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열매가 도시를 구원한다면

기아자동차 매거진. 2015년 11월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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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버타이징을 넘어

지금은 에코버타이징 시대


광고는 인공적이다. 애초 지닌 생각과 습성을 바꿔 기존과 다른 소비와 결정으로 이끄는데 의도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관성을 바꾸는 데는 시간과 노력, 돈과 전문인력을 들인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굳어 있던 것들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기에, 도심 한복판에 기발한 접근의 카피를 써놓기도 하고, 교통신호를 놓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광고판을 세워두기도 하며, 빌딩 자체를 스크린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행인들의 걸음과 시선을 멈추기 위해 의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한다. 덧붙이고, 새로 만들고, 선과 면과 소재와 색으로 환경을 바꾼다. 이런 시도들이 광고적, 크리에이티브적이라고 해석되어왔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시대가 바뀌었다. 마케팅은 더 이상 일방통행으로 성공할 수 없었다. 단채널이 아닌 다채널, 주입이 아닌 긴밀한 소통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그때까지 주변을 가득 채운 기존 방식의 ‘인공적’ 광고들은 시선을 잡아두는 것이 아닌 눈과 마음의 피로를 불러오고 있었다. 자칫하면 브랜드와 고객의 사이가 멀어질 참이었다. 광고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아이콘이 아닌 공감대가 듬뿍 담긴 일상이어야 했다. 자연 파괴자가 아닌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비광고적일수록, 사람들은 다가가고 웃고 반응했다. 일상과 자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광고가 그렇게 늘어나고 있었다. 에드버타이징(Advertising)을 넘은, 에코버타이징(Eco-vertising, 친환경적인 접근으로 만들어진 광고)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필리핀 시내 한복판에 초록으로 뒤덮인 거대한 크기의 광고판이 세워졌다. 광고판을 채운 3600개의 코카콜라 병엔 후키엔 티(Fukien Tea)가 심겨 있었다. 왜 하필 수많은 식물 중에 후키엔 티일까.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공기를 맑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 코카콜라와 WWF(World Wildlife Fund 세계 야생보호기금)가 함께 만든 이 광고는 광고의 파생효과가 아닌 광고물 자체로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광고는 아이디어를 생명처럼 여기지만, 매체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어디를 통해 보여줄지가 광고의 목적 자체를 드러내기도 한다. 티브이, 인터넷, 잡지 등을 생각하면 쉽다. TV나 인터넷, 잡지는 늘 대중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매체다 보니 그만큼 광고가 실릴 수밖에. 거리의 먼지가 매체가 될 수 있을까? 네덜란드의 친환경 광고대행사 그린 그라피티(Green Graffiti)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고압력 워터 스프레이를 통해 거리 위에 쌓인 먼지를 씻어내 그림과 카피를 그려낸 것. 기존의 전파매체의 한계와 도구를 뛰어넘은 혁신성은 물론, 도시 미관에도 기여하고 있어, 최근 에코버타이징 분야에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열매가 광고가 될 수 있을까? 작은 열매 하나하나에 글과 그림을 써 붙이기에는 너무 무리일 거 같은데? 베를린에선 수년 동안 도심의 나무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시민들의 관심과 모금이 필요했고 나무를 직접 활용하기로 한다. 나무 열매가 떨어질 때마다 빛과 소리로 반응하는 악기를 만들어 나무 밑에 설치한 것. 열매가 떨어질 때마다 나무 주변의 도심은 아름다운 소리의 콘서트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온라인 기부자들의 이름을 악기에 적었고, 모아진 소리를 음원으로 완성시켜 편집음반으로 제작되었다. 이 트리 콘서트(Tree Concert) 캠페인은 미디어를 타고 전해져 모금액 평균치의 800%를 넘어섰다.

일본의 기발한 광고 크리에이티브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일본 광고 스타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드가 분명하면서도 명징한 카피와 비주얼로 국제 광고제에서 다수 수상하기도 했다. 깐느 국제 광고제에서 수상한 라이스 코드(Rice Code) 역시 그중 하나다. 빵 소비가 늘면서 쌀 소비가 줄었든 일본 북부 아오모리현 이나카다테 마을, 애초 처음 심을 때부터 다양한 색깔의 벼를 심어 다 자랐을 때 거대한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게 만든다. 마치 공중에서 봤을 때 신(또는 미지의 존재)을 향한 메시지처럼 보였던 미스터리 서클처럼. 더구나 이 그림을 모바일 QR코드로 찍으면 즉시 구매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판매 증대는 물론 마을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고요하고 잔잔한 풍경으로 대표되던 농촌을 다양한 ‘쌀’ 그래픽을 선보이는 ‘성지’로 만드는 저력과 시도가 놀랍다.

환경에 대한 높아지는 관심과 더불어 에코버타이징은 가파른 성장 중이다. 이는 비즈니스적인 측면뿐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기 원하는 소비자들의 변화에도 기인한다. 환경적 속성을 마케팅에 활용한 것을 과연 광고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광고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빠른 적응력을 요구받고 있고, 그 결과 기존 광고의 형태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에코버타이징도 그중 하나다. 더 이상 광고다운 모습으로 광고는 유지될 수 없다. 광고가 환경을 매체로서 활용하는 것만이 아닌, 환경 그 자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원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에코버타이징들이 익숙한 모습으로 선보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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