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암 바움백 감독.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제대로 고른 신작)
해롤드(더스틴 호프만)는 조각가다. 한때 이름을 날렸고 지금은 인기가 식었다. 아내는 둘(과거와 현재), 자식들은 셋이다. 모린(엠마 톰슨)과 낳은 남매 대니(아담 샌들러)와 장(엘리자베스 마블) 그리고 줄리아(캔디스 버건)와 낳은 매튜(벤 스틸러). 회고전을 논의하기 위해 자식들이 모인다. 해롤드는 예술가라는 자의식에 평생 빠져 있다. 자식들 모두 피를 물려받았겠지만 대니의 딸, 엘리자(그레이스 반 패튼) 외에는 예술계와 거리가 멀다. 엘리자는 기괴한 영상미와 스토리텔링으로 습작을 만들고 있는 영화감독 지망생이다.
해롤드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말은 한다.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자녀 중 누구와 이야기를 하든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자신이 질투하는 동료 예술가, 자신이 스포트라이트 받던 시절, 요즘 트렌드에 대한 비난, 해롤드는 자신을 다시 집중하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럽다. 자식들 중 누구도 예술가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말 뿐이다. 자기 말만 하고 듣지 않는다. 모든 자식이 힘들어한다. 매튜만 편애했고 그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었다. 대니와 장은 외면받았고 매튜는 그 때문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두 아내는 배 다른 자식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죄책감을 갖는다. 해롤드는? 해롤드는 자기 이야기뿐이다. 대화가 없다.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말하고만 있다. 듣는 사람이 없으니 경마장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해롤드는 입원한다. 오랫동안 앓고 있던 증상이 터졌다. 가족들이 모인다. 해롤드가 죽는 줄 알고 다들 어쩔 줄 모른다. 힘을 합쳐 모든 진료 과정을 메모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병원에 머무른다. 해롤드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식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무관심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애쓴다. 장은 현재 미혼이다. 은둔형 괴짜로 보이기도 한다. 어릴 적 해롤드의 지인이 장을 성추행했다. 아무도 몰랐다. 장은 홀로 울었다. 그 후유증인지 장은 지금도 혼자다. 두 형제들에게 겨우 의지할 뿐. 이런 이야길 들었다고 위로를 반기지도 않는다. 대니는 해롤드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롤드는 아버지로서 평생 괴로운 존재였다. 대니는 매튜에 비해 늘 순위에 밀려 있었고, 사랑받지 못한 자식이라는 열등감에 찌들어 있다. 해롤드를 원망하고 미워한다. 지금은 중환자 상태인 해롤드가 안쓰럽지만, 연민과 동정이 평생의 고통을 지워주지 못한다. 대니는 두 번째 결혼도 실패 중이다. 매튜는 자식 중 유일하게 경제적인 성공을 거뒀다. 핏이 잘 맞는 슈트가 현재를 상징한다. 하지만 대니 역시 불안한 결혼 생활 중이고 자식과는 영상으로만 통화한다. 그게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영상통화라도 자주 하는 것. 예술가의 자의식 과잉은 자녀들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모든 관계를 불안하게 확장시킨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사실 너희를 너무 사랑했다.라는 말을 요즘 누가 믿나. 물론 해롤드는 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현실의 가족을 다룬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현재의 모습만으로 구성원의 전부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식은 부모의 복제품이 아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인류의 운영 방법은 지금보다 얼마나 쉬웠을까. 예술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구 하나 예술가가 되지 못한 배다른 삼 남매. 영화는 내내 단 하나의 입장으로 귀결되지 않는, 끊임없이 감정이 바뀌고 진실이 밝혀지고 다시 실망하고 용서하고 싶지만 다시 지겨워하고 상처 받은 사실이 지워질 수 없는, 복잡다단하고 몇 단어로 간추려 형용하기 힘든 상황들을 보여 준다. 자식이 성인이 된 나이가 되었음에도 애들처럼 싸운다. 사실 어른스러운 싸움이라는 게 있기나 한가. 말싸움이든 몸싸움이든 정중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모든 다툼은 애어른을 나누지 않는다. 이성으로 제어하지 못한 팔다리들이 앞다투어 나가고 욕설과 험담이 상대방 안면을 강타한다. 너는 사랑받았잖아. 나는 아니야. 나라고 괜찮았을까? 나도 미칠 거 같았어! 행색이 다른 두 형제가 전국 불행 배틀을 벌인다. 누워있는 아버지 해롤드의 회고전, 매튜와 대니는 헝클어진 머리와 피 묻은 얼굴로 마이크를 잡는다. 그리고 울먹인다. 이게 참. 부모를 원망하는 억울한 성장기를 지났어도 노쇠한 몰골로 누워있는 사람을 생각하면 눈물이 치솟는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 평생 괴로운 걸 원망하고 싶은 데 그 대상이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다. 부모라는 영원한 가해자, 자식이라는 영원한 피해자. 가족은 범죄 집단이다.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서로를 공격하고 상처 받는. 그리고 그걸 가족이라는 위장된 이미지로 교묘하게 폭력과 슬픔을 숨기며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는. 인간이 되는 법을 이렇게 배운다. 아이와 어른이라는 구분은 얼마나 의미 없나.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는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고 함께 있어도 혼자보다 외로운 풍경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당신과 당신 가족의 삶은 얼마나 다르냐며 비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