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오렌지]
세미 그룹에는 2인용 미팅룸이 있었다. 말 그대로 단 둘만 출입이 가능했다. 주로 대표와 내부 임직원의 단독 면담 용도로 쓰였다. 한때 총성이 들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들어갈 땐 둘이었는데 나올 땐 대표 혼자였다는 말도 있었다. 미팅룸은 순백에 가까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매우 좁았고 창문과 시계가 없었다. 산소 감소를 막기 위해 러시아 우주정거장에서 공수한 산소공급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숨 막혀 죽을 일은 없었지만 저 장소를 쓴다는 것 자체가 이슈였다. 대표와 미팅을 한 사람들은 퇴사, 전근, 병사 등의 수순으로 사라졌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대표 외에는 아무도 멀쩡하게 나오지 못했다. 세미 그룹 내부에서는 공공연히 취조실, 고문실로 불렸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대외비 중의 대외비만 논의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들어갔던 사람들은 대외비와 함께 사라졌다. 지금 대표는 홍보팀장과 미팅룸에 있었다. 홍보팀장은 세미 그룹 15년 차 부장이었다. 해외 출장을 위해 대표와 자주 움직였고 껄끄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해결한다고 해서 사냥개라고 불렸다. 해결했는데 왜 사냥개라고 불리는 지도 여러 설이 있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술자리에서 대표가 생고기를 물려주며 짖으라고 했더니 실제로 짖어서 그렇게 불렸다는 설이었다. 팀장은 지금 스타렉스 전복과 인턴 실종으로 최대 위기에 몰린 세미 그룹의 해결사로 다시 호출되었다. 취조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그의 브리오니 슈트는 셔츠부터 재킷까지 땀에 절여 있었다.
대표: 그래서 대책은요?
팀장: 현재 너무 많은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대표: 그게 팀장님 답이에요?
팀장: 좀 많이 막막한 상황이긴 합니다. 경찰과 기자 막는 것도 한계가…
대표: 팀장님.
팀장: 네?
대표: 인턴 죽인 거예요?
팀장: 네? 그게… 대표님 지시가 그때…
대표: 그랬나? 인턴 가족은? 막 찾지 않았나? 청원 올리고 수소문하고…
팀장: 그래서 인턴 가족도 이민 보냈습니다.
대표: 이민 보낸 거예요? 하늘나라 보낸 거예요?
팀장: 그것도 대표님이 그때 빨리 처리하라고 승인하셔서…
대표: 참나 다 내 탓이구만, 다 내가 죽였어, 나만 수갑 차면 되겠네.
팀장: 아닙니다 대표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대표: 아 진짜 그 미친놈은 왜 그걸 사진 찍어서…
팀장: 미처 막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대표: 그렇죠? 그 인턴 애 팀장님 팀 아니었나?
팀장: …네, 제가 뽑았습니다.
대표: 흠, 지금 우리 회사 대박 이슈가 뭐죠?
팀장: 그 인턴이랑 스타렉스 뒤집힌 거…
대표: 뭐 인턴은 삭제했다 치고, 스타렉스는 수습했어요?
팀장: 정부가 커버 친 이후, 사람들이 정부 욕만 하고 있긴 합니다.
대표: 얼마나 갈 거 같아요?
팀장: 그래도 사안이 사안이라 2,3주는 더 가지 않을 듯싶습니다.
대표: 그거면 잠잠해진다고? 미세먼지 건인데?
팀장: 부정 댓글은 열심히 삭제하고 있고, 여기저기 알바 뿌려서 다들 대처하고 있습니다. 사실 액션 하나만 더 있으면 될 듯합니다.
대표: 어떤 액션?
팀장: 남산 대피소 있지 않습니까.
대표: 어, 거기 인스타그램 명소잖아.
팀장: 거기 한번 파티 개최하시죠.
대표: 파티? 그 좁은 데서? 열명 들어가기도 힘들지 않나?
팀장: 아뇨 진짜 파티가 아니라.
대표: 알아듣게 말해 새끼야, 너만 뭐 알고 있다는 식으로 깝치지 말고.
팀장은 슈트 안주머니에서 무인양품 메모지를 꺼냈다. 바지 주머니를 뒤져 불룩 튀어나온 몽블랑 만년필을 꺼냈다. 짧게 끄적거려 대표에게 건넸다. 메모지엔 다음과 같이 휘갈겨 있었다. 폭발. 대표의 눈이 잠시 커졌고 이내 피식거리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표: 이걸, 또 하자고? 너 진심이야?
팀장: 대표님, 잘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눈에 쌍심지 켠 애들이 인턴 사라진 거랑 스타렉스에서 우리 담배 나온 걸 연관시키려고 개떼처럼 뒤지고 있는데 저희 인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대책도 하루 이틀이지 움직임 커지면 본사에서도 불편해하겠죠. 궐련 회장 성미 아시잖습니까. 한국지사, 아니 우리 세미 그룹을 없애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전에 전 세계 대표 모인 자리에서 일본 지사장 불태운 거 아시죠?
대표: 그건 그때 나까무라가 난징대학살을 농담처럼 이야기했다가 그 지랄 난 거잖아. 학살 희생자 중에 궐련 회장 부모도 있었다면서. 나 같아도 죽였겠다. 그렇게 대놓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너 설마… 이 개새끼가... 나도 그렇게 될 거라고?
팀장: 아니… 그게 포인트가 아니라. 이거 제대로 덮어야 한다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대표: 생각할수록 열 받네 너 이 새끼, 이 일 해결하면 담배 만들어 버린다. 내가 필터까지 빡빡 피워서 없애버릴 거야, 써글 놈.
팀장: 흥분 가라앉히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미세먼지 독해서 인구가 줄어가고 있는데, 안 그래도 스타렉스 눈에 띄어서 미칠 거 같잖아요. 시체 나르던 차에서 담배까지 길바닥에 쏟아져서 사람들 다 사진 찍고 퍼 나르고, 살짝 잊혔던 인턴 실종까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해서 우리 이러다가 순식간에 망할 수도 있다고요. 상황 파악은 되시죠?
대표: 그러니까 뭐 어쩌려고. 대체 남산 대피소 폭파시켜서 대혼란 일으켜서 이거 한 번에 덮자고?
팀장: 이제 이해 좀 가시나 보네요.
대표: 구체적인 계획은 나왔어?
팀장: 완전히 세세한 건 아닌데, 등장인물이 좀 필요합니다.
대표: 거기 골목이라 유동인구 많을 텐데.
팀장: 사연 많은 사람들만 모아서 한 번에 처리하면 그림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대표: 사연? 인간극장, 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거?
팀장: 네 약간 시나리오를 짜서, 그들이 원래는 미세먼지의 핵심 공급책이었다 라고 퍼뜨리는 거죠.
대표: 미세먼지 핵심 공급? 그거 우리잖아. 그걸 뒤집어 씌우자고? 펑하고 터뜨려서?
팀장: 네 그렇죠. 일단 폭발을 시켜서 동네랑 골목 좀 태우고, 희생자 나오면 이야기 좀 붙여서 SNS와 9시 뉴스에 퍼 나르고 거기에 화재관리 소홀과 골목상권 다툼, 젠트리피케이션 이슈 좀 흘리고. 아마 그 주변 건물과 땅 가진 사람들이 좀 목소리 좀 내시는 분들이라 몇 달은 아마 눈덩이처럼 일이 커지지 않을까요?
대표: 음, 거기 우리 연구소 입구 아니냐?
팀장: 광화문 쪽으로 옮기면 됩니다. 공간 확보해서 금방 옮겨요.
대표: 아… 너 고민 많이 하긴 했구나. 폭발이라… 신박한 생각이긴 한데.
팀장: 그렇죠? 승인만 해주시면 일주일 안에 세팅 끝내겠습니다.
대표: 오키. 일단 내일 아침 8시에 여기서 다시 보자. 그때까지 답 줄게.
팀장: 여기서 다시 봐요? 전화로 알려주셔도 됩니다.
대표: 야 너무 그렇게 사람들 막 보내 버리면 버릇돼. 무슨 서울이 아우슈비츠도 아니고.
팀장: 제가 총대 매겠습니다. 아님 총알받이라도.
대표: 놀고 있네. 네가 무슨 총대를 매. 난 바로 본사 끌려가서 공개 총살이나 교수대에 오를 텐데.
팀장: 궐련 회장은 너무 걱정 마십시오. 아마 그쪽도 심란한 상황이라 여기 신경 못 쓸 겁니다.
대표: 뭐가? 내가 모르는 데 또 있어? 와… 너 무슨 전에 나랑 같이 본사 한번 가더니 각 지사 대표 전번 다 땄어? 걔네랑 단톡 방 만들어서 막 대외비 교류하고 그러냐? 뭘 이렇게 자신만만해. 사람 죽이는 데 맛들 리더니. 보이는 게 없냐? 난 인마 적어도 명분 없이 다른 사람 명줄 줄이는 거 더 이상 적성에 안 맞아서 그래.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해야지, 언제까지 문제를 제거만 할 거냐고. 이러니까 궐련이도 우릴 맨날 호구 취급하는 거 아니야. 우리도 발전을 해야지. 언제까지 민간인 상대로 실험이나 하냐고.
팀장: 오늘따라 좀 이상하시네요.
대표: 내일 보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팀장과 대표는 미팅룸에서 나왔다. 대표는 찢어지게 기지개를 핀 후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미팅룸은 모든 전파가 차단되는 공간으로 설계해 휴대폰의 모든 기능이 정지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88 통이었다. 팀장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팀장: 응 이제 끝났어. 내일 또 … 뭐 누가 왔다고?
대표: 뭐야 왜 뭔 일인데 또, 뭐, 저건 또 뭐냐?
팀장과 대표 앞으로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작은 체구였고, 양 옆에는 헤비급 덩치를 지닌 러시아인 두 명이 중화기를 들고 경계하고 있었다. 작은 체구는 커다란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그는 대표와 팀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고 방독면을 벗었다. 팀장과 대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놀라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작은 체구의 정체는 궐련 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