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와 스콧 형제의 서로 다른 링컨에 대하여
1부 스필버그가 그린, 영화 <링컨>
링컨에 대한 기억은 두 가지다. 어렸을 적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책을 빌려 읽기 좋아한 아이였다는 점, 또 하나는 인터넷을 떠도는 그의 말 중 아무리 실패해도 머리를 잘 빗고 밥도 잘 먹고 옷도 잘 입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는 점.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고 주연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감독이 스필버그라는 점이 걸리긴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포스터 한 장만으로도 봐야 할 모든 이유가 설명되는 듯했다. 인물이 아니라 인물을 연기한 배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뚜껑을 열고나서는 흠칫 놀랐다.
1860년 대 미 대통령 링컨의 대중적 인기는 천공을 찌르고 있었다. 수려한 외모나 화려한 수사 때문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의 신임을 얻고 선출된 인물이더라도 겨우 한 사람일 뿐 어떻게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았고 자신의 위치에서 내려야 할 결정들의 경중을 알았으며 그것이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가 전장의 병사들이나 공장의 노동자들과 나눈 대화 장면에서 추측해보면 그는 자신의 언어에서 권위를 뺄 줄 아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링컨과 이야길 나눈 때면 대통령보다 자신의 이야길 들어주고 해결해줄 수 있는 옆집 사는 동네 어른처럼 대하는 구석이 있었다. 링컨은 자신이 총칼을 휘두르며 전장을 지휘하지 않아도 되고,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지 않아도 되지만 적어도 그들을 대신해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늘 실감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추진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옳다고 믿는 결과를 위해 고난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점도.
핵심은 노예제였다.
흑인(을 위시한 유색인종)은 노예였고 백인은 사람이었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고 백인이 때리면 맞고 백인이 시키는 대로 하고 백인이 죽이면 죽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링컨의 최대 난제였다. 남북전쟁(1861~1865)의 원인이자 열쇠이기도 했다. 애초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조 아래 건국된 미국에 있어 노예제는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대농장이 발달한 남부의 노동력 문제로 쉽게 합의되지 않는 사안이었다. 당선 전부터 노예제에 반대하던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못 박는 헌법 13조 수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백악관 내부에서도 반대는 많았다. 링컨과 국책을 논의하는 수장들조차 그의 선택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아니 입에 거품을 물며 반대했다. 이미 전쟁에서 죽은 청년이 수십만이었다. 그중엔 10대 소년병들도 부지기수였다. 노예제 폐지는 저들의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전장에서 자식을 잃은 이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 링컨의 몫이었다. 수정안 통과를 위해 20명을 설득해야 했다. 링컨은 물러설 수 없었다. 지위와 부를 보장하는 방식을 써가며 표를 확보해야 했다. 링컨 자신에게 이득이 될 건 없었다. 인간 정의의 실현이었다. 그는 '서로가 같은 물질로 이뤄졌다면 그 각각은 서로 같다'라는 유클리드(그리스의 수학자)의 원론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서로 같은 물질로 이뤄진 인간이라면 백인이나 노예나 왜 다른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하냐는 링컨의 고뇌로 해석되었다. 링컨에게 노예제 폐지란, 자리 보존을 위한 편협한 정치적 행동이 아닌 권력을 지닌 자로서 할 수 있는 역사를 바꾸는 결단이자 인간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보안장치와 다르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해온 아내와 측근들이 반대했지만 그는 무릅써야 했다. 윽박을 지르고 편법을 명령했다. 그 사이 반대파들의 분노는 높아만 갔다.
백인을 선택받은 족속이라 여기는 이들에게 노예제 폐지는 지옥의 도래였다. 언젠가 그들과 동일한 투표권을 가진다는 공포는 여자들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당시 제약이 많았던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입장에서 볼 때, 노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스개 소리를 낳을 정도로 견디기 힘든 변화였다. 이들에게 링컨은 자신들의 근간을 뿌리 채 뽑아버릴지 모를 악의 화신처럼 보였으리라. 하지만 스필버그는 영화에서 내내 헌법 13조 수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밀고 나가는 링컨의 움직임만을 묵묵히 따라간다. 마지막 뒷모습까지. 투표 결과 수정안은 통과되고 노예제는 폐지된다. 그 사이 링컨은 극장에서 암살당한다. 1865년 4월 15일의 일이었다.
2부 토니 스콧과 리들리 스콧이 그린, NGC 드라마 <킬링 링컨>
스티브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링컨이 철저히 노예제 폐지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토니 스콧과 리들리 스콧이 제작하고 톰 행크스가 내레이션을 맡은 내셔널 지오그래피의 팩추얼 드라마(다큐에 드라마를 접목) 킬링 링컨은 제목 그대로 링컨의 '킬링'에 초점을 맞춘다. 링컨을 다룬 두 개의 영상 콘텐츠가 서로의 빈 곳을 완전에 가깝게 보완해준달까.
1865년 4월 15일 링컨 사망. 포드 극장에서 공연을 보던 중 J. 월크스 부스(이하 부스)가 뒤에서 쏜 총에 의해 암살. 부스는 링컨을 쏜 후 무대로 뛰어 내려와(이 과정에서 종아리 뼈 부상 추측) "폭군의 말로는 이런 것이다!", "남부는 자유를 찾으리라!"라고 외쳤다. 당시 암살 현장엔 1500여 명의 목격자가 있었다고 한다.(그래서 각자 진술이 엇갈린다고 전한다.) 총격을 당한 링컨은 인가로 옮겨졌고 193cm에 달하는 키 때문에 대각선으로 눕혀졌다고 한다.
링컨의 암살 계획은 오래전부터 풍문으로 돌고 있었다. 연설에서 흑인 선거권을 언급해 모두를 놀라게 했었고, "이 나라는 백인들을 위한 나라입니다."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링컨은 대통령이기 앞서 '자신들의 국가를 위해' 반드시 없어져야 할 주적이었다. 남부군이 백악관에 폭탄을 설치해 링컨을 죽이려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링컨을 죽이려는 세력의 중심에 부스가 있었고, 그는 결과적으로 링컨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도주.
부스는 이 암살을 다른 무리들과 사전 계획했고, 같은 시간대에 부통령과 국무장관까지 동시에 죽이기를 시도한다. 이 부분의 묘사가 수위가 높다. 안 그래도 불편한 몸으로 침상에 누워있던 국무장관을 암살범은 미리 준비한 흉기로 잔혹하게 난자한다. 과정에서 국무장관의 주변 인물들 또한 피범벅이 된다. 국무장관 암살(시도) 범은 현장을 벗어나며 이렇게 읊조린다. "나는 미쳤다, 나는 미쳤어, 미쳤다고." 부통령 암살을 담당했던 또 다른 암살범은 조사 결과 시도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진다. 링컨의 후두부에 총알을 박은 부스는 부상당한 다리로 말에 올라 무리와 함께 지역을 벗어나고 남부군 지지세력의 거주지에 몸을 숨긴다.
링컨 암살범 수색작업이 시작된다. 10만 달러의 포상금과 함께 미국 역사상 최초로 수배 전단에 사진이 붙는다. 사건 후 열흘 정도 지난 후 은신처가 발각되고 부스는 투항하다 목에 총알이 관통당한다. 총알은 척수를 절단해 목 아래 부분을 마비시켰고 부스는 죽기 전 "내 어머니께 난 조국을 위해 죽는다고 전해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긴다. 부스가 은신 중 남긴 기록에는 '나는 범죄자로 죽기에는 너무 위대한 영혼을 가졌다.'라는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적어도 링컨을 죽인 점에 대해 한 줌의 후회도 없었고 오히려 자신을 투철한 애국자로 여긴 듯하다. 그렇게 링컨 암살범 부스는 사건 11일이 지난 1865년 4월 26일 사망한다.
부스와 함께 미 대통령 링컨과 부통령, 국무장관 살해 공모자였던 조지 에저로트와 조지 파웰, 데비빗 헤럴드는 모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같은 해 7월 7일 오후 1시 26분 사형이 집행된다. 당시 사진을 보니 교수대에 매달린 시체는 4 구였고, 이미 죽은 부스도 매단 듯 보인다. 부스의 시신은 이후 교도소로 옮겨져 보관되었고 4년 후 매장되었다고 한다. 링컨 서거 10주 후, 남북전쟁은 종결된다.
3부 링컨의 삶, 링컨의 죽음, 영화 <링컨>과 NGC 드라마 <킬링 링컨>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의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위한 영화다. 큰 키, 마른 체구는 평소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부합했고, 여기에 링컨의 푹 꺼진 눈과 수염, 주름과 지팡이, 모자와 롱코트를 더하자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마치 그의 이전 작품이자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과 함께 미국의 석유 이권 다툼을 둘러싼 영토분쟁의 흑역사를 그렸던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주인공이 실존 인물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거대한 풍모에 낮은 음성으로 읊조리던 링컨이 된다. 이번 아카데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재미없었다는 평이 주를 이루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이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다른 후보작을 다 보지 않아도 무척 믿음이 가는 선택이었다. 다만 스필버그에게 전작 <뮌헨> 정도의 '극적' 재미를 바랐던 기대는 다소 어긋났다.
영화는 철저히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과 설득 과정과, 주변 상황 등에 초점이 맞춰 있었고 노예제에 대한 링컨의 고뇌에 긴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공간은 폐쇄적이었고 밖은 주로 밤이었으며 대화는 늘 싸움으로 시작해 싸움으로 끝났고 링컨은 자신과 물리적으로 먼 노예들을 제외하고 근거리에 있던 지인들 거의 모두를 실망시킨 인물로 보였다. 각료들에겐 죽으려고 환장한 꽉 막힌 지도자였고, 아내에겐 어린 아들을 기어코 전장에 내보내 죽이려는 모진 아비였다. 링컨은 늘 누군가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미국의 그 누구보다 고독했고, 그의 싸움 또한 그리했다. 그가 바란 것은 오로지 인간 본연의 권리를 다수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길고 험한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쥐면서 노예로 태어나 노예를 낳다가 노예로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신분의 사람들에게 자유라는 기적을 선물하지만 자신은 반대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감정의 폭이 크지 않은 잔잔한 서사. 영화 링컨은 그렇게 끝난다.
NGC 다큐 드라마 킬링 링컨에서 다룬 소재가 오히려 더 영화적이다.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부스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가 링컨의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도주하다 체포되어 사형당하는 일대기를 보여준다. 스필버그가 원작 스토리에 기대어 한 인물에 대한 관점을 보여줬다면 킬링 링컨은 줄곧 중립적, 균형의 시각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이를 범죄영화와 액션, 스릴러를 다루는 데 거장으로 추앙받는 스콧 형제가 제작하고 톰 행크스가 내레이션을 맡아 의도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가 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상황과 이후엔 어떻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누군가에겐 영웅이 아닌 원수일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 둘 모두 링컨이었다.
링컨의 업적은 뚜렷하다. 그가 자유를 향한 열망이 없었다면 미국의 노예제 역사는 보다 길어졌을 것이고 민주주의 발전 역시 훨씬 뒤쳐져 있었을 것이다. 흑인 미 대통령이 등장하는 <24> 같은 미국 드라마나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당선 같은 것은 판타지에 불과했겠지. 케네디, 닉슨 등 미국의 대통령들은 각각의 스토리나 개성이 부여되어 꾸준히 대중적 콘텐츠 소재로 활용되고 있지만 업적이 끼친 역사적 사회적 영향력으로만 보면 '미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다음으로 링컨 만한 인물은 없지 싶다. 오히려 영화화된 시점이 지금인 게 이상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