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교황, 두 죄인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두 교황

by 백승권

교황 선거 비밀 회의 콘클라베

검은 연기가 올라오면 바티칸은 탄식으로 가득 채워진다.

하얀 연기가 올라오면 탄성과 환호로 가득 채워진다.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다.


2013년, 아르헨티나의 프란치스코 추기경(조나단 프라이스)은 은퇴하기 위해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프란치스코는 축구와 탱고를 사랑하고 만인에게 널리 사랑받는 종교인. 인기가 많아 베네딕토 16세(안소니 홉킨스) 선출 당시 유력한 경쟁자로 언급되기도 했다. 반면 선출된 베네딕토는 임기 중 가톨릭 신부의 아동 성추행 사건이 연이어 드러나고 그걸 알면서도 덮었다는 논란에 휩싸여 공공연하게 나치(베네딕토는 독일인)라고 불리기도 했다. 교황에게 직접 승인을 받아야 추기경 은퇴가 이뤄지는 가톨릭 시스템. 베네딕토는 오래전부터 프란치스코와 자신의 정반대 노선이라고 할 만큼 스타일이 다르고 사람들의 평가도 그만큼 나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쉽게 말해 타협은 추구하지만 전통과 규율을 중시하는 베네딕토는 보수, 동성애까지 끌어안는 프란치스코는 진보에 가까웠다.


낡은 구두를 신고 서류 가방을 들고 베네딕토를 만나러 온 프란치스코는 현재 가톨릭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강경하게 조언한다. 베네딕토는 교황의 권위를 무기 삼아 방어하려 하지만 세상이 이미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뻔한 종교인들이 그렇듯, 이게 다 하나님 뜻이라고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반박한다. 시대가 바뀌면 하나님이 거하는 곳도 바뀌어야 한다고. 믿음은 교회 안에 웅크리고 있을 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고 몰려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지팡이 없이는 걷기도 힘든 베네딕토에게 프란치스코의 주장은 TV쇼 대사처럼 들렸을 것이다. 밤이 깊어지고 은퇴 서류에 싸인은 아직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준비된 공간에서 머무른다.


밤의 내밀한 분위기가 의견이 다른 두 종교인의 감정적 거리를 좁혀준다. 베네딕토는 자신이 좋아하는 형사드라마와 피아노 취미를 소개한다. 베네딕토가 들려주는 다양한 장르의 피아노 연주 속에서 프란치스코는 과거를 회상한다. 어린 날,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자. 날이 바뀌며 둘의 대화는 계속된다. 은퇴 승인은 계속 거절된다.

곧이어 베네딕토는 프란치스코에게 한방 날린다. 다음 교황은 당신이어야 한다고. 난 더 이상 주님의 응답을 들을 수 없다고. 은퇴하려 왔다고 세계 최고 대표 제안받은 프란치스코는 당황하며 연거푸 거절한다. 베네딕토는 고집이 센 인물, 당신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원하고 있지 않냐고 다시 제안한다. 세상 어떤 추기경이 교황 자리를 원하지 않을까. 가난한 이들과 소수자들을 가까이에서 끊임없이 돌봐온 프란치스코에게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성스러운 지위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없다. 프란치스코의 젊은 날은 혼란스러웠다.


평생의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준비한 날, 우연한 끌림으로 고해성사와 마주했고 그 길로 사랑의 대상은 신으로 바뀌었다. 종교인으로 아르헨티나로 살아가던 중, 군부정권의 탄압은 가장 가까운 이들마저 짓밟고 죽이고 있었다. 바다에 버려진 시체만도 헤아릴 수 없었다. 프란치스코는 더 많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권과의 친분을 잇기 위해 애써야 했고 이것만이 살해되는 가톨릭 신부와 수녀들의 수를 줄이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었다. 하지만 일부의 시선에 프란치스코의 행동은 생존을 위해 권력과 손 잡고 교리를 져버린 배신자의 선택이었다. 누가 뭐라든 프란치스코는 가까운 신부에게 달려가 잠시 신앙 활동을 멈추라고 강력히 권하지만 듣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군부정권의 희생양이 된다.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풀려나지 못한다. 프란치스코의 깊은 고난은 그때부터였다. 오지로 나가 선교를 이어갔고 이후로도 억울한 대우를 당하는 이들을 줄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부르짖는다. 여전히 아르헨티나엔 프란치스코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고 이것이 프란치스코가 교황이란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였다.


베네딕토는 일부 알고 있었고 프란치스코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은 신이 아닌 인간이에요. 그리고 자신의 허물을 밝힌다. 아동을 성폭행한 신부를 쫓아내지 않고 담당 교구를 이동시킴으로써 피해를 확산시켰다고. 프란치스코는 경악한다. 종교를 불신하게 만들고 더 많은 피해자들을 만든 건 종교권력의 묵인이었다. 베네딕토 역시 가톨릭 전체를 보호한답시고 수백 명을 끔찍한 범죄피해자로 만들게 된 것에 대해 개탄했다. 그리고 자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고해한다. 하지만 지난 700년 동안 교황이 중간에 그만둔 역사는 없었고 프란치스코는 불가능한 결정이라고 강조한다. 베네딕토는 결정한다. 다음 교황은 당신이라고. 그렇게 내려온다. 더 나아져야 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은 없었으므로.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가 사람들이 분주한 거리로 나아가 직접 만나고 사진 찍게 한다. 경호원들이 긴장한다. 피자와 탄산음료를 시켜 현 교황과 차기 교황 후보자가 기도하며 같이 먹기도 한다. 나중에는 독일 대 아르헨티나 월드컵 결승전을 같이 보며 응원하기도 한다. 베네딕토가 막강한 권위의 권력자였다면 프란치스코는 거리의 성자에 가까웠다. 프란치스코 교황, 몇 해 전 국내에 와서 세월호 희생자 부모와 만나고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 바로 그분이다.



keyword