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루크 감독.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
이것은 신의 뜻, 이것은 운명, 닥친 일이 복잡하고 거대해서 설명하기 힘들 때 쉽게 붙이는 말이다. 지위가 높거나, 또는 지위가 높은 자에게 복잡한 일을 보고해야 할 때 주로 사용되곤 한다. 저런 말로 인간의 책임은 일부 가려진다. 또는 악용되기도 한다. 널 죽이는 건 나지만 네가 죽는 건 신의 뜻이다. 그러니 너무 애석하게 생각하지 마. 신이건 운명이건 인간의 자의적 해석이자 변명이다. 모든 삶이 그렇겠지만 그중 어떤 삶은 태어나자마자 피할 수 없는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자리는 국가라는 초거대 집단의 오직 한 명에게만 주어지기도 한다. 한 명에게 허락되는 절대권력, 병과 노화로 수명이 다하거나 살해되거나 사고사 하거나 등 목숨을 잃게 되면 누구든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그 자리. 여왕(왕)의 자리. 조상이 왕이라면 그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높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들로 가득 찬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다보면 자연스레 같은 욕망을 품게 되기도 한다. 거지 굴에서 태어난다면 거지의 생존 방식을 택해야 하고 궁에서 태어난다면 여왕의 생존 방식을 택해야 한다. 죽거나 죽임 당하지 않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 대안이 없다. 도망치더라도 나중을 위해 누군가 죽이러 쫓아올 테니까. 잉글랜드의 여왕 자리가 그러하다. 남편의 죽음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온 메리 스튜어트(시얼샤 로넌)의 존재는 엘리자베스 1세(마고 로비)의 지위, 잉글랜드 여왕 자리를 위협한다. 왕위 승계권이란 게 그렇다. 둘에게 남편과 자녀가 있다면 더 복잡해진다. 메리의 세력이 있고 엘리자베스의 세력이 있으니 더더욱 복잡해진다. 현재의 여왕을 없애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왕을 올리고 싶은 세력이 있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모두가 여왕의 목숨을 노린다. 엘리자베스가 사라지면 잉글랜드 여왕 자리는 메리의 것이 된다. 메리에게 남편이 있고 메리가 사라지다면 메리 남편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또는 메리의 남편이 죽고 메리의 자식이 있다면 메리의 자식이 그 자리의 주인이 된다. 그 자리의 주인은 개인 아닌 집단의 상징과 대표가 되어야 하며 킹메이커들의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다. 권력이란 뭘까. 인간이 인간과 그 주변과 전부를 지배할 수 있다는 판타지? 허상? 실제 사람 목숨이 오고 가는 피의 거래? 이 권력 때문에 인간의 역사엔 핏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메리와 엘리자베스 주변도 그러하다. 여(성) 왕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남자의 적이 된다. 모든 남자가 두 여왕의 자리는 노린다. 엘리자베스는 결혼과 출산을 멀리하며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망을 모두 포기하고 싶지 않은 메리는 권력을 원하고 이를 위해 결혼과 출산까지 각오한다. 영원한 권력이란 자신이 죽은 후에도 그 후손에게 영예가 이어지는 것. 영원히 죽지 않으며 영원히 통치할 수 있다는 믿음. 메리는 적이 많았고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그래서 평생 표적이 된다. 메리를 제치고 다음 권력자가 되고 싶은 자들이 넘쳐났다. 메리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메리가 믿는 건 권력을 향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자신의 욕망뿐이었다.
여성이 권력을 탐하면 정욕에 미친 마녀이자 매춘부로 몰리던 때, 메리가 의지할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권력 구도상 가장 적대적인 관계였던 엘리자베스뿐이었다. 엘리자베스만이 수세에 몰린 메리와 차세대 권력이 될 메리의 아들 제임스를 보호할 수 있었다. 이미 메리의 남편은 (끊임없이 남성 중심의 반란 세력에 이용당하며 메리를 압박하다가 자기편이라 믿었던 자들에 의해) 살해당한 후였다. 메리는 죽는다. 제임스를 남기고. 엘리자베스를 위협하는 세력과 결탁했다는 명목 아래 처형당한다. 영화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욕망을 품을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여왕이라는 최고 권력자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권력자에게 인간적인 면모란, 결국 권력을 노리는 자들이 상대를 겁박하고 죽일 때 쓰기 위해 만든 개념이라고 여겨질 만큼 처절한 약점으로 작용한다. 시녀들을 살가운 친구처럼 대해주며 평생 같이 어울렸던 메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녀들의 도움으로 메시지를 전하며 최후를 맞는다. 아들이 자신의 권력에 대한 염원을 실현시켜주길 간절히 바라며. 남성이 이랬다면 파란만장한 운명 앞에 자신을 내던져야 했던 고독한 늑대처럼 포장하며 추앙했겠지만 메리는 사는 내내 권력에 미친 자로 취급받으며 적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남편, 오빠까지 모두가 여왕 메리가 아닌 죽은 메리, 여왕이 아닌 메리가 되길 노렸다. 메리는 뼛속까지 단한발도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의 욕망을 관철했다.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엘리자베스뿐이었다. 그리고 메리는 엘리자베스 정권에 의해 처형되었다. 메리와 엘리자베스는 같은 크기의 권력을 꿈꿨고 자리는 단 하나뿐이었다. 역사는 그 자리를 엘리자베스가 차지했다고 기록한다. 능력도 없이 욕망만 가득한 수많은 남성들이 노리던 그 자리를, 두 여성 권력자가 가지려 했다. 여성이 쟁취한 역사의 기록을 계속 알고 싶다. 지금껏 남성이 세상을 주도했다고 속고만 살았으니까. 연인과 가족이 아닌, 세상의 전부를 지배하길 욕망한 여자들에 대한 기록을, 승리의 역사를 찾는 중이다. 메리는 그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