다.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띄운다. ‘누나’라고 하던가 말을 놓던가. 술을 따른다. 웃음을 판다. 기분을 맞추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호스트들이 텐프로에게 장사를 한다. 그들의 밤은 너무 화려해 금방이라도 망막이 타 버릴 지경이다.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자들이 돈 좀 번다는 남자 손님에게 엮여 팔자 폈다는 말이 돌곤 한다. 예전 드라마에 종종 등장했던 설정들. 호스트바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은 떨어지길 기다리지 않는다. 쥐고 흔들어 기어코 돈다발을 토하게 만든다. 답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수학공식이 있듯이 호스트들에게도 돈을 짜내는 ‘공사’의 공식이 있다. 일이천만 원은 어떻게든‘구라’를 쳐서 뽑아먹을 수 있지만 삼천 만원 이상은 또 다른 정성이 필요하단다. 사랑한다는 말은 화장실의 휴지만도 못 한 용도로 자주 또 요긴하게 써먹는다.‘공사’ 칠만 한 ‘사이즈’가 되는 애들이 타깃이 된다. 결국 그 밥에 그 나물들끼리 놀고들 있다.


자타공인‘에이스’로 통하는 승우(윤계상)는 바보였다. 이런 바닥에서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려 했다니. 자신도 호스트면서 텐프로를 자기 여자로 만들려고 했다니. 여자의 세면대에 놓인 칫솔 개수를 생각하며 잠 못 들다 울음을 터뜨리다니. 그의 집안 사정을 참작, 이해의 여지를 주고 싶지만, 대한민국에‘공익광고’적인 가정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결국 그는 자신이 놀던 바닥의 생리를 끝내 다 파악하지 못했다는 답이 나온다. 뜨거운 감정 앞에 이성적인 시야가 얼마나 확보될 수 있겠냐만 실수투성이라도 사랑은 다 아름다운 거 아니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와 그녀가 처음 만난 곳은 아무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곳, 모두가 숨기는 곳. 속내를 숨기고, 술값을 숨기고, 순수를 숨기는 곳. 이런 경계 안에서 사랑이라니 그들의 파멸은 바가지 쓴 술값처럼 이미 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곳에서 신뢰란 가장 버리기 쉬운 것, 사랑이란 가장 쓰기 쉬운 말, 돈이란 가장 화려한 유혹, 술이란 이 모든 것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게 만드는 더러운 촉매.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눈먼 돈을 나누어가지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들. 젊은 몸뚱이를 립스틱 자국에 기꺼이 헌납하는 그들에게 내일 밤 다시 출근할 곳은 있어도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로 발길을 돌리긴 어려울 테니까. 잠들지 않던 그 밤이 너희를 기억할 테니까. 낮보다 화려한 유혹이 너희를 다시 '초이스'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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