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바움백 감독. 결혼 이야기
"같이 놀지도 못하면서 저 왜 데려 오셨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원하면 약속이고 니콜이 원하면 상의예요?"
"그의 천재성은 결혼하고 축적된 무형의 자산이니까요."
"잘 나가고 여러 사람이랑 즐기고 싶었지만 참았어."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배우.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연극 연출가. 둘은 부부. 사이에 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가 있다. 니콜과 찰리는 현재 이혼 소송 중이다.
둘 다 변호사를 선임했다. 니콜이 원했고 찰리는 따르기로 했다. 불편한 마찰을 줄이기 위한 결정. 니콜의 변호사 노라(로라 던)는 이 세계가 남자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걸 지식과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법과 원칙으로 여자들이 더 이상 손해 보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신념이 있다. 소송이 길어질 경우 파산을 각오할 정도로 비용이 비쌀 뿐. 찰리에게서 의뢰인 니콜을 보호한다.
니콜은 알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수많은 선택이 찰리에 의해 가로막히고 있음을. 찰리는 늘 모두를 위한 결정처럼 행동했지만 찰리는 원하는 원하는 모든 걸 누리고 있었고 니콜은 경력이 단절된 채 육아에 전념해야 했다. 둘은 서로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결혼생활의 유리한 면은 찰리 홀로 누리고 있었다. 안정적인 가정과 사회적 성공을 둘 다 가진 브로드웨이가 러브콜 하는 천재 연출가라는 타이틀. 그 곁에서 니콜은 그저 한때 반짝이던 한물 간 배우였다.
니콜에게 왔던 수많은 기회가 찰리에 의해 사라지면서 니콜은 매번 좌절했지만 그럴 때마다 찰리는 자신의 삶에 집중했다. 니콜이라는 좋은 도구를 지닌 삶. 둘의 결혼 생활 안에 니콜이라는 개인의 삶은 없었다. 엄마 아내 그뿐. 아이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찰리는 환영받지 못하는 아빠였다. 찰리는 뉴욕에서 일했고 니콜과 헨리는 엘에이에서 살았다. 멀었고 뜸했으며 이혼은 멀리 이어진 둘을 각자 개인의 삶으로 돌려놓는 방법이었다.
니콜은 자신이 지금껏 잃어버린 것과 이혼이라는 결정으로 무엇을 더 잃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찰리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찰리의 외도 사실을 알고 이혼 결심을 굳혔다. 찰리는 니콜과 이혼 소송에 대한 논의 중 개소리를 내뱉는다. 나처럼 잘 나가는 천재 연출가에게는 다른 여자와 잘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온다고. 니콜은 찰리에게 장애물이었다. 얼마나 많은 순간 저 여자만 없다면 더 많은 시간을 작품에 집중하며 예술혼을 불살랐을 텐데 라고 생각했을까. 둘의 언성이 높아지고 찰리는 저주를 퍼붓는다. 니가 차에 치어 죽길 매일 바란다. 사과했지만 뱉은 말은 들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영. 절대.
이혼소송은 끝난다. 양육권과 양육비 지급, 재산분할의 문제가 정리된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상처가 깊어질 거란 조언은 진짜였다. 전문가 없이 당사자 둘이 정리될 거 같았지만 남는 건 재판정을 오가는 양측의 고성과 폭로, 남들이 제발 몰랐으면 했던 진실들이 기록되는 일이었다.
영화가 헨리의 시선으로 다시 그려진다면 마냥 좋은 엄마와 좋긴 한데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잘 안 놀아주며 일하느라 바빠서 무심한 아빠 정도로 그려질 거 같지만 더 많은 진실들이 아이의 눈에 까발려지며 상처 받은 아이의 삶에 더 집중될 것이다. 결혼 이야기는 헤어지는 세 명의 가족 구성원 중 부부라는 둘에게 초점을 맞춘다. 영원할 것 같던 감정과 언약이 어떻게 붕괴되는지 그 과정과 이유를 냉정하고도 서늘하게 그린다.
누구나 살면서 자신을 더 연민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상대를 위한다지만 결국 자신의 좁은 시야와 오해, 한정된 기억과 편향에 의해서다. 사랑은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해결해야 할 계약이 되고, 돈을 거론하는 순간 이익 다툼이 된다. 탐욕만이 남아 서로를 더 상처 내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최선을 다하며 으르렁거리고 그동안의 시간을 무너뜨린다. 그 안에서 서식했던 자신들 또한 다치고 죽는다.
계속 맘에 걸려 덜거덕거렸던 건 찰리의 이기심과 니콜의 무너진 커리어,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지금까지의 세계가 두 개로 갈라지고 있는 것을 경험하는 헨리의 심정이었다. 인간관계의 생성과 소멸은 늘 흔적을 남기지만 유자녀 부부의 이혼만큼 흉터가 깊은 게 있을지 모르겠다. 가까운 경험에 의하면, 이혼 부부의 자녀는 평생 의문을 품고 살게 된다. 부모가 이혼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보게 된다. 모든 결혼이 가해자 선언은 아니겠지만 유자녀 부부의 모든 이혼은 어떤 식으로든 부부를 가해자로 만든다. 그 피해는 자녀 몫이다. 한없이 미안하고 이해하는 척하겠지만, 이혼하는 부모들의 자세한 사정을 아이가 알 리 없듯 부모의 이혼을 겪은 자녀가 겪을 모든 고통과 괴로움 또한 해당 부모들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영화는 편집된 인생의 한토막을 그렸지만 헨리가 괜찮았으면 좋겠다. 그럴 리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