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오렌지]
차창 안이 보이지 않는 스타렉스 전복사고 이후 세미 그룹은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홍보팀은 6주째 퇴근을 못하고 있었다. 대책회의가 6주째 끝나지 않고 있다는 말이었다. 대책회의는 대책이 마련되고 실행되고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세미 그룹의 대책회의는 이혼 회의, 이별 회의라고 불리기도 했다. 수많은 기혼자들이 대책회의 이후 가정과 연인관계가 파괴되었고 싱글이 되어 회사로 돌아왔다. 그들이 돌아올 곳은 회사뿐이었다. 폐질환이나 합병증으로 직원 사망 시 어차피 보상금이 가족에게 주로 지급해야 하는 회사에게는 이득이었다. 폐질환이라고 그랬나. 그렇다. 세미 그룹은 폐질환을 유발하는 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였다. 담배회사. 자연사로 죽은 전 회장이 손녀 이름을 따서 지은 회사 이름 같지만, 외국계 담배회사의 한국 계열사였다. 국산 브랜드처럼 위장해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나름 전략적으로 지은 사명이었다. 퇴사할 때까지 사명의 정체에 대해 모르는 직원도 많았다. 교육 내용에 저런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 모를수록 좋다가 이 회사의 암묵적 슬로건이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 모든 임직원은 ~님이라는 호칭 아래 수평적 관계라고 알리고 있었지만, 님 호칭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철저하게 회장님 이사님 부장님 직급으로 부르고 불리길 강권하고 있었다.
세미 그룹의 독특한 기업문화 및 내부 활동은 대외비였다. SNS 채널을 통한 홍보는 활발히 운영 중이었지만 다른 기업들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눈에 띄어 좋을 게 없었다. 세미 그룹이 출시하는 담배 브랜드의 케이스는 흡연 관련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의 시체 사진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일부 비영리 단체는 정기적으로 세미 그룹의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음악소리가 매우 컸고 가끔 그들은 춤도 추며 결속력을 다졌다. 세미 그룹이 100번째로 담배 케이스 디자인을 교체했을 때, 비영리 단체는 시체 사진을 확대 출력해 ‘저항하는 시체들’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전시회 입장료 수익은 폐질환 치료 연구를 위해 기부한다고 알렸다. 전시회장 내부에서는 흡연이 가능했다. 시체 사진의 작품성이 높다고 소문나서 현장에서 구매를 원하는 수집가도 있었다. 가장 높은 가격으로 사간 사람은 세미 그룹 임원이라고 했다. 비영리 단체가 세미 그룹의 자회사라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세미 그룹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제조 과정을 공개한 적은 없었다. 정의 구현을 외치며 외신과 인터뷰를 시도한 퇴사자들은 있었지만 기사는 국내에 공개되지 못했다. 번역본이 돌았지만 그마저도 왜곡되거나 원본과 완전히 다른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 얼마 전 한 장의 기이한 정보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인턴사원 중 한 명이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게시한 사진이었다. 사진은 자욱한 오렌지빛 연기로 가득했다. 흐릿하게 보이는 바닥에 구부러진 검은색 빨대 모양 실루엣이 보였다. 사람들은 쓰러진 사람의 다리가 아니냐고 추측했다. 게시자가 사진과 함께 쓴 글은 다음과 같았다.
입사 첫날,
여기 좀 이상한 듯.
게시된 사진과 글은 4시간이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다. 게시물 삭제 2시간 후 해당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어졌다. 현재까지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는 그의 트위터 계정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만약 사라진다면,
스스로 사라진 게 아냐.
아까 그건 연기가 아니었어.
모두 도망쳐. 어서 여길 떠나.
#세미그룹 #연기의정체 #연기가아냐
이 마지막 트윗은 세미 그룹 인턴사원 실종사건의 시작이었다. 수십만 회 리트윗 되었다. 그가 올린 인스타그램 사진은 원본 없이 다양한 캡처 이미지로 구글 검색 페이지를 떠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수많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인턴의 가족이 함께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자신이 사라진 인턴의 친구이고 그의 가족은 멕시코시티로 이민 갔다는 게시물이 트윗 타래로 올라왔다. 하지만 게시자의 트윗 시작일이 불과 며칠 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회사의 계략이 아니냐는 소문이 다시 돌았다. 세미 그룹은 대응하지 않았다. 사라진 인턴의 페이스북을 비롯한 모든 SNS 계정이 사라지고 주변 지인들과의 모든 연락이 끊겼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세미 그룹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그의 실종에 대한 덧글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캡처할 새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