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너 담배 되고 싶냐

단편소설 [오렌지]

by 백승권
movie_image (10).jpg American Psycho(2000)





궐련 회장은 세미 그룹의 글로벌 본사 에프에프(FF)의 대표였다. 에프에프는 프레시 포에버(Fresh Forever)의 약자라고 자사 홈페이지 소개에 나와 있었다. 궐련 회장이 10대 때 타고 다니던 페라리 에프에프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었다. 에프에프는 194개국에 지사를 갖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담배 회사였고, 전 세계 담배 생산량의 85%를 차지했다. 궐련은 이름만 보면 아시아 계열 같지만 자신은 정통 백인이라고 주장했고 실제로도 흔하디 흔한 백인처럼 보였다. 술자리를 할 때마다 이름의 유래를 이야기했다. 마치 질문받기 두려워 먼저 답하는 것처럼. 할아버지가 큰 도움을 받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했다. 개명 제안을 받았지만 그럴 경우 상속을 받지 못한다는 조항 때문에 포기했다고 했다. 궐련 회장은 수많은 마약 카르텔과 경쟁 중이었고 3차 대전을 일으킬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맘에 안 들거나 사고를 일으킨 직원을 담배로 만들어 피운다는 괴담이 담배업계에 돌기도 했다. 그래서 담배업계에서는 “너 담배 되고 싶냐”라는 농담이 퍼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눈 앞에 있었다. 팀장과 대표는 낯빛이 뒤집히는 걸 가릴 수 없었다. 자릴 옮겨 세미 그룹에서 가장 거대한 미팅룸으로 들어갔다.


대표: 아이고 회장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

회장: 인사는 됐고,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주시죠, 대표님. 처. 음. 부. 터. 요.


그때 팀장이 대표와 회장 사이로 들어와 시야를 가렸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회장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팀장: 네!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지난번에 멀리서 뵈었던…


철커덕. 회장 양 옆에 서있던 경호원의 총구가 팀장의 머리를 향했다.


팀장: 어… 어…

회장: 뭐해, 당겨.


팀장은 의자를 박차고 회의실 밖으로 튀어나가려 했다. 경호원의 총구가 팀장을 따라갔다. 거기까지였다. 총신이 반동했다. 등에 거대한 구멍이 나며 팀장은 쓰러졌다. 아니 그대로 부서졌다는 표현에 더 가까웠다. 총성은 오랫동안 회의실 천장과 벽에 부딪치며 귀를 울렸다. 테이블 위의 서류들도 파르르 떨고 있었다.


회장: 하이고 참, 이건 들을 때마다 너무 귀 아프네, 소음기라도 달아야 하나.


회장은 귀 한쪽을 탁탁 치더니 얼굴에 미스트를 뿌렸다. 대표는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총구가 언제든 자신을 향할 수 있었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팀장은 도망치다 죽었다. 대표는 태연한 척하고 싶었지만 방금 전까지도 자신과 옥신각신 이야기를 나누던 팀장의 생사가 갈리자 사고체계가 완전히 정지하고 말았다. 회장은 게슴츠레 지켜보더니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회장: 멍하니 서있지 말고 일단 앉으세요. 소개팅하러 온 거 아니니까.

대표: 아! 네! 네네! 알겠습니다!


대표는 손에 잡히는 아무 의자나 집에 전속력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32층 높이의 회의실은 도심 전경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놀라서 볼 겨를도 없지만 미세먼지가 검은 안개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도시를 삼키고 있었다. 먹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깜깜했다. 도시처럼, 대표의 앞날도. 회장은 입을 열었다.


회장: 전 세계 미세먼지를 수집해 조사해봤습니다. 한국만 성분이 다르더군요. 이유를 아시나요.

대표: 아까 물어보셨던 그게, 처음부터 설명을 드리자면…

회장: 알아요. 차 뒤집힌 것도, 사람 한 명 사라진 것도. 제가 궁금한 건 한국의 미세먼지 성분입니다. 작업을 좀 하셨다고요. 실험이라고 해야 하나.

대표: 네 근데 이게 대외비라…


대표는 회장 양 옆의 경호원들을 의식하며 주저했다.


회장: 걱정 마세요. 저분들은 제 시그널이 아니라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테니. 듣는 것 보는 것 말하는 것 움직이는 것 다 매뉴얼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희 둘만 있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방금 전엔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갑자기 말을 끊어서 제가 좀 충동적으로 디렉션을 준 것 같네요.


대표는 어깨 부위의 강한 근육통을 느꼈다. 어느샌가 전신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었다. 꽉 쥔 주먹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뻑뻑하게 느껴졌다. 속옷, 셔츠, 양말까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뭐라도 말해야 했다. 실수 없이, 매너 있게.


대표: 네 저희는 몇 해 전부터 한국 시장에 작은 실험 하나를 시작했습니다. 신제품 출시를 위한 실험 같은 거죠.

회장: 재밌군요. 계속 말씀해주세요.

대표: 미세먼지라고, 지금 창 밖을 보면 아시겠지만, 자욱한 것들이 보이실 겁니다. 사막의 모래폭풍 같기도 하고, 거대한 안개 같기도 하고, 구름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죠. 한국은 현재 이 미세먼지가 수년 째 가장 큰 문젯거리입니다.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으로까지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죠.

회장: 네, 뉴스로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중국이 문제라는 말이 많더군요.

대표: 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그렇게 믿고 있죠. 하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회장: 그러니까 미세먼지로 뭔가 실험을 했다? 이 말씀이신 거죠?

대표: 네 황해에 배를 하나 띄웠습니다. 특수 설계된 배죠. 이번 신제품에 쓰일 재료의 독성에 대한 실험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신제품 재료 성분이 농축된 탱크를 넣고 황해에 배를 띄웁니다. 센서를 통해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담긴 바람이 불 때만 가동되게 만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아올 때 독성 성분도 같이 섞여서 오는 거죠. 농도를 여러 가지로 바꾸어가며 테스트했습니다. 사망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신제품 매출을 생각하면 경미한 수준이죠. 어차피 직접 흡연이든 간접흡연이든 사망자는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회장: 그래서 한국에서만 유독 미세먼지 사망자 수가 그렇게 많았던 거군요.

대표: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조건에서의 실험이 좀 더 남긴 했습니다. 하반기 출시를 위해서 좀 더 준비할게 많긴 하죠. 독성을 최대한 높이면서도 물리적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독극물 주사와 마취제 주사를 함께 맞는 것 같달까요? 너무 도심 곳곳이 시체로 어지럽혀질까 봐 대피소도 만들고 차도 배치해서 시체도 부지런히 수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들 휴대폰에 카메라도 달렸고, SNS도 하다 보니 관리가 쉽지는 않은 편이죠. 매번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회장: 그렇군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체계적일 줄은 몰랐네요. 역시 한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대표: 칭찬이라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회장: 그래서 인턴을 없앤 건가요?

대표: 아… 네 그렇습니다. 너무 선을 넘으려고 했더라고요. 연구소에서 샌 독성 연기를 찍어서 올리는 바람에. 논란과 혼란을 막기 위해 일찍 손을 써야 했습니다. 관련 연구소 직원들도 정리했습니다.

회장: 그 연기 사진을 퍼뜨려, 지금 말씀하신 부분을 전부 발설할까 봐 그랬다는 거죠?

대표: 네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지 않았지만, 괜히 사람들 시끄럽게 할 필요 없으니까요. 내부 기밀 발설 조항에 사인도 했기 때문에, 내규를 위반한 것도 되죠.

회장: 그 가족도?

대표: 네, 일단 사건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핵심 지인도 처리했습니다.

회장: 부지런하시군요. 그래서 신제품은 다 만들어졌습니까? 이렇게 열심히 여럿 죽여가며 실험하고 관리했는데?

대표: 네 이제 이미 시제품이 만들어져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비밀리에 사전 체험자들을 모집해 호평 리뷰를 모으는 중인데 반응이 괜찮습니다.

회장: 독성이 너무 심하면 사망자가 늘어날 텐데, 그럼 더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나요?

대표: 어차피 미세먼지 이슈가 너무 커서 연결시키면 됩니다. 사망자는 되려 홍보로 활용될 것입니다.

회장: 피우면 죽는데 홍보라.

대표: 목숨이 아까워 담배를 끊는 흡연자는 없습니다. 돈이 없어 못 사 피우는 거지.

회장: 그런데 사람들이 죽으면 소비자가 줄어드는 것 아닙니까. 대다수 충성도 강한 반복 구매자일 텐데요. 그분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 피우고 사줘야 우리한텐 좋을 테니까요.

대표: 우리는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회장: 미래?

대표: 어차피 현재 성인 평균의 폐로는 저희 신제품의 독성을 감당하기 힘듭니다. 아무리 버텨도 길어야 다섯 달이면 치사량이 누적되지요. 이 정도 독성이면 간접 흡연자들도 한두 달이면 쓰러지게 됩니다. 네, 논란이 예상되죠. 하지만 대책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가장 잘 나가는 아이돌 내세워서 공익광고 캠페인에 몇백억 부으면 잠잠해지니 괜찮습니다. 이런 콘텐츠는 해외 수익도 발생해서 되려 이익이죠. 저희는 미래의 소비자, 10대를 전력으로 공략할 예정입니다.

회장: 10대라… 뭐 잠재적 미래 소비자긴 한데.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대표: 그들은 유혹에 취약한 시기이고 비교적 튼튼한 폐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현재 미세먼지 테스트에서도 사망자 수 비율이 적습니다. 중장기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소비자죠. 수년간 모바일 무료 샘플을 주려고도 했지만 차라리 미세먼지 테스트로 감각을 길들인 다음에 신제품을 쥐어주면 확실하게 먹힐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내성을 길러줘서 건강한 소비자로 준비시키는 거죠.

회장: 피울 애들은 피우겠지만… 좀 더 타깃을 확장할 방안은 없나요?

대표: 비영리기관을 활용할 생각입니다.

회장: 유니세프나 국경 없는 의사회 같은 데? 거긴 우리랑 안 친하지 않나?

대표: 고성능 필터를 장착한 마스크를 배포할 것입니다. 무료로.

회장: 오호. 술 파는 회사들이 하는 음주운전 금지 캠페인 같은 건가.

대표: 그렇습니다. 고성능 필터 마스크는 신제품과 함께 지급될 것입니다.

회장: 미세먼지로부터 막아주고 신제품으로 죽이겠다는 건가요?

대표: 비슷한데 조금 다릅니다. 엄밀히 말하면 신제품 담배 맛을 더 살려주기 위한 도구죠. 신제품을 피우기 전 마스크를 쓰면 필터가 가동되며 특수 물질이 폐와 혈관에 침투됩니다. 이 특수 물질이 폐와 혈관의 이물질을 제거해주죠. 사용자는 일시적으로 아주 깨끗하고 상쾌한 느낌을 받습니다.

회장: 의사들이 할 일을 그렇게까지 우리 돈 들여서 해줄 필요 있습니까.

대표: 실제로 깨끗해지는 건 아닙니다. 그런 기술력이 있다면 당장 제약사와 손잡아 출시했겠죠. 마취 성분을 통해 그렇게 착각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이후 신제품 담배 성분이 침투하면 엄청난 환각효과를 일으키죠. 독성이 강해 불가피한 통증도 유발되는데 이게 더 강렬하게 다음 자극을 원하게 만듭니다. 흔히들 중독이라 부르는 과정이죠. 그냥 피우는 것과 고성능 필터 마스크를 사용한 후 피우는 건 차원이 다를 겁니다. 한번 경험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죠.

회장: 마약과 다를 게 없네요.

대표: 네, 그렇죠. 어차피 담배가 마약이니까요. 알고도 선택하는 거죠.

회장: 우리가 알게 하는 건 아니고? 그렇게 길들였잖아요.

대표: 회장님, 지금 말씀드린 건 제대로 추진하면 시장이 2배 이상 커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겐 선택권이 없어요. 우리가 제공하는 마스크, 우리가 제공하는 담배에 완전히 사로잡힐 겁니다. 답은 정해져 있죠. 우리는 진행만 하면 됩니다.

회장: 한국엔 미세먼지 자살이 유행이라죠? 우리 신제품이 자살 용품으로 제재당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대표: 제재당해서 판매라도 금지되면 그 제품은 온라인 암시장으로 풀립니다. 이미 사이트를 구축해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못 구하는 제품을 몰래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저희 플랜 안에 준비된 내용입니다. 기존 제품은 그렇게 처리하고 새로운 제품에 중독 물질 성분을 조금 변경하고 마스크 디자인을 바꾼 후 가장 건강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모델을 선정해 대규모 광고 캠페인을 하면 됩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메일, TV, 매거진 등, 대략 두 달 동안 500억 원 정도 들 겁니다. 자신들의 우려가 반영되었다는 판단 아래 2차 판매에서는 더 높은 매출을 올리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

회장: 거기까지 합시다, 대표님

대표: 네?

회장: 잘 들었습니다. 신제품과 마스크는 출시 전에 한번 보내주시죠.

대표: 네, 물론이죠. 전 세계에서 누구보다 먼저 확인하실 수 있도록 보내 드리겠습니다.

회장: 그리고 저기 쓰러진 분은 데려가겠소.


회장은 미팅룸 유리문 앞에 쓰러진 팀장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표는 순간 목이 잠겼다.


대표: 아, 아닙니다. 저희가 깨끗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 반려동물도 공원에 똥을 싸면 주인이 치우는 게 법인데, 우리가 가져가야죠.


대표는 잠시 입을 닫았다. 동물, 공원, 똥… 어떤 위트 있는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회장: 사람 참… 내가 요즘 담배가 떨어져서 그래요. 너무 진지해지지 맙시다.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배가 떨어졌다와 팀장의 시체의 상관관계를 떠올렸다. 동공이 잠시 커졌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소문은 진실이었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담배로 만들어 피운다는 소문. 그 사이 궐련 회장의 경호원은 팀장의 시체를 자루에 담아 어깨 위에 올렸다. 회장은 처음 보는 디자인의 전자 담배를 물며 대표에게 손짓했다.


회장: 또 봅시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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