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번햄 감독. 에이스 그레이드
케일라(엘리 피셔)는 8학년,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졸업반이다. 유튜브 영상을 만든다. 케일라가 나와서 케일라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이걸 케일라가 업로드하고 아무도 안 본다. 조회수가 0에 가깝다. 관심을 갈구한다. 아싸에 가까우니까. 같은 반 또래 무리 중엔 분명 인싸가 존재하고 그 주변에 따르는 개미떼 같은 무리가 있으며 케일라는 그 개미떼 중에 한 마리라도 되고 싶다. 그래서 용기 내어 인싸에게 인사하고 생일파티에 어쩌다 초대되어 분위기 싸하게 만드는 선물을 건네기도 한다.
케일라 같은 10대가 용기를 내어 공공장소에서 말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쿨한 척 쿨한 척 쿨한 척 자기 방에서는 세상 쿨한 소녀지만 쿨함을 표방하며 개인 유튜브 콘텐츠에서는 다양한 일상과 관계 팁을 설파하지만 타인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숨 쉬는 밖에서는 다르다. 케일라는 안다. 쿨함은 목표고 아직 이루지 못했으며 세상엔 이미 쿨한 사람들 천지라는 거.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다. 여자 친구가 누드사진 안 보여줘서 차 버렸다는 싸이코라는 소문이 있다. 케일라는 기회로 활용한다. 내 폰에 그렇고 그런 사진 있는데 남자 친구한테만 보여줄 거야. 그 남자애가 호기심을 보인다. 그리고 그걸(구강성교) 할 줄 아냐고 물어본다. 아이고 미친 새끼. 케일라는 그걸 연습하기로 한다. 구글링을 하고 학습 영상을 찾는다. 구역질 나는 영상, 억지로 연습하려다 관둔다.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거기서 역대급 쿨내 진동하는 선배 언니 올리비아(에밀리 로빈슨)를 만난다. 고등학생 되면 다 저렇나. 장난 없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세포가 쿨함으로 이뤄진 것 같다. 같이 놀까 라는 제안에 케일라는 심장이 멎을 듯한 기쁨을 느낀다. 따라 간 자리에는 올리비아의 친구들이 있다. 먹고 떠드는 게 다다. 소재는 물론 세상 쓸데없는 이야기들. 날이 저물고 올리비아 친구(남자)의 차를 타고 돌아온다. 그런데 이 놈이 차를 멈춘다. 뒷자리로 온다. 게임을 하자고 한다. 옷 벗는 게임. 케일라는 이 개새끼의 의도를 감지한다. 강하게 거절한다. 그 새끼는 놀라서 네가 나중에 개찐따랑 첫 경험하는 걸 막아주려고 그랬다고 개소릴 지껄인다. 케일라는 방으로 돌아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울음을 터뜨린다. 인싸로 진입하고 싶고 남자 친구를 만들고 싶고 쿨한 선배들을 선망했던 케일라는 여러 번 현타를 겪고 유튜브 방송을 접기로, 아니 잠시 접기로 한다.
아빠만 있는 집. 아빠 마크(조시 해밀)는 늘 하나뿐인 딸 케일라가 걱정이었다. 저렇게 예쁘고 기특한 녀석인데 혹시 상처 받으며 지낼까 봐. 싫어해도 계속 말 걸고 물어보고 어색하더라도 사춘기 딸에게 관심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노력하고 통하지 않는다. 케일라는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휴대폰 하는 거 방해하지 말라고 재촉한다. 부모세대의 사춘기 자녀와의 모든 소통 시도는 대부분 실패하기 마련이다. 넌 괜찮은 애야. 사랑받은 자격 있는 애야.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세상에 케일라에게 이런 말 해주는 사람은 케일라 아빠뿐이다. 결국 슬픔과 어둠을 겪고 터덜터덜 돌아올 곳도. 집. 아빠뿐.
케일라는 격정적인 다양한 좌절을 경험한 후 미래의 자신에게 다시 영상 편지를 보낸다. 어차피 미래도 후질 가능성이 크지만 어차피 인생 그런 거 아니겠냐고. 스스로를 미리 위로한다. 어차피 지금껏 찌질했던 인생 앞으로도 찌질하다고 뭐 큰일이야 생기겠냐고. 특이점이 오는 쿨함을 획득한다. 자신을 인정한다. 쿨하려고 노력하고 잘 안되지만 그래도 계속 쿨하려고 노력하려는 자신을. 좀 더 지켜보도록 한다. 그렇게 케일라는 졸업반을 끝낸다. 조금 자라고 조금 더 강해진다.
이런 성장 영화를 대하며 과거와 달라진 관점이라면 지금 내 곁엔 도로시가 있다는 점이다. 훗날 소녀와 10대가 될 도로시를 둔 성인 남자의 입장으로써 케일라의 상황을 보며 과거와는 좀 더 현실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 과거에 케일라 주변의 승냥이 새끼 같은 것들을 보며 아이고 저 미친놈들 이러고 말았다면 지금은 저 새끼들을 납치해서 어떤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죽여서 케일라를 보호할까 이렇게 상상하곤 한다. 영화 후반 케일라 아빠가 케일라에게 하는 말들은 예쁘고 정의롭고 합리적이었지만, 그런 말들이 케일라에게 온전히 전달되었을지는 의문이다. 케일라는 문명인이고 책을 읽을 줄 아며 사고할 줄 알고 아빠의 역할을 인지하며, 어쩌면 아빠의 말이니까 배려상 끝까지 들어준 걸지도 모른다. 모든 개인은 가족 구성원의 역할 속에서 말로 다 공유할 수 없는 시간을 산다. 결국 가장 막판에 겨우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아닌 아주 예민한 지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은 감정과 정서의 공감대는 이뤄져야 하는 게 단 하나뿐인 가족 구성원, 케일라 아빠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가 전직 특수부대원이었고 케일라를 상처 줄 뻔할 개자식을 갈가리 찢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스토리는 리암 니슨이 진작에 3편까지 해서 좀 식상했을 수도 있다. 이런 극적 장치가 드러나려면 케일라가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되어야 하니까. 현실적인 관점에서 케일라 아빠보다는 좀 더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아빠가 되고 싶다. 요즘은 도로시(5세)가 매일 내 손을 꼭 잡고 잠들고 싶어 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