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유죄 시대유감

배리 젠킨스 감독.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by 백승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하여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은 없다. 짐작하거나 상상해보지만 그뿐이다. 스스로가 처한 고통도 어쩌지 못하면서. 노예제도가 성행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흑인들이(이 표현이 이상하다는 걸 안다. 너무 많아서. 흑인의 미국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당한 고통들은 글과 책 보다 영화로 더 절실히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영화 두 장면이 떠오른다. 맹렬한 속도의 자동차가 고의적으로 시위대로 돌진해 말 그대로 깔아뭉개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실제 사건 영상과 한 흑인 남성이 우연히 마주친 백인 남성 패거리들에게 아무 잘못도 없이 쫓기다가 목 매달리고 성기까지 훼손되었던 장면. 당시의 수많은 사진들 역시 나무에 매달리고 불탄 흑인 시체들과 곁에서 웃으며 기념하는 백인들을 담고 있다. 그 백인들도 식사 기도를 했겠지. 가족의 손을 잡으며. 난 앞서 말한 흑인들이 당했던 고통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고통의 공감대라는 말이 내겐 너무 어렵다.

미국의 흑인들이 당한 폭력과 고통의 역사는 아무리 많은 이야기로 나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많고 드러나지 않은 것과 아직 모르는 게 많이 남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하나 더 알게 되었다. 문라이트를 만든 배리 젠킨스 감독의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을 봤다. 한 커플과 두 가족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이 이야기는 5년 전이었다면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을 (미국의 수많은 흑인이 겪었을) 새로운 고통의 종류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가진 아내와 남편이 임신과 출산을 겪었음에도 흑인을 차별하는 백인 중심 사회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한 엄청난 누명을 쓰고 임신을 알기 전부터 아이가 오래 자라기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고통과 슬픔이다.

티시(키키 레인)와 포니(스테판 제임스)는 어릴 때부터 친구다. 스무 살을 지나며 서로 사랑에 빠졌다. 둘은 같이 살 곳을 구하고 서로가 곁에 있다는 것에 너무 좋아 팔짝 뛸 만큼 순수하고 찬란한 기쁨을 나눈다.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이런 맑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애정 어린 장면은 대부분 백인 커플들의 몫이었다. 흑인 커플에게도 이런 고귀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선사될 수 있구나 싶었다. 둘은 너무 아름다웠고 바라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대단한 것을 선물 받은 듯 기뻐 날뛰며 웃었다. 그들의 컬러 옷은 너무 근사하고 세련되었고 피부는 매끄럽고 팽팽하며 빛이 났다. 그들은 노예 조상을 둔 슬픈 노예 후손들의 서글픔과 누추함이 보이지 않았고 열등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인간이었다. 감정을 느끼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인간. 포니가 강간 누명을 쓰고 투옥되기 전까지 모든 순간이 절정이었다.

포니는 강간죄로 구속된다.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현장이었다. 피해자가 포니를 지목했다. 피해자는 재판 과정에서 멀리 떠났다. 피해자는 끔찍한 괴로움을 겪었고 더 말려들고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희망은 소멸했다. 포니는 풀려날 길 없었다. 포니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티시는 만삭이 될 때까지 일을 다니고 포니를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시도한다. 포니와 티시의 아버지들은 돈을 구하기 위해 부두의 물건을 훔쳐 판다. 흑인들에겐 정당한 방식으로 살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다. 범죄로 빠지고 얽히기는 너무 쉬웠다. 수많은 길이 어둠을 향해 뻗어 있었다. 다른 길이 없어 그 길로만 나아가야 했다. 강하고 긍정적이었던 포니는 풀려날 길이 없자 점점 절망에 빠진다. 감옥에서 일어나는 일은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할 길 없으나 평생 기억에 남아 괴롭힐 일들이었다.

영화는 포니의 출소를 보여주지 않는다. 많은 장면들이 회상으로 채워진다. 나머지는 포니를 구하기 위한 가족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좌절뿐. 포니는 결국 강간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인정하고 (잘못한 게 없지만) 합의한다. 흑인이라는 이유가 죄였다. 태어난 죄였다. 그 죄로 주변 가족이 희생을 치렀고 아내 티시는 (육아를 포함) 형언하기 힘든 고통과 괴로움, 외로움을 겪었다. 포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의 자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빠 없이 보낸 어린 시절, 남편 없이 홀로 키우고 앓았을 육아, 아이가 크는 단 한순간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투옥된 포니까지. 미국은 모든 곳은 미국의 흑인들에게 거대한 감옥이었다. 슈퍼도 골목도 어디든 감옥이 아닌 곳이 없었다. 모든 백인들은(특히 남성) 간수와 범죄자가 되어 흑인들을 짓밟고 억압하고 때렸다. 모든 분노를 쏟아부었다. 흑인들은 언제 날아들지 모를 위협을 경계하며 숨을 죽여야 했다. 사랑에 빠졌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현실 속에 깊이 스미는 순간 실감하게 했다. 흑인이 있는 어느 곳에도 안전지대는 없었다. 영화는 빼앗긴 자들의 이야기고 돌려받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많은 걸 잃고 포기한 상태에서 영화는 위태로운 평화를 보여주며 맺는다. 모든 흑인은 유죄로 태어났다. 그들이 거리에서 모두 사라질 때까지 유죄로 물고 늘어지는 백인의 후손들이 여전히 미국에서 같은 짓을 저지르며 살고 있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