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천국의 횃불

단편소설 [오렌지]

by 백승권
MV5BMTU3NTY0ODQwNF5BMl5BanBnXkFtZTgwMzAzNTI5ODE@._V1_SX1777_CR0,0,1777,999_AL_.jpg Game of Thrones(2011-2019)






오전 9시 30분, 을지로 2가 사거리는 분주했다. 수십 개의 신호등 사이에서 수천 대의 차량들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신호를 어기는 배달 오토바이들과 창문을 열고 침을 뱉는 택시기사들, 아이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 보내고 멈추는 차들을 다루는 교통경찰들과 교대를 준비하는 교통경찰, 방금 택시에서 내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중년의 직장인과 담배를 뻑뻑 피우며 인도를 휘젓는 노인, 다 구겨진 가방과 더러운 옷과 머리를 한 채 터덜터덜 비어 있는 벤치에 누울 자리를 만드는 노숙자, 단체로 맞춘 듯한 선글라스와 등산 모자, 알록달록한 조끼를 걸치고 깔깔거리는 사람들, 휴대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며 걷는 고등학생과 가벼운 차림으로 서로의 팔짱에 묶여 있는 연인들, 아들의 손을 놓지 않는 엄마와 딸에게 어깨를 내어준 아빠, 거대한 굉음으로 공기를 전율시키는 26톤 트럭과 어디든 찍으려고 휴대폰 카메라를 높이 쳐드는 백인 관광객들, 깃발을 든 관광 가이드와 담배를 끄지 못하는 남자들, 그들의 시선은 곧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모두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집단이 차도를 점거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교통경찰 몇 명이 막아 세우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사거리를 장악했고 주변의 모든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욕을 퍼부었다. 곧이어 오렌지빛 구름이 도심 전체를 뒤덮었다. 물을 가득 채운 비커에 떨어뜨린 색료가 황홀한 곡선을 그리며 폭발하는 형상으로 퍼져나가듯, 을지로의 하늘을 완전히 물들였다. 차도, 인도, 골목까지 마스크 집단은 사거리에 멈춰 도시의 모든 움직임을 차단하고 있었다. 한 명의 마스크 멤버가 나와 무선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이렇게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짧은 메시지만 전달하고 저희는 물러 가겠습니다.

곧 경찰이 와서 상황을 정리할 예정이니

조금만 인내하고 경청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멈춰 선 행인들과 운전자들은 일제히 휴대폰을 들이밀고 촬영을 시작했다. 한 명의 마스크 멤버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한스 짐머가 만든 인셉션 사운드트랙 , Dream is Collapsing이 플레이되었다. 웅장하고 긴박한 음악소리가 주변 공기를 꽉 채우기 시작했다. 한 명의 마스크 멤버는 날 선 눈빛으로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세상과 만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고통과 슬픔 없는

새로운 세상으로 떠날 것이다.

뜨겁게 마시고

황홀하게 만끽하라

영원을 꿈꾸고

순간을 살아라

가자 형제들이여

새로운 세상으로

가자 형제들이여

가자 우리와 함께

지금 이곳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천국의 횃불을 들어 올려라

새로운 왕국의

도래를 선포하라

불꽃을 들이켜고

자유에 취하라

새로운 문을 열고

진정한 주인이 되어라

너는 자유다

너는 전부다

너는 세상이며

너는

지금 이 순간이다

현세를 태워라

천국을 밝혀라

너는 희망이다

너는 우주다

이제 점화의 시간,

지금껏 너를 억압하던

모든 현재로부터

활활 날아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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